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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십니까?


BY 그대향기 2011-08-22

 

 

 

 

비가 또 온다.

비 안 오는 날이 정상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다.

잔뜩 내려 앉은 하늘이며

눅눅한 공기

차양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

가뭄 끝에 단 비 소식이라야 반갑지

이건 반가운 비가 아니라 징글징글하다.

정신차리고 구석구석 안 돌아보면

언제인지도 모르게

쥐새끼보다도 더 빠르게 곰팡이가 쓸어있다.

락스를 묻힌 걸레를 끼고 살다싶이했는데도

너르디 너른 주방 구석데기엔 거무스름한

곰팡이가 악마의 꽃처럼 피어있다.

돌겠네~~~~~~

 

또 걸레를  들고 한바퀴 돌아 본 다음

유난히 더웠던 지난 여름 날의 흔적인 양

검게 탄 얼굴을 거실 거울에 비춰본다.

귀찮아서 싹뚝 잘라버린 머리는 더벅머리 섬머슴같다.

화장기 하나 없는 맨얼굴은

동남아에서 이주 해 온 불법거주자같다.

목 늘어난 면 티셔츠에 헐렁한 반바지

언제나처럼 내 전면을 감싼 앞치마 차림.

난 늘 보던 모습이라 오히려 편한데 남편은  아니라고 했다.

 

며칠 전 부산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던 차 안에서

남편이 뜬금없이 물었다.

\"당신은 행복해?\"

출장 갔던 일이 잘 끝나서 편안한 마음으로

의자 등받이를 최대한 뒤로 눕히고

목에는 차량용 베개를 목도리 도마뱀처럼 두른  자세로

발가락까지 까딱거리며 헐렁한 폼으로 갑자기 들은 질문이었다.

\"그으럼~~~행복하고말고.

일 때문이긴 해도 이렇게 가끔씩 드라이브도 하고

애들 공부 도중 하차 안 하고 잘 하고 있지~

당신 내 곁에 있지 안 행복할 이유가 뭐 있어?\"

 

난 너무나 당연한 질문이라는 생각으로 시원시원 대답을 했다.

그렇게 대답을 해 놓고도 룰루랄라~~`

카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에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정작 대답은 그렇게 해 버리고 나는 편한데

남편이 심각한 얼굴이질 않나~~

\"왜~~에~~???

난 행복한데 당신은 안 행복해?

건강한 마누라에 토끼같은 이미지는 이미 지났지만   이쁜 두 딸에

착한 아들 하나면 족하지 않나?

직장까지 든든하게 있는데 왜 그래?\"

 

나는 당연하단 생각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대답하고 있는데

남편으로부터 나온 대답은 너무나 의외였다.

\"난 안 행복해.

아니 덜 행복하다는 말이 맞겠다.

너무 여유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스톱장치가 고장난 전차같다고나할지....

당신이 건강한 아내는 맞았는데 그건 과거형이었고

이젠 내가 너무 미안해진단 말이지.

너무 오랫동안 일 시키는 것 같아 무능한 남편같잖아.

결혼하고 지금까지  당신은 무슨 일이건 늘 했고

지금은 건강도 옛날같지 않은데....

그럴수만 있다면 당신은 일 그만하고

집에서 좋아하는 꽃이나 가꾸고 몸 돌보는

조금 한가한 생활이면 참 좋겠었어 그래.

우린 둘 다 몸도 마음도 너무 여유가 없이 살았던 것 같아.

미안하다.

당신을 너무 고생시키기만 해서....\'

 

난 안다.

남편이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결혼하고 지금까지 몇번의 큰 수술을 한 남편이 마음이 급한거다.

늘 자신의 건강을 잘 체크하는 남편이지만

뜻밖의 일들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최근에도 날 무지하게 놀라게 한 남편이다.

물론 본인이 더  놀랐겠지만.

응급실에 입원한 남편이 혼자 이 큰 집을 지키는

내가 걱정이 되서  밤 늦게 전화했을 때

괜찮느냐고..더 많이 아프진 않냐고 물어야했던 내가

버럭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나 아직 홀로서기 할 자신이 없단 말이야~~!!

얼른 다 나아서 집으로 돌아 와.

이 집 너무너무 넓고 무섭단 말이야~

내 말 알아 들어???

빨리 집으로 돌아 오라구~~\"

 

내가 왜 그런 말도 안되는 전화를 했는지

아픈 사람한테 그런 말 밖에는 해 줄 말이 없었던가?

난 한심하고 또 한심한 아내였다.

내 고함소리를 듣고 놀란 고양이가 훌쩍 뛰던 모습에

볼을 타고 흐르던 내 눈물.............

자정에 가까운 시각에 거실에 등이란 등은 다 켜서 대낮같이 훤~하게  밝혔다.

혼자 오두마니 앉아서 어둠을 쨀듯이 마주했다.

이 어둠이 걷히면 날은 밝겠지만

남편의 몸 속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 쓰러질지 나는 모르는 일이다.

우리가 타고난  이  생명이란게

가는 방향도 모르고 길이도 모르기에 늘 우리는 약자같다.

내 몸을 나도 모르는 일이기에.

 

섬머슴같은 한 여자를 사랑했고 그 여자가 낳은 세 아이를

가족이란 이름으로  온 몸으로 사랑한 남자.

갓 쉰을 맞은 남자가 가족을 위해 또 자기 자신을 위해

더 많은 사랑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한다.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는지도 모르는 운명 앞에서

전신마취의 그 몽롱한 의식 끄트머리에서도 날 사랑한단 말을 가장 먼저 했던 남자.

사슴처럼 선하게 뜬 커다란  두 눈동자

더 못해 줘서 미안하다 말하는 다정한 입술

언제라도 잡으면 따뜻한 두 손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며 난 행복한데

남편은 그런 행복한 아내를 더 편안하게 못 쉬게 해서 미안하단다.

자다가 나도 모르게 끙끙 앓은   밤이면

새벽에 일어나는 나를 가만히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해 주는 남편.

 

그러면 되는 줄 알았는데.....

사랑으로 이렇게 살아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남편은 마음이 급한가보다.

50대에 접어들면서 마음이 더 급한가보다.

아이들 공부마치는 날까지 같이 거들마했는데

남편은 자꾸 미안하단다.

본인은 나보다 더 많이 아프면서...........

키 크고 힘 쎄고 건강하고 애들 순풍순풍 잘 낳고

수백명씩 밥도 설렁설렁 잘 하는 내가 제일 사랑스럽다던 남편인데

그런 내가 이제는 안스럽단다.

강호동처럼 천하장사였던 아내가

소리소문없는 세월이라는 장사에 무너지는 모습을

남편은 아프게 바라본다.

아직은 나 건재하다구 왜 그래~~~~

 

난 행복해.

지금 당장 그만두더라도 비 피할 내 집있겠다~

아직은 씩씩한 남편있겠다~

딸 둘 아들 하나 만점짜리 자식있겠다~

나만 바라보는 화초들 있겠다~

돈???

그게 문제긴 한데 좀 적으면 어때?

빚???

그것도 없는 사람보다 있는 사람이 더 많대잖아~~

세월이 가면 다 해결 날 일이고....

집에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피값으로

백화점이다 명품이다 쇼핑에 재미 난 여자가 아니어도 좋아.

남편이라는 작자가 빈둥빈둥 놀면서  마누라가 애새끼 업고

노점상단속에 걸리면 좌판 엎어가며  번 돈으로

노름하고 기집질 하며 날리는 서방도 남편이라고 호적에 올리고 사는  여자도 있다는데 뭐.

 

 

우리 그냥 이대로 사랑하며 살자~~

애들 얼굴에 그늘 만들어주지 말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날을 추억하며 늘 그 때처럼.

그 날의 그 운명적인 설레임을 상기하며

하늘이 이 땅에서는 우릴 다시는 못 만나게 하는 형벌을 주더라도

천국에서 다시 만나지 뭐.

난 그러고 싶은데 당신은 아니라고라?

더 날씬하고 나긋나긋한 여자 만나서 살아보고 싶다고~~

미안하지만 그 천국에는 그런 재미는 없다네요~~ㅎㅎ

글은 웃는데 가슴에는 피빛의 소리없는 눈물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