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그 사람에게서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스팸으로 걸어 왔었다.
\"니 몸이 내 이부자린데 정성드리면 여자지..나도 그럼 남자로 살았겠지 ㅎㅎ\"
미친 놈.
시도때도 없이 전화에 대고 죽인다 살린다 지금 간다.
너희 아버지도 죽여 버릴거다.니가 살아 숨쉬게 두나 봐라.
죽을 각오해라..
입만 떼면 죽인다는 말을 달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리면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고통을 어찌 알까..
죽기로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고는 나를 놔 줄 것 같지 않아서..
내 평생 지울 수 없는 일을 시작하고 한 이혼이었는데..
나의 고통보다 아이들의 마음이 더 문제였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나 하나쯤은 그 넓은 가슴으로 받아 들이고 안아 주고
평생 나의 단단한 바위가 되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되어서 주위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시작한 결혼.
그 나이가 되도록 변변한 직장도 없었고--아버님 개인택시를 간간이 몰고 있었다. 명함에는 00출판사 이사라고
했지만 그건 그냥 명함일 뿐이었다.--집에서 무위도식하는 ..하지만 일을 찾고 있다고 했었다.
결혼하고 한 몇달동안 일명 노가다라는 것을 하러 다녔다. 첫달 월급을 받아서 시어머님 손에 전해 주었다.
나도 드리고 그 사람도 드리고 나는 저녁한번 먹을 뿐이었다.
92년도부터 50만원씩 계속..
세금이며 00날이면 더 들어가는 건 기본이고..
그렇게 그 사람이 일을 나가지 않고 내 카드를 갖고 끊기 시작하고
집을 짓는다하여 학원 팔아 드리고 한달 쉬었나 도저히 집에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배는 불러서 4개월 어디 받아 주는 곳도 없어서 벼룩시장을 보고 00생명에 입사를 했다.
그래도 난 건강했고 아이가 배 속에 있으니 일을 해서 출산 준비물도 챙겨 둬야 했고
나의 바상금도 필요했었다.
누구 하나 내 입덧에 먹을거리 챙겨 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나마 나가서 벌면 내 먹을 거는 내 돈 주고 사 먹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가방을 두 개씩 들고 거리로 나섰다.
그렇게 월급을 받으면 또 생활비 달라시는 시어머님께 드리고 그 사람이 내 카드 사용한 대금내고..
얼마간의 돈을 통장에 모아 두었다.
그런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물혹이 커져서 아기까지 위험할 수 있다고..
수술을 받고 나오니 친구들이랑 낚시를 가야한다고 자리를 비워야 한다고 했다.
친정 어머니가 와 계시고 그 사람은 낚시를 갔다.
퇴원을 하는데 시집식구 한 사람도 보이지 않고 그 사람도 없고 엄마가 병원비를 내주셨다.
그리고 집에 가니 한마디 하셨다.
\"고생했다.\"
그렇게 아들녀석이 태어났다.
참으로 귀여운 녀석..
그 사람과 이혼직전에 내 뱃 속에 들어서서 갈라짐을 막았던 녀석..
그 아들이 그사람에게서 날 보호해 주었다.
든든한 바위가 되어서..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