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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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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돌아서면 후회 할까 봐


BY 그대향기 2012-02-22

 

 

 

 

지난 설 명절 전이었다.

무슨 아이들 설빔 타령도 아닌데 그냥 새 옷이 한벌 사고 싶었다.

옷이야 이것저것 허드레 옷부터 제법 그럴 듯한 옷까지

외출복도 있구만 갑자기 새 옷이 사고 싶었다.

내 주제에 백화점 옷은 감히 엄두도 못내고 소위 말하는 메이커 매장에도 못 가는 간덩이다.

 

둘째의 치열교정이 있던 날 부산의 도매 시장엘 갔었다.

도매시장이 거의  그렇듯 비좁고 복잡한  미로같은 도매시장 안을 이리저리 둘러 보는데

난 완전 구닥다리나 걸치고 사는 깡촌아줌마 같았다.

매장마다 내 걸린 옷들은 색상도 대담하고 디자인들도 얼마나 근사들한지...

유행의 흐름에 신경을 전혀 안 쓰는 척 모르는 척 하고 살지만

그래도 나도 여잔데 이쁜 옷 멋진 스타일을 보면 자연스럽게 눈이 가는 건 사실이다.

 

그 동안 애들 키운다고도 참았었고

남편 뒷바라지  한다고도 참았었다.

그러고난 다음에는 외손녀가 생기니 내 옷은 아예 눈에도 안 들어오고

손바닥만한 여자애기 옷들만 내 시선을 뺏아갔다.

그러면서 지갑을 훌렁훌렁 열어젖히고 구렁이 알 같은 돈도 안 아깝다 생각했었다.

아직 기지도 못하는 외손녀 옷을  몇 벌 씩이나 사 걸어 두고 딸을 졸라댔다.

\"예겸이 옷 사 뒀는데 놀러 안올래?\"ㅋㅋㅋ

 

그런데 그 날은 내 옷을 샀다.

물론 애기 낳고 아직 몸이 덜 회복된 큰딸의 편안한  옷도 두어벌 샀지만

내 옷의 단가가 가장 비샀기에 약간 찔리긴 했다.

누구누구의 선물이 아닌 진짜 내 옷을 산게 얼마만인데 그냥 편한 맘을 갖기로 했다.

그리고는 설 명절에 아이들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그 옷을 입고 시댁엘 갔다.

시댁에 갈 때는 허름하게, 친정에 갈 때는 제일 근사한 옷으로 입고 가랬는데

철없는 어린아이들처럼 새 옷이 입고 싶은 마음에 그 약은 상식을 깨고 말았다.

남편도 안 보이던 옷이라며 잘 어울린다고 했고 딸도 따뜻해 뵈고 부잣집 마나님 같다는 말을 해서

역시 옷을 잘 골랐나 싶어 속으로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설날에 얼마나 춥던지  그 옷이 유난히 더 돋보였고 잘 샀다 싶어 자화자찬을 하던 날이었다.

 

시댁에서 세배를 드리고 점심을 먹은 다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 주시던 시어머님은

시아버님의 간병으로 많이 지치신듯한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자주 가 뵙지도 못하는데 성격이 까다로운 시아버님의 간병으로   나날이 고되다고 하셨다.

간식거리나 약이 필요하시다면 그 당장 택배를 보내 드리는 남편이지만

그 날은 시어른들 명절 용돈도 설 시장비도 두둑하게 드리게 되었다.

시아버님 몰래 시어머님께 용돈을 따로 드리기도 했다.

점심 후 인사를 드리고 친정에 가기 위해 일어서는데 내가 입고 간 새 옷이 자꾸 걸렸다.

나는 아직 애들이 해 줄 기회도 더 있는데 어머님은 .............

 

아주 가끔이기는 하지만 내 돈으로 시어머님의 옷을 사 드리기도 한다.

현금으로 드리는게 어머님  취향에 더 맞는 옷을 사 입으시지 싶어서 용돈을 드리기도 하고.

그래도 그 날은 내가 입고 간 새 옷이 미안하고 죄송하고, 몸도 마음도 편치 않았다.

그런 마음은 결국 우릴 배웅하러 큰 길까지 따라 나오신 시어머님 어깨에 내 옷을 걸쳐 드리고 말았다.

놀란 시어머님은 추운데 넌 뭘 입고가냐고 손사래를 치셨지만 그렇게 강하진 않으셨다.

시어머님도 내 옷이 좋아보이신게다.ㅎㅎㅎ

\"저야 차 타고 가면 따뜻해요.

 죄송해요 어머님.

 어머님 새 옷을 사 드려야되는데...

 그래도 오늘 처음 입은 거니까 완전 새 옷이에요.

 다음에는 어머님 새 옷 사 드릴께요.

 고생하시는데 더 많이 못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어머님이라도 건강하셔야 합니다.\"

 

시어머님은  내 옷을 이리저리 만져보시고 주머니에 손도 찔러 넣어 보시더니 활짝 웃으셨다.

저렇게 좋아하시는데 내 생각이 짧았다 싶어서 얼마나 죄송스럽던지.

남편은 어머님한테 옷을 벗어 드리고 얇은 티셔츠만 입고 올라 타는 날 보더니

그리 싫지 않은 눈치로 괜찮겠느냐고...그러면서 나중에 더 좋은 옷을 사 줄테니 너무 서운해 하지 말란다.

나중에 후회가 남을 것 같아서 즉각적인 반응으로 그리했지만 마음이 얼마나 홀가분하던지.

물론 처음부터 시어머님의 새 옷을 사 드렸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겠지만

나도 새 옷을 너무 사고 싶었던 터라  멀리 계시는 시어머님은 잠시 잊었었다.

모처럼 산 새 옷이어서 아쉬움도 크지만 남편이 더 좋은 옷으로 사 준다는데 무슨 미련을 남길까.

그 약속을 언제 지킬지는 나도 남편도 장담은 못한다는게 큰 문제지만.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