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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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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번데기는 깨끗하고 많았다(1)


BY 허허연 2012-07-11

 

딸과 마트에 가서 와인 두 병과 새우를 샀다. 오고 가는 길에 천천히 걸으며 이야기도 하고 동네 구석구석 탐방도 했다. 뒷길풍경이 새롭다. 사람 사는 모습이 정겹고 아름답다. 분주하고 소박하고 그러면서도 한가한 거리풍경. 아저씨들은 빈대떡집에서 막걸리 한 잔 기울이며 담소하고, 프랑스식 작은 커피점엔 젊은 아줌마들이 멋지게 앉아  있고 야채 과일가게엔 할머니와 올드 아줌마들이 머리를 숙이고 저녁상에 오를 찬거리를 고른다. 방앗간, 철물점, 전파사, 빵집, 구두수제화가게, 빙수가게, 큰 길에서 볼 수 없던 상점들이 옛날 모습으로 앉아있다. 도깨비시장에 들어서니, 생선가게, 그릇가게, 오뎅집, 야채가게 등, 어린 시절 엄마따라 갔던 시장통 모습을 닮았다.

 

\'여기 순대 30원어치 주세요. 여기서 먹고 있어. 엄마 올 때까지\'

 

엄마 말대로 시장에서 제일 깨끗한 순대집 아주머니, 그 분은 내가 간을 좋아하는 줄 나보다 먼저 아셨다. 얇게 져미듯 썰어주시는 간은 순대와 함께 먹어야 맛있다. 간만 먹으면 씁쓸하기도 하고 텁텁하기도 하다. 오뎅 국물도 있어야 한다. 나는 순대 때문에 장에 따라가곤 했고 엄마는 나를 자랑으로 데리고 가셨다.

 

 \'딸이야? 동생이야?\'

 

엄마가 나를 가졌을 때에도 알고 지내셨던 새우젓 할머니의 인사말이다.

 

후라이팬에 소금을 깔고 새우를 구었다. 딸은 샐러드, 과일, 빵을 준비했다. 와인을 한 잔 쨍하고 새우를 먹는다. 아, 좋다. 딸이 할머니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한테는 먹고 싶은 이야기 함부로 하면 안돼.\"

\"응, 큰 일 나\"

 

하면서 둘이 후후댔다. 오늘도 딸이 새우 먹고 싶다는 말을 듣자 바로 새우 사러 나가자고 했던 나, 엄마유전자다.

 

\'엄마, 어디갔니?\'

\'응? 몰라\'

\'아침부터 연락이 안되는데, 어디 가신다는 말 없었어?\'

\'모르겠는데...\'

 

아무도 모른다. 도대체 어딜 가신거야. 말도 안하고. 남편은 장기간 부재중이었고 나는 입맛도 없어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데, 내 걱정 안 해주고 연락도 없는 엄마가 내심 서운했다.

 

\'딩동\' \'누구세요?\' \'나다\' (와! 엄마네)

 

현관 문을 여니, 땀을 흘리며 양 손에 묵직한 비닐봉투를 들고는 사냥이라도 한 흐믓한 얼굴로 나를 보고 웃는다.

 

\'어디 갔다 왔어? 이건 또 뭐야?\'

\'킹크랩 먹고싶다며?\'

\'그래, 노량진까지 갔다 온거야?\'

\'그래, 오면서 시원하라고 전철 문 앞에 서서 왔다. 문 열릴 때 찬 바람 쐬라고. 큰 솥 어디 있냐?\'

 

와인 잔을 놓고는 딸이 일어나서 할머니가 들어와서는 솥에 킹클랩을 구겨 넣던 이야기를 흉내까지 내며 이죽거린다.

 

\"할머니 말야. 솥에 킹크랩 넣으면서 다리가 나오니깐, 무서우면서 노련한 척 하며 주걱으로 다리를 때렸잖아. 나중엔 아예 다리를 잘랐어. 그런데 할머니 진짜 웃기는 이야기는 아키시아 꽃이야. 카레야 뒀다 먹으면 되지만 말야\"

 

우리는 효창 공원에서 뛰어놀다 아카시아 꽃 한 송이씩을 따먹으며 집으로 왔다. 우리 남매들의 손발도 우리 집 쫑(John)의 손발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러운 손으로 꽃을 따먹어서 혼났고 종일 쏘다녀서도 혼났다. 엄마의 잔소리는 행복한 꿈나라행 자장가였다.

 

이튿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엄마가 뒷곁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에 올라가서 장대를 가지고 꽃을 따고 계셨다. 꽃 따는 엄마. 뒤뜰은 뜰이라고 할 것도 없는 좁은 공간이었지만, 아카시아나무는 오래된 나무라 제법 키 큰 나무였고 꽃도 흐드러지게 많이 피어 있었다. 광주리는 김장 때 배추 씻어 담는 것이었다. 마루에 놓여진 광주리 안에는 아카시아 흰 꽃이 배추만큼 담겨있었다.

 

\'얘들아, 가 손 씻고 와서 아카시아 꽃 먹어라.\'

 

오늘은 밥 대신 꽃을 먹는 건가. 아니지. 엄마의 사랑을 먹는거지. 광주리만큼 크고 아카시아꽃처럼 달콤한 엄마의 우리 사랑을. 우리는 엄마가 무섭고 더러운 손으로 꽃을 먹은 죄가 있어 조용히 마루에 앉아 아카시아 꽃을 먹어보지만 이 꽃은 어제의 꽃과는 달랐다. 아카시아꽃이 피는 5월이면 아직도 허기져 엄마의 사랑 아카시아향을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