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늦은 시간, 아직도 비는 줄기차게 내리고 있다.
너른 마당에는 작은 연못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마악 피기 시작하던 백합들이 고개를 떨구는게 너무 안타깝다.
청보라색의 탐스런 수국도 꽃송이 무게에 빗물까지 더하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쩍쩍 갈라졌던 논이며 저수지 바닥이 언제 그랬냐싶게 고인 빗물로 출렁이기 시작했다.
한두번 빗줄기로 다 해결나는 일을 사람들은 발만 동동 굴리고 있을 뿐이다.
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작고 나약하기만 하다.
며칠 연속으로 칙칙한 날씨가 이어지고 습한 공기가 피부에 닿기만 해도 짜증이 나려고 한다.
행사는 다가오고 할 일은 태산같은데 조금만 움직여도 등줄기며 얼굴에 땀이 비 오듯 한다.
장날 시장에 가 봐도 맨날 나오는 품목이 고만고만....
저거 한번 먹어 봤으면 참 맛있겠다 ~~싶은게 없다.
날이 더우니 먹는 일도 버거운데 준비하고 만들어야 하는 직업을 가진 나는 더 하다.
가족끼리 먹고 사는 일도 한 여름에는 힘든데 날마다 대가족이니....
차라리 수련회 때는 수련회다 싶어 이 악물고 땀으로 목욕을 하더라도 잘 참는다.
어중간한 대가족이니 더운 날에는 하루에 한끼씩은 건너뛰고 싶을 지경이다.
나중에 진짜 나중에 은퇴하고 나면 남편더러 우린 하루에 꼭 두끼씩만 먹자고
손가락 걸고 도장찍고 복사까지 하고 맹세까지 다 했다.
사람이 꼭 세끼를 다 먹어야 하냐고~
한끼 정도는 간단한 과일이나 우유 정도?쯤으로 허기만 면하면 되지싶다.
단, 은퇴를 하고 육체노동에서 자유로와 졌을 때 이야기다.
요즘같이 푹푹찌고 습도까지 높아서 불쾌지수가 최고조를 치닫고 있을 때는 그저 너거로운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남도 남이지만 스스로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날마다 밥 국 반찬.. 밥 국 반찬..지겨울 지경이라 뭔가 색다른 별미를 해 드리고 싶었다.
더위도 날려 보내고 입맛도 확~당기는 것이 뭐가 있을까?
마트를 휘~둘러 보고있자니 감자가루가 눈에 띄었다.
그래.
오늘은 저 감자가루로 수제비를 해 드려야겠다.
껍질까지 있는 반지락을 넉넉히 사고 감자가루도 넉넉히.
반지락을 잘 씻어 두고 감자가루를 물렁하게 반죽을 했다.
반죽이 되면 나중에 수제비가 딱딱할 수 있어 할머니들이 드시기 힘들 것 같아서 무르게 했다.
울타리에 울라가던 애호박을 하나 똑~따고 감자도 굵은 것으로 서너개 깍고 잔파도 조금 준비하고
씻어 둔 반지락부터 솥에 넣고 뽀얀 국물이 나올 때까지 삶다가 끓기 시작하면 감자썰어서 넣기.
그리고는 수제비반죽을 재빨리 뜯어 넣었다.
손에 물을 넉넉히 발라서 뚝..뚝..뚝..감자반죽을 다 뜯어 넣은 다음 호박을 채썰어 넣었다.
반죽을 하면서부터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던 땀은 반죽을 뜯어 넣으면서 부터는 아예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뜨거운 열기를 앞가슴으로 받으면서 하는 일이다보니 여름에는 거의 땀띠를 내 몸처럼 달고 살아야 한다.
호박은 빨리 무르기 때문에 나중에 넣었고 감자는 좀 일찍 넣었다.
수제비가 투명해지려고 하면 잔파 썰어 둔 것과 마늘 찧어 둔 것을 넣고 굵은 소금으로 간을 했다.
입맛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나는 굵은 천일염을 간수 빼 뒀다가 애용하는 편이다.
그러면 국물 맛도 시원하고 맑아서 좋다.
잔파 송송 썰고 마늘과 고춧가루, 매운 청양초와 참기름을 넉넉하게 넣은 양념간장을 맛있게 해서
각자의 입맛에 따라 간을 더하면 반지락의 시원한 국물맛에 감자수제비의 쫀득쫀득한 맛이 어우러져
먹을 때는 땀을 흘리면서 먹더라도 한 그릇 다 먹고나면 몸이 시원함을 느낄수 있다.
이열치열의 더위 퇴치법이다.
이틀 전에는 수육까지 넉넉히 삶은 냉면을 말아드렸다.
그건 냉수마찰하는 기분이랄지....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