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에서 지낸지 이주일이 넘어섰다.
누구와 함께 잠을 자 보질 않던 내가 언니와 나란이 이불을 깔고 잠을 자고 잠 자기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지만
실은 내겐 참으로 낯선 일이다.
그건 나의 습관밖의 일이기때문이다.
잠 자리에 누워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본 기억이 없다.
오손도손 남편과 나란히 누워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이런 결론에 이르지는 않았을지 모르겠다.
냉정한 사람이라고 말했던 일이 생각났다.
남을 침범하지 않고 나를 침범 당하지 않는 성격이 문제였을까.
애초에 나는 혼자 였어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괜히 남을 허기지게 했다는 생각마저 든다.
누군들 미래가 불안하지 않겠는가 하는 이야기..
남에게 충고나 설교를 해보지 않던 내가 설교를 했다.
각자의 일은 각자가 해결해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해왔다.
그 불안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신앙심 밖에는 없다는 설교를 하다보니 허세인것 같아서 혼자 웃기도 한다.
하느님이 내게 잘난체 하지 말라고 이놈 하는 것 같다.
조바심 내지 말고 기다리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는 내 결론은 어쩜 안이주의일수도 있겠지.
최선을 다 하며 기다린다면 어떤 결실이 있지 않을까 하는 내 희망은 그것이 단지 기대치에 불과하더라도
절망 할 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 시작할 작품 자료를 한아름 싸 안고 왔지만 혼자의 공간과 시간이 허락치 않으니 읽어보아도 머리에
들어오지를 않는다.
대강 한번 훑어보고는 접어 놓고 만다.
올해안에 출판을 한권 더 하려면 올여름에 작업에 몰두할 수밖엔 없을 것 같다.
무지 뜨거운 오산집에 내 방 에어콘의 성능이 걱정스러워진다.
수명이 다 되었다는 지난 해의 기사 이야기가 생각난다.
노인들의 자살이 많다는 뉴스에 언니는 한숨을 쉬며 다시 우울해지고 나는 한숨 쉬는 언니에게 한소리 한다.
그건 뉴스일뿐이야..
그렇게 말한다.
물론 남의 일같지 않아 씁쓸하지만 그런 뉴스로 인해서 한숨 쉴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닦치지 않은 일을 미리 가불할 필요는 없기때문이다.
세상 흐름에 너무 민감해지면 고달프기만 하다.
세상은 세상일 뿐이라고 제쳐 둘 필요도 있다.
세상과 나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세상 안에 내가 있지만 내가 그 흐름에 휩쓸려서는 안된다.
육십오세 이상 고령 인구의 자살..
TV에서는 그렇게 말한다.
고령이라니... 불쾌하기 그지 없다.
나쁜 놈이다.
갈 길이 먼 사람에게 고령이라는 말은 당치도 않다.
항의문을 방송국에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찬란하던 오월이 가고 유월에 접어들었다.
나는 이곳 일산에서 유월을 절반 이상 보내고 오산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생활습관이 전혀 다르지만 17일에 아버지 생신을 지내야 하기때문에 그리 계획을 잡았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을 실감하며 쉽진 않지만 내 습관을 당분간 잊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