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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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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딸이니까 .


BY 그대향기 2011-03-09

 

 

불과 20여분?

엄마 집에서 머문 시간은 짧고도 짧았다.

얼마 전에 친정식구들 다 모여 식사한 날도 가까운 어젠데

바쁜 시간을 쪼개서 다시 엄마집엘 간 이유는

엄마 장롱을 정리해 드리기 위해서였다.

명절이나 휴가 때 친정에 가서 자는 날은 언제나 엄마방에서 우리 가족이 잠을 잤다.

엄마가 풀을 먹인 이불홑청은  사그락사그락 기분 좋은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이불이 들 떠서 아이들이 이상하다고 했지만

그게 외할머니 냄새며 외할머니 손길이란 걸 곧 알아차렸다.

 

고향을 떠 올리는 냄새

엄마가 딸을 기다리는 그리움이었다.

여름 이불에는 더 빴빳하게 풀을 했고

겨울이불에서도 연한 풀먹임이 느껴졌다.

엄만 불편한 다리를 이끄시고 흰밥을 푹..고아서 베주머니에다 조물조물 내리시고

삶아 놓은 이불홑청을    넣고 바락바락 주물러서 풀을 쎄게 먹이셨다.

너무 연하게 풀을 먹이면   이불이 금방 풀(?) 죽는다시며...

이불은 까는 이불이나 덮는 이불 다 풀을 먹이셨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턴가   엄마의 이불은 이불이 아니라

온통 조각천 집합체가 되고 말았다. 

퀼트도 아니고 엄마 이불은 얼룩덜룩 만국기처럼 요란했다.

올케는 그런 시어머니가 이상도 했지만 누가 찾아오면 창피하다고 앙앙거렸다.

엄마의 알뜰함이나 엄마의 정갈함은  둘째치고 우선에 내가 봐도 이불이 이불이 아니다.

색상도 가지가지 덧댄 천 종류도 천차만별 진짜 오만가지 만물상이다.

고운 조각보면 얼마나 이쁠까마는 엄만 그저 아까워서 ...따뜻해서...가 전부셨다.

덮고 자는데는 아무런 하자가 없는 이불이었지만 외관상 좀 그랬다.

 

올케가 버리려고도 해 봤지만 엄마가 불호령을 내리셨단다.

\"시에미 죽기도 전에 이 무슨 행패냐~\"고.

새 이불을 사다 드려도 아들 내외랑 손자들 주라고 도로 반납하셨다던 엄마.

그런 엄마의 궁상스런 모습이나 올케의 불만을 해소 시킬 사람은 단 한사람.

엄마의 물건을 과감하게 처리해 줄 해결사로  딸인   내가 떴다.

우리 큰딸 혼수하면서 마련해 둔 사위가 처가에 올 때 내어 줄 이불이며

이 곳에 있으면서 선물받은 크고 작은 무릎담요며 큰 숄, 우리 아이들 기숙사 보낼 때

준비했던 요이부자리 등을 한 차 가득 싣고 엄마 장롱을 급습했다.

향나무 대팻밥으로 된 베개도 같이.

 

엄마 생신 때 못 간다고는 했었지만 그래도 섭섭해서 연분홍 봄 쉐타 니트도 샀다.

간절기 때 입기 좋은 누비 조끼랑 잠옷 한벌까지 사 들고 엄마를 어리둥절케 한 다음

가져 간 이불 보퉁이를 풀어 놓고

\"엄마 이 이불 곱지요?

 이젠 고운 것만 덮고 고운 옷만 입으세요.

고운 옷 입고 고운 이불만 덮어도 다 안 닳아요.

 미운 이불은 내가 가져 갈께.

 엄마가 못 버리고 올케가 못 건드리니 내가 할 밖에...ㅎㅎㅎ

 옷 다 떨어지기 전에 또 고운 것 사 드릴테고

 이불 유행 지나기 전에 또 사 드릴테니 그렇게 해 엄마 으응???\"

\"그래라.

 하도 아까워서 그렇지 뭐.

 좋은 옷 다 입고 좋은 이불만 덮으면 니들 못 키웠지.

 니가 갖다줬으니 오래 된  이불은 니가 가져가서 처리해라 마...

 아직은 따뜻한데....\"

 

그래도 미련은 남고 더 덮을수 있는데 싶어서 자꾸만 낡은 이불자락을 만지작 거리셨다.

오래 머무르면 도로 장롱에 넣을 것 같아서 얼른 일어났다.

이불 보퉁이를 펼쳐두고 기습적으로 한 일이라 엄만 좋으시면서도 어리둥절하셨다.

새 이불이 바리바리 쏟아져 나오니 좋기도하고

색깔 고운 봄 옷을 입혀 드리니 싱글벙글이시다가

내가 엄마 이불을 마구마구 보따리에 싸대니 시선이 혼란스러우셨다.

올케의 불편함을 이래라도 거두어 주고 싶었다.

엄마의 지나친 알뜰함이 자식들한테는 민망함이란걸 엄만 모르셨다.

올케가 버리기라도 하는 날엔 작은 전쟁이 일어난다고 했다.

시어머니 허락도 없이 함부로 버리는 못된 며느리라고.ㅎㅎㅎ

 

어떤 좋은 사람이 우리한테  썩  괜찮은 쇼파를 주셨다.

그래서 전에 쓰던 쇼파도 엄마집에 넣어드렸고 덕분에 엄마 방이 완전 봄물갈이를 했다.

새 이불에 새 옷에 중고지만 새로운 쇼파까지.

엄만 너무나 갑작스러운 변화에 묘하게 기분이 좋은 느낌이셨다.

사위와 딸을 한번 더 봐서 좋았고 장롱 안이며 방안이 확~달라져서 좋으셨다.

그러면서도 시선이 자꾸만 이불 보따리에서 멈추셨다.

실지로 바쁜 일도 있었지만 더 바쁜 척  엄마집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서두르는 기미가 보이자 엄만  얼른 속 바지에서 봉투 하나를 주셨다.

\"이거....00 애 낳으면 미역 사 줘라.

 미역은 접지 말고 긴 모양으로 그냥 사 주고.

 내가 아들을  내리 일곱을 낳은 사람이니라.

 꼭 미역 사 줘야 한다.\"

\"하이고 엄마~~

 아직 애 생기지도 않은 외손녀를요?ㅎㅎㅎ

 나중에 애 낳으면 주세요.\"

\"아니다.

 내가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누가 안다니?\'

\"또..또..그 말씀~~!!

 그냥  오래오래 건강하게 잘 있다가 나중에 주세요\"

그래도 엄마는 막무가내시다.

 

하는 수 없이 미역값으로 금일봉을 하사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빠는 빙그레~웃기만 하고.

그 동안 많이 불편했던 올케나 오빠는 앓던 이를 쏘옥 뺀 느낌이리라.

엄마 방의 물건을 아무도 못 빼냈는데 딸이 한다니 엄마도 져 주셨다.

이제부터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어지간한 고집을 부리셔야지...

비록 낡고 허름한 이불이며 세간살이들이지만 엄마의 손 때가 묻었고

세월이 녹아 든 물건들이라 엄마가  버리지 못했고 자식처럼 껴 안으시고 사신 것들이었다.

나중에 엄마 돌아가시고 친척들이라도 오셔서 봤을 때

니들이 엄마를 이렇게 밖에 못 해 드리고 살았더냐?

그 원망도 솔직히 부담스러웠고 엄마의 남은 날들이 예측불허기에

지금부터라도 약간의 강제성을 띤 물갈이를 해 드려야겠다.

완전 물갈이는 혼란스러우실테니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그러나 올케가 아닌 못난 딸이지만 엄마가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내가.

 

오늘 아침 올케한테 전화해서 엄마 장롱 좀 털었다고 하니

호호홍...웃기만 했다.

좋은가보다.

내가   엄마 며느리였어도 그랬을 것 같다.

올케한테 옷 몇가지 챙겨줬더니 잘 입겠단다.

나 나중에 부자~되면 더 좋은 옷 많이 사 줄께 미안하다 올케야.

그래도 아니라며 소리내어 웃는 올케.

안팎으로 힘들지만 씩씩하게 버티고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엄마의 짐만이라도 내가 좀 덜어줘야지 싶다.

엄마는 그러셨다.

\"나 너무 오래 살아서 니 오빠나 올케한테 천덕꾸러기될까   무섭구나\"

\"그런 말씀 마시고 건강하기만 하시고 사는 날 동안 오빠나 올케한테 고맙다고하세요.

 애쓴다고.....고생한다고 칭찬아끼지 마시고요...\"

\"그라머 좀 나을랑가......\"

엄만 오래사는 것도 겁이난단다.

건강에  점점 자신이 없어지심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