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도 많고 말도 많던 칠월 마지막 날이다.
퇴원후 일주일동안 아들집에 머물었지만 누군가 나를 위해서 반찬을 만들고 쥬스를 만드는 일에
익숙치않아 바늘방석이었다.
대우도 받아본 놈이 받는다고 내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폭염은 계속되고 그냥 있어도 아기들과 힘든 마당에 병든 시어머니가 턱하니 와 있으니
내색은 하지 않지만 보통 일은 아닐진대 아들집에서 나갈 핑게거리를 찾기에 분주했다.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아기들과 어울리는것은 좋지 않을것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집을 나섰다.
아기들에게 좋지 않을것이라는 내 말에 더이상 며늘아이가 나를 말리지 못했다.
일산 언니네에서 이틀간 머물고 언니와 병원에 갔다.
유방암 일기라서 항암치료는 하지않고 방사선 치료만 하면 된다는 소식에 늘 그렇듯이 불행중
다행이라는 말을 하며 언니와 웃었다.
불행중 다행...
우리는 그것에 늘 기쁨의 기준을 둔다.
입버릇처럼 말한다.
다행이야.. 라고.
유방암 초기라서 다행이고 폐암이 아니어서 다행이고 항암치료를 안해서 다행이고....
많은 다행의 고비를 맛본다.
아버지는 또다시 물으신다.
\"너 왜 이렇게 오랫만에 온게야.\"
\"제가 수술을 했잖아요.\"
\"무슨 수술인데?\"
같은 질문을 계속하시면서 매번 놀라시는 모습이 슬프다.
아버지의 머리속에 지우개가 생긴 모양이다.
지우고 또 지우고 깨끗해져간다.
자칫했으면 저런 아버지를 언니에게만 맡기고 혼자 훌훌 떠날뻔 했다.
얌체처럼...
이제서야 언니가 혼자 울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한다.
방사선 치료 예약이 열흘이나 남아있어서 오산에 돌아왔다.
친구가 준 수동 싸브를 운전하며 고속도로를 달려 오산에 오니 마치 고향에 온듯하다.
오른쪽을 수술해서 기아 변속이 약간 불편하긴 하지만 오랫만에 해보는 수동 운전이 재미있기도 했다.
집은 불구덩이였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시골밥상집에 가서 청국장을 먹었다.
이제부터 기름진것을 피해야한다니 좋아하는 고기는 안녕인가보다.
뭐 먹고 싶어? 라는 질문에 고기라는 대답도 이젠 그만해야한다.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파마를 했다.
정신을 차려야겠다.
내 손을 이끌고 신부님 앞으로 가서 안수기도를 부탁하던 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세상에 대해서 빚진것을 갚으려면 더 열심히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좀 어때?
친구들의 전화를 받으며 오산에 돌아왔음을 소문냈다.
2012년 칠월이 이렇게 저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