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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을 만나는 건 미친 짓이다 (3)


BY *콜라* 2011-03-08

ENTER!

 

클릭 한번으로 수 십년 세월을 뛰어넘은 그가 모니터 속에서 서 있다.

한 번 보면 별 일도 아닌 것을, 상상 속의 첫사랑은 환상만 키운다.

직원들과 사회봉사를 마친 뒤 매체에 띄운 사진 인 듯

어색한 웃음으로 서 있는 그.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기업체 임원이 동원된 이런류의 홍보 사진은

내가 극도로 역겨워 하는 장면이다.

건강하게 살아있음이 반갑고 잘 살고 있어 대견(?)하다.

 

겨울 저녁 7는 용기내기에 좋을 만한

어둠과 통행인도 적어좋았다.

 

“오랜만이야…”

“응… 오랜만이야…..

 허스키 보이스에 중후함이 더해진 웃음이 멋스러워진 그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손을 잡는 대신 포옹 하는 것으로 20년 세월을 건넜다.

어쩌면 청산해버린 어색함은 여자인 나만의 부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싱거웠다.

어떤 표정으로 맞이할까 고민했던 만큼 기대도 컸던 첫만남을

치르고 나자 비로소 편해졌다.

그의 어깨에 묻었을 지 모를 BB크림 흔적을 털어주며

은연중 그의 아내를 의식하고 있는 내 행동이 씁쓸했다.

 

꽤 오래 만나긴 했어도 그가 운전하는 차를 탄 건 처음이다.

 

돈을 벌면 요리사를 구해 매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언니에게

나는 운전기사를 구하고 싶다고 했을 만큼

자가운전보다 운전석 옆에 앉아 쫑알 쫑알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나.

게다가 한국에 와서 처음 갖는 자유로움과 그를 만난 반가움에 무조건 즐거웠다.

 그때까지는......

 

어디로 갈까… 묻는 그에게

‘오늘 저녁 우리의 스케줄이 뭐야?’ 물었다.

약간 당황한 그가 ‘저녁 먹는 것’이라는 말에

“에이~ 수 십년 만에 만나서 밥 먹는 거 말고 없냐”고

신나고 재미있는 시간을 기대 하고 있던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순간 나는 남편에게 너무나 익숙해 져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남편이라면 먹는 것 보다 분위기를 더 중시하는 내 취향을 알고

말하지 않아도 벌써 예약해 두었을텐데....... 그리고

자기 선택에 내가 만족하면 그것으로 행복해 하는 사람인데....

 

남편과 있을 때 첫사랑 남자를 떠올리고

첫사랑 남자를 만나서 남편을 떠올리는 

나의 이중성...

그 뻔뻔함에 어이가 없다.

 

차 안에서 나는 또 다시 ‘오늘 저녁 스케줄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그는 조금 단호한 목소리로 ‘집에 가야지’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

저녁 스케줄에 대한 질문을 ‘외박’으로 오해한 걸까.

아니면 나의 역오해일까.

 대답의 의미를 빨리 파악하지 못한 나는

그럼 ... 댱연히 집에 가야지...

더듬거리듯 한 마디 하고선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첫사랑 남자를 만나는 여자의 설레임을

남자들은 이렇게 해석하는구나.... 하는 실망감이 스치며

졸지에 바람난 여자로 치부당한 듯한 저속함에 기분이 급강하했다. .

 

남편 몰래 첫사랑 남자를 만난 여자에게

남자들이 갖는 착각내지는 발칙한 상상은

우리 여자들의 생각보다 훨씬 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하룻밤 ‘원 나잇’을 하더라도 이런 기분은 아닐 것이라는

약간의 모멸감마저 느껴졌다.

 

내 질문 의도는

그럼 식사를 한 다음 차를 마실 것인가 술을 한 잔 할 것 인가

식사와 대화가 동시에 가능한 곳? 아니면 장소를 옮길 것인가 하는

기본적인 행보를 묻는 것이 었고쉽지 않은 만남이었던 만큼 시간절약을 위해

사전 예약을 해두지 않았나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보통 식사 약속에서 분위기로 갈 것이냐, 맛으로 갈 것이냐

선택과 비슷한 것이었다.

 

혹여 내게 의향을 묻는다면 식사는 적당히 대체하고

카페에서 가벼운 와인 한 잔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예약하지 않으면 구멍가게 음료수 밖에 살 수 없는

외국문화와 사소한 일까지 계획해서 움직이는 습관의 차이일 수도 있었다.

20년 만의 만남이란 걸 깜빡 잊었다.

 

대화는 내내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그에게 모든 걸 의지한 채 살고 있던 나의 변화는

그를 떠나는 반란으로 시작되었으니

진정한 성인으로 각자 추구한 삶의 목적과 목표

관심사와 가치관, 성숙의 과정이 달랐던 만큼 공감할 주제가 없는 대화는

서로 다른 초점을 관통하며 공허하게 흔들렸다.

 

산골 촌닭 작은 계집아이가 힘겹게 쌓아 올린 지난 시간을 그가 알지 못하듯

평범한 신입사원으로 시작해서 대기업 임원이 되기까지

그가 겪은 어려움, 노력, 내가 알지 못하는 무한한 능력과 과정을

또 내가 알 수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나는 그가 딴 세상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 같았고

그도 대화도중 간간이 들려 주는 나의 삶이 뜬구름처럼 여겨졌을 듯 하다.

특히 올해 대학에 들어간 아들과 가족 이야기는

도무지 그에게 연결되질 않았다.

 

첫사랑을 만난 후 나의 소회를 묻는다면

추억중에서도 첫사랑의 추억만큼 부질 없는 게 또 있을까 싶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