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요즘들어 열풍을 이르키는 말이다. 누구나 부자를 꿈꾸지만 부에 이르는 문은 아무에게나 허락 되어 있지 않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문을 열고 들어가 부자가 되었다.
나도 부자가 되고 싶다. 어떻게 부자가 되는 것일까? 아직 부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찾다보면 언잰가는 찾아지지 않을까? 책을 뒤질까? 부자를 직접 만나볼까? 주식도사를 만나볼까?
세상에 눈을 돌리면 무수히 많은 말과글이 태산과 같이 넘처난다. 욕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말도 비례해 늘어난다.
꿈의 돈다발
그렇지만 진리는 단순하다고 하지 않던가? 주위를 둘러보면 쉽게 찾는다고 하였다. 전혀 엉뚱한 곳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극과극은 통한다는데 전혀 다른 분야라도 꼭대기에 오르면 서로 만나지 않을까?
종교학에서는 하등종교와 고등종교를 나누는 시금석을 \"자기부정\"으로 가른다고 한다. 하등종교인 무속,샤머니즘에서 해탈,자선,정의 등은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그저 현세에 복을 빌뿐 과거도 미래도 없다.
물론 일부에선 반발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불교,기독교,이슬람교,유교는 각자 종교는 다르지만 일종의 자기부정이 있다. 그것은 불교에서는 자신을 수련하여 해탈에 이르고 기독교에서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닳는 것으로 자기부정을 실현한다.
유교에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여 인을 이루는것으로 자기부정을 실현한다. 이슬람교에서는 알라가 오직 유일신이란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자기부정을 실현한다.
고행은 곧 자기부정
물론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 높다 낮다는 것은 허망한 것이다. 하지만 \"자기부정\"은 우리에게 큰의미를 가져다 준다.\"자기부정\" 자기 자신의 뜻과 생각이 모자라다 생각하는 마음 자신이 틀렸다는 마음이다.
주식시장에서 초보가 가장 처음 배워야 할 일이며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손절매\"이다. 손절매 하나만 잘해도 거부는 아니지만 부자로 살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손절매 그것은 살을 자르는 고통일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주식을 주당 100원에 샀다. 그런데 이 주식의 가치가 50원이다. 그렇다면 이 주식은 50원 언저리가 될때까지 계속 하락할 것이다. 그런데 이 주식의 가치를 알고 70원이 되었을때 손해를 보고 파는 행위이다.]
자기부정과 손절매 그것은 종교계와 주식계에 어느정도 수준에 올랐을때 잘 할 수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이 둘을 관통하는 정신은 같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고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마음을 뛰어넘어 행동하는 것이다.
사람은 그 누구보다 자신에게 아부를 잘한다. 남에게 하는 아부는 발견하기 쉽지만 자신에게 하는 아부는 좀처럼 발견하기가 너무 어렵다.
아부는 반드시 자만을 부른다 자만은 눈을 어둡게해 재앙을 불러온다.
너무 어렵다. 보기에는 깃털과 같은데 들기에는 천톤의 무쇠와 같다. 부자로 가는 첫걸음 자기자신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볼수 있나? 그리고 자기 실수를 얼마나 잘 인정하고 바꿀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