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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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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시청자


BY 蓮堂 2012-05-24

바깥일을 하고 있을 땐 TV를 별로 보지 않았다. 시간도 없었지만 흥미를 끌만한 프로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해서 매력을 느끼지 않은 것도 TV를 멀리하는데 한몫 했다. 이른바 바보상자라는 혹독한 별명을 얻은 물건 앞에서 희로애락을 표출 해 가며 시간을 빼앗기는 게 어쩐지 시간낭비 같아서 그 시간이면 차라리 책을 한 페이지 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이 TV라는 매체가 보지 않으면 궁금하지도 않다가 한번 보기 시작하면 매일 봐야 하는 일종의 마약 같은 중독성이 있다. 드라마 중독성은 폐인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붙들어 맨다.

소문난 프로에 대한 사람들의 입방아에 슬며시 동참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드라마는 희한하게도 중간에서부터 봐도 대강 내용을 파악할 수 있어 앞의 줄거리를 애써 알려 하지 않아서 좋다. 과연 이름값을 하는 드라마는 그래도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소문만 듣고 눈과 귀를 세우고 두 어 번 보다가 그친 드라마는 세대차이가 층을 지어놓아 도저히 공감을 할 수 없는 청춘 드라마다. 이젠 젊은 층이 즐겨보는 드라마는 더 이상 나의 얘기가 아니기 때문에 심상하다. 층을 지우지 않는 다큐멘터리나 살아가는 실제 얘기는 언제 봐도 가슴 한 쪽을 울리는 힘이 있어서 그나마도 보게 된다. 더군다나 어려웠던 고려짝 시절 얘기라면 그래도 눈 여겨 보는 나도 어쩔 수 없는 구세대다.

세대차이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사실 요즘 TV에 자주 등장하는 젊은 연예인들을 눈썰미 제로인 내가 알 턱이 없다. 더구나 외국인도 열광하는 K-POP 스타들조차도 의학이 발달하다보니 그 얼굴이 그 얼굴 같이 모두 닮은꼴이어서 내 안목으론 식별이 불가능하다. 특징 없는 인형 같은 얼굴에 쭉쭉 벋은 몸매는 암만 봐도 모두 쌍둥이 같다. 같은 성형외과의사가 만들었으면 인물이 다 똑 같다는 항간의 우스개가 빈말은 아니듯 해서 일부러 얼굴 익히려 들지 않는다. 우리 정서에 맞는 트롯 가수나 익히 알 뿐 알아듣지도 못하는 요즘 노래나 어린가수들이 나에겐 외계인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관심도 흥미도 없어 그 프로는 저절로 안 보게 된다. 세대차이가 달리 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언젠가 세대 차이를 줄이려면 인기 연예인 이름부터 외우라는 주문을 들은 적이 있지만 그 이름이라는 게 순전히 우리 이름도 아니고 국적도 불분명한 합성된 이름들이 많아서 외우기가 쉽지 않다. 가까스로 이름과 얼굴을 외운들 머리모양만 달리하고 나오면 다시 헛갈리는 아둔한 눈썰미로 인해 층간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들질 않는다. 더구나 떼로 우루루 몰려나오는 아이들은 이름과 얼굴을 무시하고 그냥 눈요기로 끝내야 된다.

어쩌다가 휴일에 금쪽같은 시간이라도 얻어 걸리면 리모컨을 들고 이리저리 훑어보았지만 마땅히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눈에 띄지 않았다. 내가 제일 싫어하고 혐오를 느끼는 프로가 매일 봐서 식상하다 시피 한 유명 연예인 앉혀놓고 미주알 고주일 사생활 벗기는 것도 모자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은밀한 부분까지 낱낱이 까발리는 토크프로다. 도대체 한 시간 이상 한 사람 붙들어 앉혀놓고 무에 그리 궁금한 게 많은지 별로 우습지도 않은 얘기에도 지들끼리 손뼉 쳐 가며 웃어재끼는 건 암만 봐도 시간 때우기에 급급한 오버액션에 가까운 것 같다.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는지 안하는지는 안중에 없다. 스튜디오에 그럴싸한 배경과 말치장만으로도 많은 시간을 채우는 덴 무리가 없어 보인다. 최소한의 제작비로 최대한의 효과를 보겠다는 방송사측의 얄팍한 상술 같아 그 프로만 눈에 띄면 부리나케 채널을 돌려 버리는 내가 암만 봐도 비대칭 인간 같다.

일을 손에서 뗀 지금 리모컨을 껴안다시피 한 생활을 하고 있어 그동안 이런저런 구실로 TV를 멀리한 게 조금은 머쓱하다. 그렇다고 매일 바보상자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진 않다. 전업주부의 일이라는 게 접어두면 완결이고 펴면 미결이다. 끝도 없는 일에 매달리기 보다는 이젠 될 수 있으면 나를 위해 시간을 할애(割愛)할 작정이다.

쪼갠 시간을 틈타 그동안 미처 몰랐던 방송사들의 특성이라든지 짜임새들을 살펴보니 볼만한 프로들이 즐비했다.

지상파 방송은 채널이 60여개나 되는 케이블 방송에 수적으로도 밀리고 내용면에서도 결코 앞서고 있지 않음은 며칠째 여러 채널을 섭렵한 내 판단에 의해서다.

선입견을 가졌던 비인기 채널이 의외로 승승장구 하고 있다는 신문기사도 내 시선을 끄는데 일조를 했고 일간지에 실리는 프로그램 안내는 내 입맛대로 골라보는 재미를 제공하는데 무척 유익하다. 전날 놓친 프로는 재방송이나 인터넷으로라도 봐야 직성이 풀리고 아슬아슬하게 끝난 드라마는 다음 이야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서글픈 TV 지킴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중독자는 아니다. 그냥 TV 마니아라고 해두자.

개인적으로 외화(外畵)를 즐겨본다. 그중에서도 특히 보는 내내 수없이 머리를 굴려야 이해할 수 있는 미스터리 영화나 스릴과 긴장감을 더해주는 첩보영화, 그리고 지구 종말을 앞세운 홍수나 지진 화산폭발 같은 무시무시한 재난영화는 단 일초도 시선 안 돌리고 숨죽여 보는 내 기호 일 순위다.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선정성 영화를 멀리한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남편은 그런 내 취향을 보고 \'무슨 여자가..\' 라고 폄하하지만 저질 정치인들이 치고받는 싸움판 토론 프로그램을 밤새워 보는 남편도 내 눈엔 그리 멋있어 보이진 않는다. 난 조용히 내용을 음미하며 보는 반면에 남편은 엄청 시끄럽게 본다.

특정지역 정치인이 하는 말은 다 고깝고 되어먹지 않았다고 강도 높게 성토 하지만 내가 봐선 별 볼일 없는 나으리에게까지 후한 점수를 주며 응원하는 남편의 입맛하곤 너무 다르다. 한마디 무어라고 거들면 나한테까지도 애꿏게 불똥이 튈 것 같은 험악한 예감이 들면 슬며시 자리를 옮긴다.

각자 취향이 다르다보니 각자 한 대씩 끼고 방에서, 거실에서 따로 논다.

이래서 아마 TV가 바보상자라는 억울한 별명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오랜만에 걸음 한 방을 돌아보니 안면 있는 우리 님들이 보이지 않네요... 아. 새로미님이 계셨네요. 라라언니도... 저를 기억 못하실지도 모르지만 이방은 항상 잊지 않고 있답니다.

특별한 곳이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