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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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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BY 새봄 2013-01-20

밤 그림자가 공원을 지나 도서관 쪽으로 걸어올 때 저녁을 먹는데,

밖에서 혼자 사먹기도 뻘쭘하고 돈도 절약할 겸해서 도시락을 싸오게 되었다.

 

처음엔 샌드위치를 싸왔다. 잼이나 계란으로 속을 채운 식빵.

2주일쯤 먹다가 질리려고 하는데,

옆에 앉은 남학생이 집에서 반찬 만들 때 쓰는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는 게 아닌가?

뭐지? 하는 순간 그 손으로 주먹밥을 집어 먹는 게 아닌가.

샌드위치를 먹으면서도 주먹만 한 주먹밥을 먹는 학생 입이 얼마나 부럽던지...

옳다구나 저거다. 주먹밥을 싸기 시작했다.

 

지리멸치를 볶아 김을 부셔 넣고 한입에 쏙 먹게 수수경단만 하게 만들었다.

저녁 먹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참치 주먹밥, 명란젓 주먹밥, 참기름 깨 주먹밥에

무장아찌와 계절과일까지 곁들이길 한 달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가을날이었다.

앞에 앉은 남녀학생이 연애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서로 만져가며 스마트폰을 보며 여학생이 입을 벌려 말을 하는데,

톤이 살짝 높으면서 야릇하게 갈라지면서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이거 호호호~~ 이로케 하능고 마쪼? 그러니까 흐흐흥~~ 마따니까앙(맞다니까)~~으으응~~

히히힝~~ 나는 이론게 쪼아~~~~.“

창밖에 비는 앞이 안보일정도로 오는데, 이들도 앞이 안보이겠지.

그러니 사람들 다닥다닥 붙어 음식 먹고 있는 좁은 휴게실에서

요로코롬 재미나게 놀고 있겠지.

우라지게 잘 노네, 우라질. 창밖은 구릿빛인데, 우라질.’

그 다음부터 김밥으로 도시락 메뉴를 바꿨다.

 

단무지 대신 김치를 넣고 햄이나 치즈가 있음 넣고, 나물도 넣고, 우엉도 조려 넣고,

그때그때 반찬에 따라 내 맘대로 김밥을 쌌다.

한 달이 넘어도 질리지 않던 어느 쌀쌀한 날

맞은편에 앉은 남녀 한 쌍이 눈에 확 띄었다. 고등학교 일학년쯤 돼보였다.

여학생이 울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아주 심하게 특별났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두 손을 자기 다리에 모아 놓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남학생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들었다 숙였다

손을 탁자위에 올렸다 내렸다 절절매고 있었다.

여학생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목과 등에 깁스 것처럼

내가 김밥을 다 먹을 동안 울고 있었다.

고개도 숙이지 않고 눈물도 닦지 않고 몸도 움직이지도 않고.

울 때는 고개를 숙인다거나 눈물을 훔쳐가며 울지 않나?

울고 있는 자기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여학생이 영악해보였다.

그날 김밥에 붙어 있던 정이 뚝 떨어지고 말았다.

 

이제 한정식으로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고슬고슬 현미밥에 일상적으로 먹는 반찬으로.

단백질반찬 한가지와(두부조림, 동글동글한 햄이나 장조림 등등),

나물반찬 한가지와(시금치, 부추무침, 콩나물) 그리고 김치.

두 달째 먹고 있지만 질리지 않는다.

평범한 도시락은 언제 먹어도 맛이 있다.

 

요즘은 학생이나 직장인들이나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급식이나 구내식당이 발달이 되어서 굳이 번거롭게 준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도서관을 다니게 되면서 도시락을 싸기 시작하면서

세삼 옛날 도시락세대였던 날들이 떠오른다.

양은 도시락에 김장김치를(강원도에선 짠지라고 했다. 오래두고 먹으려고 젓갈도 별로 넣지 않고 짜게 만든 김치) 송송 썰어 깔고, 들기름 한 숟갈, 고추장 반 숟갈 넣고

그 위에 밥을 얹는 도시락을 책 보따리에 둘둘 말아가지고 학교를 갔었다.

남자는 사선으로 묶고, 여자는 허리춤에 묶고서.

조개탄 난로에(장작을 때기도 했었다.) 반 친구들 도시락을 데우면 도시락 익는 냄새에

넷째수업시간 선생님 목소리는 귓등으로 스쳐만 갔었다.

난 겨울이면 그 도시락이 생각나 똑같이 집에서 해 먹곤 하는데,

옛날 맛이 나지 않는다.(냄비와 가스레인지라서 그런가?)

그 시절의 분위기가 아니고,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도서관엔 난로가 없어서 김치 깐 도시락을 싸 올 수는 없다.

딸아이 초등학교 때(학교급식을 시행하지 않았었다.)

그때 도시락을 싸주면 친구들이 너희 엄마 요리사니? 할 정도로

다양하고 먹음직한 도시락은 아니지만

도서관을 다닐 동안은 내 맘대로 간단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닐 것 같다.

 

*학생들 때문에 도시락 메뉴를 바꾼 건 결코 아닙니다. 글에 재미를 위해 그 이야기들을 같이 엮었을 뿐입니다. 철없는 얘들이기 때문에 도서관에선 이런저런 재미나고 황당한 사건들이 종종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