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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015

시월에.


BY lala47 2011-10-26

 

시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시월이 끝나는 날에 오산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혼자 있으나 여럿이 있으나 마음이 늘 스산하긴 마찬가지다.

가슴에 찬 바람이 부는 것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가 없다.

세상에대한 기대가 아직 사그러지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나자신에 대한 실망때문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지난 주말에는 친구와 중남미 문화원에 가서 마야문명을 관람했다.

일산에 오랜 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친구와 서삼릉을 걷고 파주 헤일리 마을로 차를 돌렸다.

주말이라 사람구경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들을 바라보며 우리의 젊은 날을 돌이켜 보았다.

참으로 순식간에 지나간 세월이었다.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웃음과 행복이 늘 그 자리에 머물러주리라 믿었더랬다.

어리석게도...

 

이사를 한후에 아버지가 매일 같은 질문을 하신다.

\"여기가 어디지?\"
\"내가 몇살이지?\"
\"오늘이 며칠이지?\"
\"지금이 몇년도지?\"
하루에도 수십번 반복되는 질문들 앞에서 나는 아버지와 눈을 마주치기를 피하고 언니는 눈물을 글썽인다.

산보를 나간 아버지가 길을 잃어서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달려나가는 언니...

이름표를 달고 교육을 받으시는 아버지..

교육의 효과가 전혀 없음을 본다.

어느새 입력 불가능의 뇌조직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슬픈 일이다.

그것이 어쩌면 나의 미래가 될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나는 자꾸 이 상황을 피하고만 싶다.

 

어제는 예술의 전당에서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열살 아래의 동생을 만나 점심을 먹었다.

분수대 앞에 감나무가 탐스러웠고 까치가 나무에 앉아서 감을 쪼아먹는 장면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젊은 시절을 한동네에서 보낸 사람..

아직도  나를 찾아주니 고마운 일이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음식이 맛있었다.

모르는 경우에  나는 말한다.

\"너랑 같은거 먹을래.\"
모르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변해가는 음식문화에 적응을 못한다는 말이다.

\"내가 현모양처 타입이었던가?\"
\"아냐. 언니는 그저 형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살았던거야.\"

\"그랬나?\"
\"곁에서 보기에도 대단한 사랑이었지. 형부의 웃는 얼굴을 보기위해서 종종걸음 치곤 했잖아.\"

\"그게 사랑으로 보이든?\"
\"그럼 사랑이었지. 단지 형부가 알아주지 못했을뿐이지.\"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짓는 언니가 내게 묻는다.

언니는 요즘 울보가 되었다.

\"넌 저런 절절한 사랑을 해봤니?\"
절절한 사랑을 해보았던가..

\"기억에 없어.\"

정말이다.

기억에 없다.

사랑이 무슨 색이었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아프고 그리웠는지도 기억에 없다.

괘씸했다는 마지막 부분만 입력되어 있다.

이렇게 모든 것은 잊혀져 가는가보다.

지나간 것을 잊었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수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본다.

 

언니와 아버지를 성당 노인대학에 내려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햇빛이 찬란했다.

\"이모! 우리 나가서 점심 먹을까?\"
조카의 말에 그러자고 답하고 창밖을 본다.

가을이 무르익어 간다.

상실의 계절이 아니라 수확의 계절임을 인식하기로 한다.

쓸쓸해하기에는 아까운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