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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없는 이별


BY 그대향기 2011-06-10

 

 

 

아직도 실감이 안난다.

너무나 갑작스런 할머니의 뇌출혈.

요 며칠간 머리가 좀 어지럽고 입맛이 토옹~~없다고는 하셨지만

뇌출혈까지 갈 줄이야...

이른 아침에 건강이 좀 어떠신가 들여다 본 그 할머니의 방에서는

이미 마비가 오기 시작하시는 할머니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그 전날에도 마당의 잡초를 뽑으시던 할머니셨다.

월남하신 분인데 생활력이 얼마나 강하신지 남들이 감히 흉내도 못낸다.

 

유복자를 기르시며 무섭도록 근검절약하셨고

잠시도 손을 쉬는 일이 없으시다.

공짜밥먹고 하나님 대하기 미안하고 부끄럽다시며

천국가는 날까지 뭐든 도움이 되는 일을 하실거라 하셨다.

너르디 너른 운동장의 잡초는 혼자서 도맡아 뽑으셨다.

작은 텃밭의 상추며 부추를  식사시간에 맞춰 알맞게 베고 씻어서 가져 오셨다.

혼자 몸으로 하나 아들을 대학까지 ㅡ시키시느라

여러가지 부업을 하셨고 손재주도 남달라 편물이며 손뜨개 미싱바느질도 아주 훌륭히 잘 하셨다.

 

잠자는 시간 빼고는 늘 일감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할일이 없으면 멀쩡한 옷이라도 뜯어서 다시 박음질 하실 정도로...

우리 아이들한테는 언제나 자상한 할머니셨고

또 우리 부부한테는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셨다.

좋은것이 생기면 나이든 할머니는 소용없다시며 양보하셨다.

소식을 하셨고 식탐이나 다른 물건에 대한 욕심도 없으셨다.

대쪽같은 원리원칙주의라 가끔은 좀 버겁긴 하셔도

남한테 해 되는 일은 일절 안하셨던 그런 할머니셨다.

 

그런 할머니께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뇌출혈이시라니..

내가 할머니방에 들어갔을 때에는 이미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하셨고

의식이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119구급차를 급히 와 달라 부탁해 두고

날 기억하느냐고~~내가 누구냐고 큰 소리로 외쳐도 반응이 없으셨다.

어쩌면 이리도 급작스럽게 나빠지실수가 있는지....

전날 낮에도 식사를 적게나마 하셨고 또렷한 정신으로 침대로 가셨는데

너무나 당황스럽고 큰 슬픔이 밀려 와 내 눈앞이 흐려졌다.

조금씩 자신들의 죽음을 준비하던 다른 할머니들하고는 너무나 다르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죽음과 맞닥뜨리시다니.....

 

여러 할머니들의 장례식을 치루면서 느낀건

연세가 있는 할머니들이시라 본인  죽음의 날까지도 정확하게 아시는 분도 계셨다.

유언을 미리 다 하시고 유품을 어떻게 처리하라는 말씀까지도 다 하시고 가셨다.

주변을 깔끔하게 잘 정돈해 두셨고 본인의 장례식을 어떤 분이 해 주시길 바란다는

사전 부탁가지도 다 하시고 가셨다.

수의며 다른 장례식비용까지도 미리 상조에 다 들어두시고....

참 대단한 준비성이시면서 그 마음이 어땠을까 싶으니 가슴이 먹먹했다.

 

그 동안 고마웠다고

우리아이들이며 우리 부부한테 아낌없는 축복기도를 마지막 힘을 다 쏟으시며 해 주시기도 했다.

그런 할머니들셨는데 이 할머니는 너무 갑작스러우셔서 본인의 준비를 아무것도 못하신 듯 하다.

119 구급차로 근처 병원에서 응급조치를 하고 곧 바로 대구 큰 종합병원으로 이송

다시 서울 더 큰 대학병원까지 인공호흡기를 달고 엠블란스로 가시는 동안 사선을 몇번이나 넘으셨다.

지금은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시어 겨우겨우 호흡만 하고 계시단다.

그 할머니의 유복자인 아들이 할머니의 병수발을 하고 있다.

모든 장기의 기능이 다 망가지셨고 심장과 폐기능까지 약하시니 오래는 못 버티실 것 같다.

그리운 가족분들의 마지막 인사나 받으시고 큰 고통없이 편안하게 가셨으면 좋겠다.

 

이목구비가 반듯하시고 이북에 두고 온 고향집을 늘 그리워하시던 할머니.

남편의 소식을 딱 한번 접하셨다던 할머니는 가끔씩 신혼시절을 이야기 하시기도 했다.

정미소와 술도가를 하셨다던  부잣집 친정집이 그리워 통일되면 꼭 같이 가자시더니....

어제 오늘 전화벨이 울리면 깜짝깜짝 놀랜다.

혹시나....이제 가셨습니다..그런 전화가 올까 두렵다.

여든 다섯의 연세가 서러울 연세는 아니시지만

이북에 두고 온 석달 살다 온 새신랑도 친정집 고향산천도

못  가 보고 그렇게 한과 그리움만 안고 가셔야한다.

십년이 훨씬 넘는 세월을 한식탁에서 그것도 내 바로 앞 자리에서 식사하시던 할머니셨는데

이렇게 황망히 보내드리려니 아쉬움이 너무 많다.

 

늘 이런 이별이 낯설고 힘들다.

얼마나 더 많이 ...여러번...할머니가족분들과 이런 이별을 해야 할까?

가시고나면 아주 오랫동안 떠나보내지 못하고 그리워하게 된다.

내 친정엄마보다도 더 많은 시간들을 함께 웃고 함께 즐거움을 누리던 분들인데

아주 떠나보내드리는 그 시간들은 가슴에 후회만 남게 한다.

더 자주 방으로 찾아뵙고 더 자주 말동무 해 들릴걸...

좋아하시던 매콤짭쪼름한 반찬을 혈압있으시다고  제한했었는데 ...

염색약을 더 꼼꼼하게 발라 드릴걸....

더운날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라도  한번 더 사다드릴걸....

 

지금은 귀로만 들으시고 입으로 말씀은 못하시는 할머니

흐릿한  의식만 남아있고 어느 하나 장기가 원활하게 돌아가기를 못하신단다.

신장기능이 제 역할을 못해서 24시간 혈액투석을 하셔야 한다는데 그것도 무리라고 했다.

온 몸의 혈액을  다 빼서 걸른 다은 다시 몸 속으로 보내야하는데

그러기엔 기력이나 심장이 너무 약하시니 쇼크가 올 수도 있다고 했다.

그 연세에 뇌수술은 다른 장기능까지 약하셔서 불가능하시다.

회복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우신데

환갑을 갓 넘긴 안타까운 외아들의 통곡소리만 서럽디 서럽다.

부디 가시는 그 길이 모든 시름 다 잊으시는 홀가분한 길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