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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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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신(答信)


BY 金木犀 2012-07-30

작년 가을이었나? 청진동 모퉁이를 돌아서다가 얼어붙은 듯 그자리에 서버렸다.

 

피맛골 재개발구역의 울타리에 나붙은 뮤지컬 광고가 사정없이 나를 빨아들여서였다.

 

\"한천년 서있다 보면 만날까?

 저 골목어귀에서 맺은 인연\"

 

쇼크였다.  

 

변변잖은 시력으로 눈을 가슴츠레 뜬 채 나는 읽고 또 읽었다.

 

반백이 되도록 정녕 하고픈 말이 아니었던가?

 

입가를 뱅뱅 맴돌면서도 명료하게 잡아내지 못하던 내 맘

 

내 청춘의 각혈이 바로 피맛골 연가의 선전 문구로 비로소 터져나오고 있었다.

 

피맛골이 걸쳐있는 종로  일대는 내가 산 세월의 더께가 쌓여간 곳이었다.

 

사랑의 역사도 모진 이별도 다 거기...

 

회한이 다시금 옥죄여와서 이가 맞지 않은 톱니처럼 어그러져간 운명을 떠올렸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도 모르고 못난 객기로 탕진해 버린 시간일레,

 

아, 그랬어 스무살의 우리가 가난한 사랑이냐  배부른 결혼이냐로 한참을 헤맬 때

 

열 댓살이나 더 많은 친구의 언니가 말했지.

 

\"첫사랑을 만나면 꼭 물어볼래 왜 말없이 갔냐고?

 헌데 딴사람과 결혼해 그 사람을 그리며 산 세월도 괜찮았어.\"

 

종로 조계사 앞마당 여전히 회화나무꽃 한창 어울어진 이 여름

 

40년만의 답신을 그 언니에게 은밀히 보내고 싶다.

 

\" 언니... 난..... 안 괜찮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