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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남자(연재12) - 잘난 남자, 못난 남자


BY 사랑의 빛 2011-02-23

잘난 남자, 못난 남자

 

자연이 중용을 준 것은 만물을 스스로 안정되게 유지하려 함입니다. 이 세상에 남자들만 있다면 남자들의 양성 에너지가 서로 충돌하여 세상은 풍비박산 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여자들만 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아내의 바가지가 없다면 그 집안은 거덜 나기 십상입니다.

또 남편도 밖에 나가서 자기 기분대로 마구 행동하면 아내의 여성 에너지가 그리워지게 되는 법입니다. 처음에는 아내의 음성 에너지가 은근하고 감미롭다가 자기 양 에너지가 막 움직이려고 하면 그것이 그렇게 구속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구속을 뿌리치고 나가다 보면 결국 박살나게 됩니다. 그러면 또 그리운 것이 음 에너지입니다.

중용을 이룬 사람은 남성 에너지와 여성 에너지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기 때문에 결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중용을 얻지 못한 사람은 남자는 여자가, 여자는 남자가 필요합니다. 남자가 한 집안을 일구어 나가기 위해서는 여자가 있어야 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바탕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에너지가 균등하게 필요합니다. 만물은 그렇게 짜여 있습니다. 남녀가 결혼하는 것은 서로 좋아하는 이유 이전에 자연이 양 에너지와 음 에너지가 서로 결합되어 있어야 안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이미 바탕을 마련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기가 세고 여자가 기가 약하면, 남자는 활동하고 여자는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 둘 다 기가 강하면 서로는 매우 짜릿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흔히 “우리는 너무나 사랑해서 헤어졌다.”라는 말을 하면서 서로 헤어지게 됩니다. 만일 둘 다 기가 약하면 그 둘은 서로 만나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기가 너무 세면 남자가 결국은 기를 펴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는 통상 여자가 사회적으로 저명한 활동을 하고, 남자는 허드렛일을 하는 정도에 불과하게 됩니다.

남자가 강한 여성 기운을 누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덕’입니다. 덕이란, 자신에게 돌아올 손해를 생각하지 않고 남에게 진실한 것을 끊임없이 베풀 수 있는 마음입니다. 인위적으로 베푸는 덕은 덕이 아닙니다.

흔히 조강지처를 버리는 사람은 덕이 없는 사람입니다. 출세를 위해 어려울 때 도와주던 애인을 멀리하고 재벌의 딸과 결혼하는 사람은 집안이 평안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앞만 보고 가면 바탕이 망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눈앞의 성공은 못하더라도 바탕은 건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바탕이 그 사람을 잘 받쳐주는 것, 그것이 더 훌륭한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안에서 평안히 숨 쉬며 살 수 있습니다.

앞에서 누르는 한이 있더라도 꾸준히 덕을 베풀면, 덕을 통해서 결국은 자기의 뜻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뜻은 인위적으로 펼치려 해서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뜻에 주변이 모여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여드는 모든 것에 대해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덕입니다.

한 집이 잘되는 집인가 못되는 집인가는 그 집 안주인을 보고서 그 집 남편을 읽으면 알 수가 있습니다. 남편은 괜찮은데 별 볼 일 없는 사람일 경우는 여자에게 문제가 있는 집입니다. 왜냐 하면 여자의 힘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밖에서는 큰소리치지만 집에 들어가면 별 볼 일 없는 게 또 남자입니다. 여자가 한번 심지를 틀면 괜히 큰소리를 뻥뻥 치면서도 끝내 가서는 “여보, 내가 잘못했소.” 하고 들어가는 게 남자입니다.

남자는 빨리 저기압 세계를 읽을 줄 알아야 되고, 여자는 빨리 고기압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남자가 집안을 잘 꾸려나가려면 여자를 잘 움직여 나갈 줄 알아야 합니다. 남자가 여자를 움직이지 못하여 결국 여자의 치마 속에서 녹아나게 되면 그 남성 에너지는 아까운 에너지가 되고 맙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여자들도 겉으로는 여자이지만 안에는 양이 두 개 있습니다. 여자가 자기 심사가 뒤틀리면 막무가내로 나올 수 있는 그 힘은 안에 양의 효가 두 개 겹쳐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악을 쓰면서 싸우면 남자는 집니다. 왜 지냐 하면 여자는 막무가내로 튀어나오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앞뒤를 가리지 않기 때문에 남자는 감당을 해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성理性을 넘어선 능력, 이것이 위대한 여자의 능력입니다.

남자는 상당히 이성적이고 아량이 넓은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남자는 치사하고 유치합니다. 또 아량도 넓지 못합니다. 남자의 아량은 다 속셈일 뿐입니다. 여자는 손수건이라도 자기 정성껏 수를 놓아서 남자한테 선물합니다. 남자들은 환심을 사려고 하기 때문에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가짜였느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자는 가짜를 안 합니다. 남자들이, 싼 것이지만 비싸게 보이게끔 허풍을 떱니다. 겉으로는 양 에너지이지만, 속에 음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어떡하든지 겉의 양 에너지로 환심을 사서 속의 음의 세계에 빠뜨려 버리려고 공모 수작을 하는 게 남자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속셈이 차면 바깥으로 결코 양보하는 법이 없고, 속셈을 지키기 위해서 온갖 심혈을 기울이다가 끝내 가서는 스스로 양성 에너지가 고갈되게 됩니다. 그래서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아내가 원하는 것을 따라 움직이는 남자는 남자다운 행실을 하지 못합니다. 남자는 무엇을 하든지 여자를 따라오게 해야 분명한 남자입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이미 성공한 사람과 다름없습니다. 남자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면 여자 얘기에 빠지게 됩니다. 모든 주도권이 여자한테 넘어가게 됩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나는 끔찍이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내가 원하는 쪽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내를 사랑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남자가 아니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여자는 아무리 남편이 어떻든 간에 한 남자를 섬길 줄 모르고 자기 행복을 찾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 행복이라는 자기 보금자리를 스스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또 내가 한 번 이걸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한 일을, 그것이 완전한 결과를 얻기 전에 “아! 이거 힘들어서 못해먹겠군.” 하고 자리를 옮기는 남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