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땀을 흘려가며 뿌려놓은 상추가 일주일 후 쯤 새싹이 올라와 손톱만큼의 잎을 내보였다. 묵혀놨던 밭에 엄청난 양의 풀을 뽑아내고 나서 퇴비를 뿌려가며 하루 종일 매달린 노력의 결과였다. 오우 사랑스럽고 예쁘도다.
며칠 후 쏟아지는 장비에 여린 것들이 견디지 못하고 다 떠내려 가버렸다. 겨우 몇 포기가 고랑에 위태롭게 붙어 간신히 자리 잡고 남아있었다. 고된 노동으로 얻은 여린 새싹들이 하룻밤 비에 허무하게 쓸려 가버린 잔해를 쳐다보며 헛웃음을 웃었다.
또 다시 며칠 후 점심 손님이 없는 일요일을 틈타 새벽 6시에 다시 밭으로 향했다.
상추씨를 다시 뿌려주고 나서 어리 디 어린 상추들을 모종삽으로 떠다가 쏟아지는 비를 맞아가며 두 고랑을 정성껏 다시 심어 주었다. 치커리도 두 고랑을 옮겨 심었다.. 스무 고랑에서 겨우 네 고랑을 건졌다. 때 맞춰 내리는 비가 고마울 따름이다. 비 오는 날 모종을 하니 분명 잘 자랄 것이다 . 스스로 위안을 하며 일을 마치고 흙투성이의 몰골로 밭작물들을 챙겨 돌아오니 배도 고프고 지친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찾아간 밭에선 며칠째 계속된 폭염에 어린 잎 들은 다 물러 없어지고 흔적만 남아있었다. 이럴 수가 ! 허탈했다. 대단한 농사도 아니고 한껏 상추 농사였는데 이렇게 힘이 들다니 지금까지 농작물을 사먹으면서 단 한 번도 땀 흘린 사람의 노고를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그저 비싸니 싸니 좋니 안 좋니 불평만 했었다.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 아닌지라 하늘에서 뿌려 주어야만 물을 줄 수 있는 사정이니 때론 안타까웠고 그악스럽기 만 한 풀들의 도전에 힘이 들었다. 숱한 땀과 아까운 시간을 흘려버리고서야 얻어낸 깨달음은 세상사 모든 것이 자연의 이치에 따라 순리대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두 번의 실패 끝에 얻어진 값진 교훈이다. 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아 지다니 참으로 어리석도다. 버리고 버리고 또 버리면서 농심을 깨달아 가는 중이다.
거창하게 농사를 짓겠다는 것이 아니고 그저 내가 운영하는 고기 집 에 직접 가꾼 상추를 내어주려 했던 것 뿐 인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땀 흘려 가꾸고 버리면서 농심을 알았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포기를 해야 할까? 아니면 삼세판 의 도전으로 한 번 더 시도를 해볼까?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았다. 때 맞춰 비가 내려야 하고 어린잎이 폭염에 시달려도 안 된다. 농사용 쟁기들을 주섬주섬 하우스에 던져 넣고 나서 나는 패잔병의 심정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하늘만 쳐다보는 농사의 시대가 아니다. 기계화된 영농 시설로 시설 재배를 한다. 오래전 자연에만 의지한 농사를 지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노동에 시달렸을지 짐작이 간다. 지금은 재배방법이나 시설 등 모든 것이 개선되어서 한층 수월해 졌지만 그래도 농산물은 노동집약적인 상품이다. 먹을 때 마다 수고한 분들의 땀을 감사히 생각해야 할 것이다.
버리고 나서야 얻은 귀중한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