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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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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물 안 묻히고 사는 여자


BY 새봄 2012-12-26

손에 물 안 묻히고 사는 여자.

많은 여자가 바라는 유토피아는 이런 삶이 아닐까한다.

여기 그런 여자가 딱 한명 있다.(여러 명일 수가 없지만)

 

우리의 만남은 묘하면서 아리송한 만남이다. 남편과 같은 계통 일을 하는 남자의 부인.

그러니까 남편끼리 서로 뜻이먼저 맞았고, 아이들이 고만고만 비슷하고 그래서 친해지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여자 고향도 강원도 문막이고, 난 횡성이라 더 친해지는 원인이 되었다.

서로 큰아이 이름을 따서 유진이 엄마, 청아엄마로 부르며 가족여행을 많이 다녔다.

유진이 엄마는 청량음료처럼 톡 쏘는 명랑함이 있었고,

남편은 우직하고 덩치도 산만하니 산에 있는 바위 같은 남자랄까.

반대로 우리 집은 여자처럼 수다스런 남자와 조용하고 붙임성이 없는 여자인 나.

그래서 그런가 그리 시끄럽지도 어색하지도 않게 잘 조화를 이룬 두 가족이었다.

 

앞날은 우주의 어둠속만큼이나 모르는 일.

아이들 어릴 땐 혼자가 될 줄 상상조차 안했었다. 유진이 엄마나 나나.

유진이네는 부자였다. 남편이 탄탄한 회사의 사장이었고,

유진이 엄마친정도 부유해서 유진이 엄마는 직장 생활을 한 적이 없었단다.

우직해 보이던 유진이 아빠는 술에 빠져 있을 때가 많았고,

그러다보니 술집여자와 조화를 잘 이뤄 툭하면 외박을 일삼았다.

나의 남편이란 남자는 술과 도박과 방량 벽이 심해서 안 들어오는 날이 태반이었다.

유진이네는 경제적으로 탄탄한 집안이라 돈줄이 마르지 않는 큰 우물이 있었지만

우린 샘솟는 우물이 아니라서 금방 모래밭이 되었다.

사업도 망하고 집도 모래먼지처럼 사방으로 흩어지고

남아있는 건 풀 한포기 자랄 수 없는 덩어리진 빚뿐.

난 얘들 둘을 데리고 친정으로 들어가야 했고,

남편은 빚에 쫒기는 신세, 얘들 아빠 소원인 방량을 맘대로 하는 나그네가 되었다.

 

몇 년 후 유진이네도 합의하에 헤어지기로 했단다.

경제적으론 걱정이 없는데, 다른 여자의 부적절한 관계로 인해 배신감과

성격 차이로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여자의 마음은 유리잔의 흙탕물과 같다.

고요히 두면 맑은 물이 되지만 흔들면 흙탕물이 되어

결국 마음이 시끄러워져 마음을 잡을 수가 없다.

시끄러워진 유진이 엄마는 마음을 잡으려 고향으로 내려왔고,

아이들은 남편이 맡기로 해서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었다고 한다.

유진이 엄마에겐 친정에서 준 땅이 많고, 위자료도 넉넉해

이혼 후 해외로 국내로 여행을 다녔다.

이년동안 1억을 썼다고 하니 과히 대단한 경제력과 새처럼 가볍게 날아다닌 세월이었다.

나는 아이 둘을 키우랴 일하랴 두 날개가 무거워서 여행을 떠나지 못했고,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그럴 생각조차 가질 수 없었다.

 

유진이 엄마가 살고 있는 원주 집은 개한마리가 맞아주는 아늑한 곳이다.

집 곁에 있는 목련꽃잎을 따서 말렸다는 꽃차를 타주고,

취미로 모은 고가구와 요즘 취미에 빠진 손 바늘질한 천이 벽이고 식탁위에고 줄줄이 널려있었다.

정신 차렸어. 돈 만 쓰고 다니다가 이제 조신하게 수놓고 있지.

그래 마음을 잡을 수 없었겠지, 돈만 많다고 행복하지는 않았을 테니.

유진이 엄마는 얘들을 키울 때도 살림에 관심이 없었고, 반찬도 맛이 없었다.

두 가족이 여행을 가면 내가 음식 준비를 했고,

유진이 엄마는 통닭을 사오거나 외식하는데 돈으로 해결을 했었다.

남편이 주는 돈이 풍족해서 그 돈을 가지고 종일 쇼핑을 했고,

그러지 않으면 친구들을 만나 서에 번쩍 동해 번쩍 여행을 다녔었다.

아이들을 맡아 키워줄 시집이 옆에 있어서 아이들을 두고 잘도 떠났었는데...

남편으로 알게 된 인연이라 남편들이 떠났으니 다시 만나기가 껄끄러웠을 텐데

홀로 남은 여자 둘은 자주 연락을 하고,

가끔 유진이 엄마가 떠나 살고 있는 원주에서 만나기도 했다.

붙임성 뛰어나고 외모도 수준급이고 아낌없이 베푸는 타입이라 그런지

만날 때마다 유진이 엄마 옆엔 남자가 항상 있었다.

집을 휙 떠나듯 남자들도 훅하니 잘 만나고 잘 떠났고 그렇게 자유부인이 되었다.

지금도 머슴처럼 집안일과 운전수처럼 운전을 해주는 애인이 있다 보니

손에 물을 안 묻히고 살고 있다.

때마다 밥 차려줄 남편도 없고 뒷바라지할 아이들은 남편이 알아서 잘 맡았고,

주머니엔 돈이 두둑하니 뭐하려고 고생하며 살겠냐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손에 물 안 묻히고 사는 여자일 수밖에.

 

그렇게 오랜만에 유진이 엄마랑 원주에 가서 하루를 놀았다.

밑반찬 두 가지를 해 가지고 갔더니

내가 반찬 못하는 줄 알고 해 왔구나. 하하하~

난 사람들 만나는 건 좋은데, 우리 집 오는 건 부담스러워 음식을 못하니까, 푸핫.

군대 간 아들 휴가 나와 시간 없어 못 온다고 하면 더 좋아  밥해주기 귀찮아서. 크합합.

수놓은 천을 보며 유진엄마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되어 수만큼 예뻤다.

이제 돈 그만 쓰고 수놓으며 살려고, 산 밑에 땅이 있는데 내년에 집을 지을까 해.

고가구 전시장도 같이 짓고. “

유진이 엄마 친정에서 물려받았다는 시골 땅을 보러갔다.

원주에서 가까우면서 도로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고,

소박한 마을이 형성돼 있는 위쪽에 땅이었다.

뒤에 산으로 둘려 쌓여 있고, 앞엔 좁다란 계곡이 흘렀다.

내가 원하던 그런 곳. 시골이면서 산골분위기가 나는 그런 곳,

청아 엄마도 이쪽으로 이사 와서 살아. 이제 얘들도 다 크고 홀가분하잖아.

일산과 멀지도 않고.”

그렇다 우리 집 앞에서 고속버스를 타면 두시간만에 원주에 도착을 한다.

햇볕도 잘 들고 조용하면서 외떨어져 보이는 않는 아늑한 마을이었다.

땅을 나눠서 집을 지으려고 해. 나눈 땅을 팔던지 아님 집을 지어 세를 놓던지.”

세놓으면 내가 세 들어 살아볼까? 적응되면 나도 작은 시골집을 사든지 하면 될 것 같다.”

그래 좋다~~”

우린 각자의 꿈에 부풀어 물빛 하늘을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