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적정 노인 기준 연령 높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077

아부지, 나의 아부지


BY 모란동백 2013-01-18

아버지,

항상 내 맘속 한켠에 계시는 나의 아버지...

아버지 , 이글을 쓴다고 불러보는 당신의 이름이  나의 눈앞을 정신없이 흐리게 하네요.....

엄마와의 추억을 썼어요. 내마음이 홀가분 했어요.

 

아버지,

그곳은 어떤가요?

따뜻한가요 ? 춥나요 ? 편안하신가요 ?

하늘나라는 괜찮은곳 인가요 ?

엄마께도 동생들에게도 안나타신다는데 이 큰딸 꿈속엔 늘 아버지 모습이 보이니

무슨일이 있나요 ?  저에게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ㅠ_ㅠ

 

***************

나의 아버지는 동물병원 수의사 이셨다.

내가 어렸을적엔 가축병원이라고 했다. 살아있는 모든 생물들을 사랑했던 나의 아버지

\"새\"를 사랑하셨고 꽃을 , 소도 그리고 강아지와 개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살리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기억이있다.

 

아버지는 함경도 삼수갑산이라고 하는... 풍산개가 유명한 풍산마을에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일본 **제대 수의학과를 졸업하셨다.

그런이유로 북한에서 아버지가 숙청대상 제 1호 였단다. 대지주의 아들이였고 일본유학을 다녀왔고

이런저런 이유로 나의 아버지는 늘 불안한 대상이었단다. 그때그시절에 그 이념땜에.....

아버지는 북한체재가 불만이셨단다.

 

6.25 가 터지고 함흥에서 숙청대상의 제1대상이었던  아버지는 나중에 가족들을 만나기로 하고

함흥부두에서 홀홀단신 맨몸으로 남하 하셨단다.

그렇게 남한에서 나의 엄마를 만나고.....

 

난 이상하게 서넛부터 예닐곱까지의 기억이 너무 생생하다.

나의 머릿속에는 온통  거기에 머물러 있다.

아버지는 우리나라에서 몸만 내려왔으니 당신이 아무리 의사라해도 누가 믿어 주겠는가 ?

1960여년쯤에 우리나라는 고급의술인력들이 넘 없어서 아버지의 고급의술을 \"시\"에서 인정해주어

보건소에 취업을 알선해 주었단다. 거기서 아버지의 욋과 기술은 빛을 발하였고...

곪고 터지고 부스럼 많고 열악한 우리나라의 정말 가난하고 힘들고 찌들었을때,

나의 아버지는 그들을 꿰메고 고름을 짜고 소독을 해주고 욋과의로 소임을 다하셨던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하얀가운에 청진기 메고 계시는 모습을....

피고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 그것을 당연한 나의 일상으로 보게되고........처절했던 시절 그렇게

사람들에게 봉사하시는 아버지의모습을 보며 나도 아버지같이 살아야지 하는 꿈을 갖게된다. 

그렇게 우리나라가 점점 안정을 찿아가고 아버지는 정식의사로서 시헙을 치게되는데

의대출신의 젊은이들이 들고 일어 났단다.

아버지는 욋과의로 꿈을 접고 어느날.....

일본에서 졸업한대학에 편지를 쓴다.그 모습 기억하고 있다. 초등 1학년때인가 2학년때인가 ~

근데 졸업장과 함께 수의사면허증이 같이왔을때 아버지는 만세를 불렀다. 그모습도 생생하다.

그렇게하여 아버지는 가축병원의 수의사로써 출발을 하신다

 

그러나,

사람도 먹을거 없어 외국의 원조에 의존했던 우리나라....

설탕배급,밀가루 배급을 해주고..... 이런얘기를 남편과 그때그시절을 추억해보면 난 호강에 지쳐있었나보다

시골에선 설탕이 왠말이고 밀가루가 뭐냐고.... 그랬단다. 적어도 부산에선 설탕, 밀가루 수돗물배급

정도는 공급받았다. 나름 딴 지역보다는 풍요로왔던거 같다.

엄마가 의상실을 했으니 딴집에서는 구경도 못했던 \"빠~다\" (버터) 와 까레꼬 (카레가루) 코~피 (커피)

이런거는 우리집에는 있엇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것을 자식들에게 먹을것을 공급하여 주었다.

덕분에 지금생각해보면 잘먹고 잘 살았던갔네 ㅎㅎ

 

영업은 잘 안되었다.

사람 먹을것도 없는 데 무슨 개들에게 까지....

그렇게 아버지는 시골 김해 라는곳에 동물병원을 옮기게 된다. 그때는 소키우는것이 굉징히

부농의 상징이였던같다. 아버지는 시골 수의사로 자리잡게되며.......

30여년전 아버지는 그렇게 어느 농가에 태어나는  송아지를 잘 받아주고

오트바이로 돌아오시는길

시골 논둑을 오시다가 ...그렇게 하늘나라로 가셨다.

 

사진을 사랑하시고

더불어 유명 카메라를 유품으로 남겨 두셨고

영화를 사랑하셔서 덕분에 아버지따라 영화구경도 많이 갔던 나...

쇠고기를 좋아 하셔서 불고기 양념맛있게도 잘하셨던 나의 아버지

우리들에게 한점씩 골고루 나눠주면 맛있게도 받아먹었던 그때그시절.....

빨갱이가 싫다고 우리집 김치는 빨갛게도 못담구었던 추억....

빨간색만 보면 식은땀을 줄줄 흘리셨던 아버지의 가슴시린 한을 이 큰딸은 너무나

잘 안다.. 명절이면 음복한잔에 두고온 고향가족들 그리워하며 눈물을 훔치시던

나의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말없이 힘을 실어주시고 나중 훗날 멋진 의상실의 사장님 되셔서

그 동네의 자존심 넘치시는 사모님으로 탄생되게 하여 주시고....

 

이큰딸은 당신을 영원히 못 잊있고..

의술보다 인술을 베푸시던 우리모두 배고팠던 시절.....

봉사하시고 그렇게 사람들을 살리시고 강아지를 개를 사랑했던....

 모습을 나는  잊을수가 없다.

 

지금 내 옆에서 콜콜자고있는 콩이가 어떤때는

아버지가 환생하셨나 ?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빤히쳐다볼때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아부지, 나의 아부지 그곳에서 평안한 마음으로 계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