이번 설명절은 주일이다.
평일이 설이어도 할머니들을 두고 명절을 쇠러 가지 못하는데
이번에는 주일까지 겹치기라 더 어렵게 되었다.
항상 명절이 되면 할머니들 명절음식준비로 정작 시댁이나 친정은 뒷전이었다.
혼자 계시는 할머니들이라 자손이 없는 분들도 있고
자손이 있더라도 멀리 외국에 있거나 올 형편이 못되는 분들도 계신다.
그 분들이 외롭지 않도록 늘 명절을 함께 하다보니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시어른들을 집 가까운데 모시고 십몇년을 모셨는데 이젠 고향 부산으로 이사를 가셨다.
이번 설에도 같이 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시댁에 미리 갔다.
명절 음식 하시라고 돈봉투를 만들고 한우사태와 곰거리를 준비하고 부산시댁엘 갔다.
하루 전에 미리 전화를 하고 갈건데 어디 가시겠냐 싶어 전화없이 바로 갔더니
어머님은 안 계시고 다리가 불편하신 아버님이 혼자 계셨다.
아버님은 당뇨가 심하신데도 병원가기를 너무 싫어하셔서 어머님이 집에서
인슐린 주사를 세시간마다 놔 드려야 한다.
운동을 전혀 안하시려고 하니 다리가 경직되어 가는데도 요지부동이시다.
젊은 시절부터 유난히 까다로운 식성때문에 어머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다.
늦은 밤시간에도 야식을 만들어 내라고 하시면 어느 시장엘 가든지 대령하시는 어머님이시다.
음식솜씨도 좋은 어머님은 어떤 명령이 하달되더라도 뚝딱 해 놓으시는 놀라운 분이시다.
한식 중식 일식 등...서구식 빼고는 다 가능하신 듯.
나는 혹시라도 내 남편이 그런 시아버님을 닮을까 봐 아주 쐐기를 박았다.
하루 삼식은 해 주되 밤참이나 간식은 스스로 해결하기~~!!
지금까지는 잘 하고 있다.
요즘 아버님의 병세가 부쩍 많이 나빠지셨다는데 수련회가 이어져 있어서 가 뵙지를 못했다.
어제는 명절 전에 하루 쉬는 날이라 이차저차 찾아 뵈러 갔는데 어머님이 안 계셨다.
휴대전화를 해 봐도 안 받으셨다.
아버님은 명확하지 않은 기억력으로 횡설수설이시고.
우리의 외손녀를 보시고도 누구냐고 자꾸만 물으셨다.
반복적으로 대답을 해 드려도 5초도 못 가서 또 물으셨다.
이젠 모든게 다 망가지고 있으신거다.
그럴수록 더 어머님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전화도 불퉁....어머님의 행방은 묘연.
남편의 얼굴빛은 사색이 다 되어갔다.
혹시????
고되고 힘든 병수발과 아버님의 유별스런 시집살이 때문에 가출이라도 하신게 아닌가?
어머님 피붙이가 없으니 홀가분하게?
불길하고 불안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동네 입구 슈퍼에 가서 어머님을 알아 봐도 모른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해 계시면 좋으련만 고집스레 집에 계신다니 그 수발을 누가 들어들이겠는가?
위로 두 아주버님이 계시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하시고 우리 또한 같이 모실 형편은 더더욱 아니고.
어머님이 안 계시면 아버님을 돌봐 드릴 사람도 없는데 가슴이 무겁고 답답해왔다.
집으로 돌아 와야 할 시간은 다가오고 어머님은 연락이 안되고 있었다.
아버님은 어머님이 아까 아침까지 집에 계셨다고는 하는데도 불안했다.
밥솥을 열어보니 따뜻한 밥이 있는 걸 보면 가출은 아닌 듯도 싶고....
일어 설 수도 앉을 수도 없는 어정쩡한 자세로 얼마나 있다가 그만 일어섰다.
\"아버님 우리 가 봐야 겠어요. 어머님 곧 오시겠지요?
이건 돈이구요 ,이 상자는 사태곰거리고요, 이건 횟거립니다.
냉장고에 넣어두고 갈께요. 나중에 어머님 오시면 전해 드리세요.\"
조목조목 일러 드리면서도 불안은 없어지지 않았다.
\"뭘 이렇게나 많이 가져왔냐? 그래 잘 먹을께. 조심해서 가거라~\"
잘 걷지도 못하시는 걸음으로 방 앞에까지 기를 쓰고 나오셨다.
어찌해야 좋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아쉬움과 걱정을 거실 가득 남겨두고 막 문을 나서려는데 대문 저쪽에서 누가 안으로 대문을 밀고 들어섰다.
\"아이구 놀래라~이게 누구야? 언제왔다가 벌써 갈려고?\"
등 뒤로 무거운 베낭을 맨 어머님이 들어오시다가 우릴 보고 놀라셨다.
베낭에는 당연히 아버님의 간식거리와 반찬들이 들어 있었다.
그 순간 얼마나 반갑고 또 반갑든지....
휴대전화는 베낭 구석에 있어서 안 들려서 못 받으셨단다.
우린 그것도 모르고 얼마나 불안했던지.....
아버님께 드린 돈봉투와 다른 짐들을 일일이 설명해 드리고 돌아서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몇달 못 뵈었는데 몰라보게 여의신 어머님.
편찮으신 아버님을 어머님한테만 맡겨두고 우린 우리 살기에만 바빴다.
우리 집에 잠깐 오시면 차비에 보태시라고 용돈 얼마 드리는 걸로 효도를 다 하는 것 처럼 하고 살았다.
명절 때 아버님 몰래 얼마간 드리면서 도리를 다하는 며느리처럼 굴었다.
내가 모신 그 십몇년이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것 처럼 모든 것에서 면제되기를 바라면서 살았다.
옷 몇벌 사 드리는 일로 며느리 노릇 잘 하는 걸로 봐 주시겠지 자위하면서.
몇달 사이 퍽 늙어버린 어머님이 안타까워 나서던 대문을 마져 나서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내 속으로 낳은 자식 하나없이 남의 자식 여섯이나 시집장가 보내시느라 고생도 많으셨다.
여섯자식보다 하나 영감이 더 까다로워 지금까지도 고생하시는 어머님.
아버님 먼저 가시고 얼마간이라도 편안한 노년을 보내시다가 가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바란다.
애 먹이시는 아버님이라도 영감 돌아가시고 과부되는 외로움에 더 늙어버리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