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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순의 주인공


BY 그대향기 2012-08-13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 어쩌면 내가 그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다.

엄마만 아니었더라면, 엄만 내 운명을 뒤 바꿔버린 결정적인 사람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 핸드볼 팀의 주장이었다.

힘도 쎘고 골감각도 있어서 경기마다 거의 우승을 했다.

도민체전에도 시 대표로 나갔고 그 날 아침 우리팀의 골키퍼만

어리석는 짓을 하지 않았다면 전국체전까지 갔을지도 모른다.


 

결승전이 있던 날 골키퍼의 옷차림이  안 갖춰졌다고 코치님한테

야단을 맞은 골키퍼는 상대팀의 골을 가만히 서서 막질 않았다.

골문에 서 있는 허수아비처럼 골키퍼는 바보짓을 했고 우린 당연히 지고 말았다.

내가 핸드볼을 시작하고 최초로 져 본 게임이었다.

충격도 충격이었지만 전국체전에 출전해 보지 못한다는게 억울했다.

내가 온갖 어려움을 다 헤치고 골을 넣는것 보다 상대는 허수아비 앞에서 장난처럼 넣고 있었다.


 

 

코치님이나 우리 팀원들이 목이 터져라 정신차리라고 했지만 뭔 고집이었던지 요지부동

나는 울면서 우리 팀원들을 독려하며 게임을 이어나갔지만 역부족이었다.

도민체전에서 지고 내려왔지만 코치님은 여기서 접기에는 내 기량이 아깝다고 하셨다.

페스연습도 남학생이나 코치님하고만 했을 정도로 내 팔힘은 좋았다.

볼만 잡았다 하면 어떻게든 골문까지는 몸싸움에도 안 졌고 골로 성공시키고야 말았다.

초등학교 때 부터 덩치도 좋았고 게임을 읽어나가는 센스도 있었고 힘은   그 때나 지금이나 쎄다.


 

도민체전에서 지고는 왔지만 코치님은 나를 서울에 있는 여중에 추천서를 써 줄테니까

운동을 쉬지 말고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다.

기숙사가 있는 학교에 운동 장학생으로 보내줄테니 그 힘과 실력을 썩히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기쁜소식이라고 집에 와서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가 완강하게 반대를 하셨다.

그냥 말로만 반대를 하시는게 아니라 식음을 전폐하시고 단식투쟁으로 나오셨다.

운동을 계속하고 싶은 나는 엄마를 달래봤지만 엄마는 생면부지 낯선 서울 땅에 어린 나를 못 보내시겠다고.


 

남자들만 득시글거리는 집에서 유일하게 딸이라고 의지하던 나를 낯선 서울에 떠나보내기 두려우신 모양이었다.

울면서 매달리고 아무리 가고 싶다고 해도 코치님이 엄마를 설득해도 엄만 흔들리지 않으셨다.

\"아까운 아이라서요.... 서울에서 운동을 체계적으로 하면 훌륭한 선수가 될 거고 나중에 지도자의 길을

걸을  수 있어요.어머니 한번만 더 생각해 봐 주세요. 힘이 좋고 운동을 잘 하는 아입니다.\"

\"아이라예 선생님.우리 숙이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에는 못 보냅니더. 그냥 돌아가시지예.

 운동도 뒷바라지를 잘 해 줘야지 없는 형편에 먹는 것도 시원찮았는데 미안해서 안됩니더.\"


 

엄마는 초지일관.

내가 울면서 애원해도 코치님이 그렇지 않다고, 서울만 가면 먹고 자고 학교 생활 전부가 다 공짜라 해도

안 믿었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나는 우울한  졸업을 했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여군에 지원을 했다.

군대가 내 체질에 맞는 것 같았고 여군이 멋있어 보였다.

대구에서 신체검사와 필기시험을 마쳤고 드디어 서울에서 최종면접이 남아있었다.

며칠 후면 서울에 가야하는 날이 다가왔을 때 엄마한테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는 또 단식투쟁.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 못간다 그리 알아라.. 내 죽기 전에는 니 못 떠나보낸다.


 

고등학교를 나 혼자 힘으로 한다고 집을 떠날 때는 보내주시더니 ........

곡기를 끊고 누워 계시는 엄마를 두고 서울에 갈 수는 없었다.

그 때 그냥 갈 걸.....무슨 일이야 있었겠어?

만약에 엄마가 처음 서울로 운동하러 간다고 했을 때 나를 보내주셨더라면?

아니면 여군에 간다고 했을 때 순순히 보내주셨더라면 지금쯤 멋진 여군장교가 되어 있을건데.

엄만 내 운명을  왜 번번히 가로 막고 서셨을까?

아니면 이게 내가 걸어와야 했던 운명이었을까?

종교적인 이유를 대자면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나의 길이었을까?



 

이번 런던 올림픽을 보면서, 특히 핸드볼 경기를 관전하면서 참 감회가 새로웠다.

만약에 내가 서울로 핸드볼 유학을 갔었고 지금의 나이가 되었더라면 뭘 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현역은 아닐지라도 선수들하고 호흡하는 직업을 갖고 있지는 않을까 싶다.

요즘도 핸드볼 경기만 보면 내가 뛰었던 게임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시절이었지만 남학생들 팬이 많았고 운동을 하면서도 그런 시선을 충분히 즐겼던 것 같다.

우생순의 주인공이 되었을지도 몰랐던 나의 운명을 엄만 주방장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던걸까?

우생순의 주인공이 되었더라면 지금의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은 없었겠지만.ㅎㅎㅎㅎ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어린 날의 화려했던 운동선수시절이 런던 올림픽으로 다시 그립다.

 


(올여름 나를 위로해주러 찾아온 부엉이 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