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문턱에 와 섰다.
김장철이 시작되었다.
빌라 입구에 배추가 절여지고 있다.
김장을 할까 말까 망설인다.
독거노인에게 보내지는 김치를 내게도 성당에서 한통 갖다주었으면 좋겠다.
신청을 하면 된다지만 선뜻 신청을 할수는 없다.
봉사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바라는것은 얌체짓이다.
요즘은 음식 만드는 일에 자신이 없어졌다.
비단 음식뿐이겠는가.
만사에 자신이 없어진것은 건강을 잃은탓일수도 있고 늙어가는 과정일수도 있다.
두가지가 한꺼번에 다 찾아온 탓이겠지.
음식이든 무엇이든 잘난체를 하고 싶지가 않아졌다.
예전엔 엄청 잘난체 해왔던것 같다.
전문가도 아니면서 음식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던 일이 부끄럽다.
그러니 늙으면 점점 말이 없어지는 모양이다.
말이란 건강과 자신감이 있어야 많아지는것이 아닐까.
며칠 일산에서 언니와 지냈다.
기침은 암센터의 처방을 받고서야 물러앉는듯 했다.
다행이다.
폐를 또 찍었다.
내 몸은 언제까지 사진촬영을 할것인지 모르겠다.
오산으로 돌아오는 자유로와 고속도로는 밀리고 있었다.
음악이 지루함을 달래주었다.
친구가 준 테이프는 옛날 팝송을 들려주었다.
젊은 시절에 들었던 음악은 우리에게 추억을 불러준다.
젊음이 있고 사랑이 있던 시절엔 이런 날을 예측하지 못했다.
만남의 장소에 차를 세우고 우동한그릇을 먹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는 우동에도 추억은 있다.
잃어버린 시간들에 연연해하지 않기로 하지만 가끔 떠오르는
장면에 혼자 쓸쓸하게 웃는다.
누구나 많은것을 잃어버리고 산다.
잃어버려야만 다 버리고 갈수 있는것이겠지.
놓아버린다는 것과 잃어버린다는 것의 의미가 같은것일까.
다 놓고 빈손으로 홀가분하게 돌아설 때까지 잃어버린 것에대해 연연해하지 않기로 한다.
등을 돌린 자식이든 남편이든 내 안에서 다 이제 놓아준다.
각자 행복하면 그 뿐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