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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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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사는 길


BY 그림이 2011-02-21

딸 둘을 낳은 둘째 아들이 올해 박사 코스에 등록을 했다.

만만찮은 등록금 이기에 요번 등록금은 내가 해주마 라고 했더니

이미 등록을 했단다.  장하다 내 아들아 이미 맘먹고 있었기에

그 댓가로 어떻한 형태로든지 너가 힘들지 않게 해 줄께 하고는

눈물이 확났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몸고생 맘고생 공부하는데

힘이 되어 주지를 못하고 방황하도록  한 미안함에 박사 입문이란

나 한테는 명문대 교수 못잖게 감사히 느껴진다.

항상 신랑한테 신경을 쓰다보면 아이들은 뒷전이였다.

결과는 뻔한 일 원하는 대학에 못갔다. 재수를 권했지만 부모 원망

안할테니 재수가 싫어니 그냥 다니겠다고 했다.

서둘러 군에나 가라고 했다. 공부에 관심이 없던 애는 군에 입대하겠다고 했다.

일찍 군에 갔다오면 학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끼지 싶은 나의 의도였다.

일곱살에 들어가 이학년 일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를 시켰더니 특공대에 배속을

 받았다. 유사시에 간첩이라는 너무 힘든 특공대 훈련이었다.

\'그래 한세상을 살려면 그 만한 고생은 이겨야 해\' 너무도 힘든일을 못이겨내는

 남편에 대한 오기였다. 직장생활을 못하겠다고 걸핏하면 사표를 내는

 남편에게 질렸다고나 할까? 그래도 아이는 군생활을 잘 이겨냈다.

중대장에게 심성이 좋고 성실하다는 편지를 받고 \"그래 사는 길이 있을거야

실력이 없어면 일의 성실함이라도 있어야지\" 제대 후 또 다시 다른대학에

도전하라니 끝까지 않하겠다고 해 별 수없이 졸업을 시켰다.

졸업 후 컴퓨터를 빡시게 시켰다. 머리가 나쁜게 아니라 항상 짜증을

 내는 부모밑에서 아이들이 공부 하고 싶은 맘이 없었다.

삼촌이 서울로 불러갔다. 98년 서울에서 중소기업 첫 월급이 80만원,

그곳에서 정직하고 성실하다고 칭찬을 들어면서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 골고루 일을 배웠다. 혼자 자취를 시켰다.

투룸을 얻어 나도 자주갔다. 100만원 미만을 받는 아이에게

나는 50만원짜리 적금을 넣어줬다. 능력이 없어면 알뜰하라고 원래가 참 알뜰했다.

5천원짜리 식사비를 아낄려고 도시락은 싸들고 갔다.

한번씩 가면 대구에서 사귀던 딸아이가 다녀간 흔적이 보여 할 수 없이 결혼을 시켰다.

2002년 12월 며느리도 결혼을 해서 시동생이 구해준 직장에 다녔다..

큰 아들은 경북대학에서 박사과정에 있었다. 먼저 결혼한 동생을 조금이라도 나은

 직장으로 옮기기 위해 백방으로 쫓아다니는 큰  아들에게 부모로서 미안했다.

경제과 전공인 큰 아들은 경제연구소쪽 직장을 찾았지만 학벌때문에 가는곳마다

 퇴짜를 맞았다. 형을 따라간 동생이 어느 연구소에 가보고 \"형 나 이런 사무실에서

근무해 봤어면 원이 없겠다는 말을 듣고 예상문제를 추려내어 공부를 가르쳤다.

시험에 합격했지만 번번이 툇짜맞는 학벌과 성적표는 걸림돌이였다.

서울서 직장을 다녀본 작은 아이는 실무는 어느정도 되어있기에 내동생을 6개월만

 데리고 일을해보세요. 당신들이 맘에 든다고 할정도로 일을 잘 할겁니다.

만약에 6개월 후 그때도 채용한것을 후회한다면 내 손으로 내 동생을 끌어내겠습니다.

16개월 먼저 난 형은 동생을 위해 이토록 애절하게 채용해 줄것을 간곡하게 청했다.

2003년 9월에 간 조건부 6개월짜리 직장이 지금의 직장이다. 

 성실한 작은 아이는 형의 고마움을 알고 열심히 일을해 연구소 소장, 과장, 팀장에게

인정을 받아 지금은 팀장으로 있어면서 회계 업무쪽엔 인정을 받아 같은 계열연구소

직원들을 교육도 시키곤합니다. 연구소 직원 거의 대부분이 석박사라 대학내에 있는 연구소

이기에 큰 아들의 권유로 힘들지만 짬을 내어 공부하라고 길을 열어줘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요번 박사과정 시험에서 3등을해 얼마간 장학금도 받는다며 어미가 앓던 속알이를

풀어주어 이렇게 올려봅니다. 3월 부터 일주일에 4시간 씩 강의도 맡게 되어 직장생활에

대학강사에 박사 공부에 바쁘다는 아들에게 공부는 때가있다  더 늦기전에 부모가 도와 줄

능력이 있을때 밀고 나가라고 했고 또 지도교수님이 너무 아들을 잘 봐줘서 적극 권유해 여기

까지 왔습니다. 이글을 쓰는 순간 운과 때가 있어야 공부도 하는가보다라고 생각이 됩니다.

늘 밥벌이라도 하겠나 싶던 작은 아들이 정부 산하 기관에서 일을하게되고  대구에서도

잘 나가는 대학강의까지 맡으니 저 맘은 일류대학 교수가 된 만큼 맘이 흐뭇합니다.

지금 이순간에 원하는 대학에 못가도 운이 있어면 다 길이 있다는걸 적어봤습니다. 

어쩜 자식자랑같아서 건방지고 미안한 생각도 들지만  세상에는 당장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절망하지 말으라고 경험담을 이야기로 적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