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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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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의 의미


BY 수련 2012-02-20

어제 시어머니의 제사를 지냈다.

설쇠고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또 똑같은 음식을 만들려니 왠지 지루하다.

 

조상님도 매번 같은 음식을 드실려면 질릴만도 하겠다.

친구가 획기적인 이야기를 했다.

할아버지제사를 식당에서 지내기로 했다고.

으잉??

 

같은 음식을 매번 드시면 얼마나 지겹겠냐.

그래서 맛난 음식드시게 히려고 지방을 써서 탁자에 세워놓고

\"할아버지 오늘은 오리고기 드세요\" 하고 고하고 먹었단다.

시누이가 두 분 계시는데 예순 여섯살, 일흔살이라는데 그러라고 했다니

세상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시나 보다.

 

하긴 남의 제사에 감놔라 배놔라 왈가왈부할 필요 없다.

자신들의 조상이니 알아서 할 것이고, 제사 음식 또한 산 사람이 먹으려고 하는 것인데

살아있는 사람 위주로 하는 것도 그 사람들의 방식이다.

 

친정의 잦은 제사에 넌더리가 난 나는 장남에게 죽어도 시집가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

 

엄마는 파제날이면 온 동네사람 다 불러 제사밥을 먹이고 미처 오지못한 집에는

쟁반에 담아 갖다주었다.

어릴때 멋모르고 폴짝 폴짝 뛰어다니며 집집마다 \"밥드시러 오래요\" 소리를 질렀지만

머리가 크지면서 배달은 내 차지가 되었다.

\"엄마 이제 제발 그만해요\"

엄마는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손사래를 쳤다. 이웃간의 도타운 정을 어찌 끊냐고.

엄마도, 동네사람들도 남의 제사날을 다 꿰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이사를 가면서 그 진저리나는 제사밥 나눔은 끝났다.

 

정말로 나는 둘째아들과 결혼을 했다.

그러나 운명인가?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딸만 세명이이라는 이유로 시숙은 제사지내기를 거부했고

둘째아들인 남편의 호기로 제사는 내 차지가 되었다.

 

제사를 물려받은지 20년이 되었다.

그동안 일년에 여덟번의 제사는 다섯번으로 줄었다.

할머니가 두 분인 할아버지 제사를 합치고 남편이 아플때 시댁식구들의 성화로

절에서 천도제를 지내면서 9월9일 제사는 절에 올렸다.

 

매번 같은 제사음식을 하다보니 이제는 눈감고도 할 정도다.

예전에 남편은 제사 다음날 아침 출근하면서 나에게 엄명을 내린다.

저녁부터 제사 음식을 한 가지도 내놓지 말라고

지금은 말을 못하니 모른척 제사음식을 내놓지만 아예 그쪽으로는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그러니 최소한의 음식만 남기고 친척들이 갈 때 죄다 다 싸준다.

며칠 전 부터 장보고 하루종일 음식 만드느라 허리가 휘었는데..

가끔씩 회의가 생기기도 한다.

 

점점 퇴색되어가는 제사의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제사물려 받지 않으려고 교회를 나간다는 며느리들이 많단다.

시골에서도 제사를 합치는 경우가 많고, 추석,설 차례는 외국여행가서, 콘도에서 지내고

차가 밀리니 역으로 부모가 자식집에 가서 명절을 쇠고 오기도 한다.

 

나도 자식에게 제사만큼은 물려주지 않으리라 다짐을 한다.

성당에 미사를 올리고 제사날에 가족들이 가서 미사를 보고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 먹으라고 할 것이다.

 

내 며느리가 힘들지 않고 기분좋은 기례일을 맞이하게 하고 싶다.

제사는 앞으로 젊은 며느리들의 애물단지가 될 것이다.

그러니 미리 눈치밥 먹지않게 조치를 취해야 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