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스타 그와의 이별
1982년 6월 1일
햇병아리 출근 하~신~다. 길을 비켜라.....
봄, 여름, 가을, 겨울
일년이 흐르고
십년이 흐르고
또 십년이 흐르고
세월은 여지없이 흐르고 흘렸다.
2012년 12월 17일
회사 홈페이지 공지란에 핫트한 글이 올랐다.
20년 이상 근무자 명예퇴직 신청 공고였다.
현관, 구내식당 입구 게시판에도 명예퇴직 공고가 껌 딱지 처럼 붙었다.
규정상 매년 2회 공고을 내게 되어 있었고,
공고가 붙을 때 마다 나와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고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근무 년수로 따진다면 랭킹 1.2.3.4.....열번째 안에 들다보니 당연 1순위이다.
그래도
간판스타인 나를 아직은 우리 회사가 필요로 하고 있다
내가 맡고 있는 업무만은 우리 회사에서 나는 1인자이다
어느 누구도 나 만큼 업무를 완벽하게 처리할 사람은 없다
강한 자부심으로 삼십년을 묵묵히 일해 왔다.
간혹 농담처럼 직원들과 언제쯤 퇴직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한 치의 생각도 거리낌도 없이 정년퇴임 할 때 까지 근무한다고 말하였다.
우리 회사 간판스타인데 나에게, 명예퇴직이 왠 말인가
코 등으로 흘리고, 귀 등으로 흘리고.......
세월속에 묻고, 바람결에 흘려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잔잔한 호수에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그 몹쓸 놈의 바람이 가라앉지 않고 자꾸만 흔들고 또 흔들었다.
나는야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올해 2월 큰딸이 대학 졸업을 한다.
둘째딸은 대학2학년에 오른다.
막내 아들놈은 고등학교에 올라간다.
남편은 죽어라 죽어라 일은 하는데 공사 할 때 마다 적자란다.
남편 돈 구경하기가 진주바닥에서 눈 구경 하기 만큼 어럽다.
큰딸은 몇 일 전 취업을 했고,
둘째딸은 전문대라 올해만 고생하면 될 것 같고
막둥이는 고등학교 올라가니 사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큰 돈 들 일이 없고
가장 역할을 상실한 남편을 시어머니께 반품 시킬 수도 없고
다섯 가족이 생활하는데 전혀 경제적 도움은 안되지만 없어서는 않될
안방의 장롱같은 사람이 남편이라 버릴 수는 없다.
A4용지 한장에 앞으로 지출 되어야 할 비용 중 백만원이상 넘어가는 지출 항목과,
정기적으로 나가야할 보험료, 대출금 등 비상 가계부를 작성하고
명예퇴직 수당과 퇴직금을 수입으로 잡고 손익 분기점을 찾아보기 위해
머릿속 계산기가 요란하게 움직인다.
명예퇴직 하고 싶다. 해야 겠다 라고 마음을 먹으니
실업급여는 어떻게 신청 할 것인지, 많고 많은 시간 활용은 어떻게 할 것인지,
하루 종일 명예퇴직과 관련된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자판을 벌리고 있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모든 것을 명예퇴직 전제하에 생각하고 대화를 나누게 된다
오로지 머릿속 가득 명예퇴직, 명퇴, 명퇴......전면 도배를 한다.
똑똑하고 총명하기로 소문난 간판스타도 세월의 흐름 앞에서는 무릎을 꿇게 되었다.
명예퇴직을 결심 하게된 몇 가지 요인들이다.
기억력 감퇴
새로운 일에 대한 거부감
새로운 아이템 방전
일에 대한 의욕 소멸
일에 대한 열정 소진
.....................
“후회 없는 삶”이란 좌우명 아래 최선을 다해 업무에 충실했고
최소 1.5배 이상의 과중한 업무량이지만 열정과 최선을 다해 일해 왔었다.
그리고 나름 보람도 느끼면서...........
지금은 몸도 마음도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좋은 이미지의 간판스타로 직원들게 기억되고 싶다.
동료들은 일년만, 이년만, 아니 삼년만 더 일하자고 한다
이미 떠난 마음을 되돌리기엔 역부족.....
조금은 아쉽다 싶을 때 멋지게 떠나고 싶다.
명퇴신청서 양식을 출력하고 빈칸을 채우고, 도장을 찍고,
서류봉투에 넣어 책상서랍에 넣어둔다.
매일 아침 출근 후 서랍을 열고 오만하게 누워있는
명퇴 신청서 봉투를 보면서 행복감에 젖었고,
모닝커피의 달달함을 음미하면서 아침을 맞이하고는 했었다.
자~~이제는 언제던지 떠나도 될 준비완료.....
마음이 가는대로 몸이 따르니 천국이 따로 없다.
과중된 업무와 스트레스로 압박해 오던 어께의 근육 뭉침도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2013년 1월 25일
명퇴 신청 기간 마지막 날 아침
오만하게 책상 서랍속에 누워있던 서류봉투를 움켜지고
나는 총무팀 인사담당자에게 달려갔다.
행여나, 마음이 변할까
누군가가 조금만 더 함께 일하자고 손이라도 잡을까
인원 초과로 탈락되면 어쩌나..........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빠르게
활이 활시위를 벗어났다.
쑹~~~~~~~~~~~~~접수
그리고
해방과 자유........
2월28일
30년 9개월의 근무를 마무리 하고자 한다.
20대 햇병아리가 젊음과 청춘을 다 바친 이 직장에서 종지부를 찍고
새처럼, 바람처럼 훨훨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을 마음 것 즐기는 방랑자이고 싶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내가 나에게 보내는 응원 메세지로 30년 9개월을 내 삶의 추억속에 간직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