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눈의 티는 보면서 내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속담은
나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리라.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보면 될 것같다.
손아랫동서가 \"요즘 것들은 어쩜...\" 분통을 터뜨리면서 털어놓는
친정 올케들의 뒷담화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맏며느리가 돼 가지고 어쩌고 저쩌고...그래서 내가 눈물이 쏙 빠지게
야단치고 있는데 남동생이 나와서는 누나가 뭔데 출가외인이 왜 참견하냐며
자기 색시 손을 확~ 나꿔채가지고 자기집으로 가버리더란다.
너무 기가 막혔다고 했다.
자기 친정어머니 생신날에 두 올케가 늦잠을 자서 어머니가 밥을 앉히셨다고
어쩜 그럴 수가 있냐고 열을 내기도 했다.
그런 때 딸이 먼저 상을 차려드리면 지구가 멸망하나?
이런 때 숨쉬라고 콧구명이 두 갠가 보다.
속으론 \'에혀..너나 잘 하세요..\' 그 말이 절로 나온다.
동서는 나와 나이가 엇비슷하지만 시집을 한참 늦게 왔다.
나야 십 년 동안 터 닦느라 힘들었지만 그녀는 시집살이가 뭔지도 모르고
혜택을 받기만한 사람이다.
그녀는 지금도 그런 말을 한다.
어머니 생각만 하면 눈물나고 잘 해주신 것만 기억난다고.
아무리 말하는데 세금 안 물린다지만 나는 별로 그런 생각 안들고
그런 말도 안 나온다.
살아 생전에 내가 할 도리는 다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땐 꾀스럽게 좀 덜 할걸,내가 미련했다,내가 내 무덤을 팠다.
그런 생각마저 든다.
동서는 자기입으로도 누누이 말했었다.
맏며느리 되기 싫어서 더 좋은 조건의 남자도 마다했다고.
\'시\'자 붙은 사람이 뭐가 편하냐고 친정이 편하고 좋지 않냐고?
시어머니가 며느리들이랑 수다라도 떨고 싶어서 다가오면
\"네,네,네...\" 맞장구 치는 척하며 다른 방으로 얼른 내빼기 일쑤였다.
시어머니가 산후조리를 해주시겠다고 하니까
나 듣는데서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어머,내가 미쳤나?시어머니 산후조리를 받게?\'라고도 했다.
매사가 그런 식으로 시집식구들과는 가까이 하고 싶지않은가 보았다.
명절에도 종종 당직이었고 시부모님 생신날도 직장일이 바빠서 못 오는 적이 많았다.
시아버지가 일찍 병석에 누우셔서 시집에 일주일이 멀다하고 오르내리는 우리였지만
시동생 가족은 1년이 가도 보기가 힘들었다.
시아버지가 위독하셔서 중환자실과 일반병실을 번갈아 오르내리면서
자그마치 6개월간 사경을 헤맬 때도 시동생 가족은 단 한 번도 문병을 오지 않았다.
-물론 이 정도 되면 시동생에게도 문제가 있는거 나도 안다-
그 때 난 이 사람들이 의절하고 살자고 작정한 줄 알았다.
나중에 \"그 때 무슨 일 있었어? 왜 그랬어?\" 물으니
\"어머~언제요?...몰랐어요..\"
몰랐단다. 사돈에 팔촌까지도 다 문병을 왔었는데 몰랐단다.
동서는 쿨하다.
앞에서는 상냥하고 서글서글하다.
그러나 뒤 돌아서면 모든 골치 아픈 것을 싹 잊어버린다.
참 편한 성격이다.
A형인 나는 두고 두고 곱씹는 편이라 힘든데..
나도 이제 동서에게 많이 배운 셈이긴 하다.
동서는 시어머니가 뭐가 갖고 싶다고 흘린 말도 잊어버렸고
못 들은 척 할 뿐만 아니라
시집이라는 곳이 있긴 했나? 할 정도로 1년이 가도 먼저 전화하는 법도 없었다.
시어머니가 먼저 전화해서 \"너는 부모가 죽어야 올래?손가락이 부러졌냐?
왜 전화도 못 하냐?\" 노발대발 해도
\"어머니 죄송해요.ㅎㅎㅎ\"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명절에 내가 동서딸들 장난감이나 양말 따위의 별로 비싸진 않아도
미리 신경써야만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을 선물해도 몇 년이 흘러도 답례라는 게
도통 없길래 나도 이젠 지쳐 그만둬 버렸다. 그랬더니 편하다.
나는 동서가 공휴일에는 꼬박꼬박 쉬는 줄을
그녀가 시집 온 지 몇 년 지난 후에야 알았다.
언젠가 그녀가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탄로나서.
명절에 온다해도 늘 빈손이었고 우리가 사간 과일박스를 그 집 네식구가
바닥을 내며 \"어머 맛있다. 달다\" 이러기만 했다.
다음엔 미안해서라도 과일 한 상자쯤 들고 오려나?기대를 해보지만
매번 그 기대는 무너졌다.
나중엔 안 되겠어서 내가 입이 떨어지지 않는걸 억지로 참고 말을 했다.
그냥 알아서 하려니 하면 절대 안할 사람인걸 알기에.
\"명절엔 이웃집엘 가도 빈손으로 다니는거 아니야.과일이라도 사와\"
그랬더니 오다가 가게문 열린 데서 달랑 과일 한봉지를 사오곤 했다.
너무 바빠서 그랬단다.
그래서 또 얼마 있다가 \"다같이 모이면 어차피 먹어야 하니까 박스로 사와\"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명절엔 과일 딱 한 박스 들고 온다.ㅎ
그래도 시킨 것은 말을 들어서 다행이다.
명절에도 기본적인 음식은 맏이인 내가 다 준비를 하고 기다린다.
이부자리 빨래도 대청소도 모두 내가 해야할 몫이다.
이런 나를 배려하기 위함일까? 명절에도 당일날 아침에 온다.
하기사 뭐 나도 손님치레 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당일날 오는 것도 나쁘진 않다.
어차피 장도 내가 다 봐야하고 음식도 다 내가 해야하니까.
그러나 자기가 그렇게 편하게 며느리노릇 하고 사는 걸 알기는 아는 걸까?
그렇다면 친정에 가서 간 큰 시누이 노릇을 할 수 있을까?
*
돈 잘 버는 며느리 들어왔다고 기대에 차서는 나와의 십 년 세월을 뒤로 하고
둘째며느리쪽으로 얼른 줄을 바꿔섰던 시어머니가 오죽해 다시 내쪽으로
되돌아섰을까?
남들은 몸으로 때우기 싫으면 돈봉투라도 열심히 내민다던데
그러면 귀엽기라도 하지, 국물도 없었다.
시집에 와선 맨날 돈 없어 미치겠다고, 죽겠다고 하면서도
뒤로는 서울시내에 아파트도 사고 차도 큰 것으로 척척 바꿨다.
그렇게 꾀스럽게 살아야하는건가 보다.
나는 명절이나 생신날이면 여전히 시어머니와 둘이서 밤늦도록 음식장만을
하곤 했다.
그 시절엔 아이들 돌,백일 까지도 다 집에서 차리던 시절이라
둘이서 하려면 밤늦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사는 얘기도 나누고,미운정 고운정도 들었다.
그녀는 그런 고생과 행복을 지금까지 잘 모를 것이다.
하기사 지금도 자기 식구들을 주로 사먹이고 배달시켜 먹이며 산다.
그거야 직딩맘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나도 여태 직딩이긴 하지만 9 to 5는 아니니까 그래도 좀 낫다고 본다-
이제는 시부모 돌아가시고 우리집이 젤 큰 집이 되어서 종종 모이곤 하는데
시동생은 내가 그냥 허접하게 끓인 된장국이나 찌개에도 너무나 감탄을 한다.
형님은 맨날 이런 거 먹을 수 있어서 좋겠다고....
동태찌개가 먹고 싶은 지 몇 달이 됐는데도 사먹을 데가 없어서
못 먹었다고 하소연도 한다.
그럼 동서를 집에 들어앉혀 살림만 하게 하든가, 아니면 그냥 그렇게 살라고,
그래도 난 같은 여자, 동서편을 들어준다.
그러면 동서는 \'거봐~\'하며 의기양양.
이제는 딸들이 자라서 중학교도 가고 그러니까 동서도 은근히 걱정이 되기는
한가보다. 나중에 장모님이 돼가지고 음식도 한 가지 제대로 못 한다고 할까봐
걱정이라며 내가 하는 것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정도까지 발전을 했다.
\"형님은 그냥 대충 설렁설렁하는 것같은데도 어쩜 뚝딱 요리가 하나 나오고
또 주물주물 하면 또 한 가지가 뚝딱 나오고...어쩜 그렇게 잘 해요?\" 이러기도 한다.ㅋ
나는 그렇게 잘 하는 편은 아닌데...그저 보통일 뿐.
*
동서가 잔뜩 흥분을 해서 친정올케들 흉을 늘어놓는 것을 다 듣고나서
내가 입을 열었다.
\"우리도 요즘 사람이지만 손아래 올케들은 다들 그래.
그럴 때 손윗 시누이가 먼저 나서서 하고 그러면 되지.
왜 꼭 어린 올케가 해야해?
나도 명절에 집에서도 계속 일하다가 친정가지만 친정가면 우린
딸들이 주로 주방일 다 해. 우리 올케는 애기들 돌보고.
그리고 우린 부모님 생신도 집에서 차린 적이 없어.
부모님들이 하나 뿐인 며느리 힘들까봐 외식을 하자고 주장하셔서
이날껏 밖에서 만나 맛있게 먹고 집에선 후식으로 과일이나 먹으며
이런 저런 사는 얘기 하다가 헤어지니까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
힘들게 생신상을 차려야 맛인가 뭐? 어디서라도 맛있는 음식 먹고
즐거운 이야기 하면 되지.그러면 다음에 만날 때도 짐스럽지 않고
어서 가고 싶고 만나고 싶고 그렇지\"
\"그래도 집에서 장만을 해야지. 우리 부모님은 그런 것 용납 못해요
그리고 어떻게 다른 날도 아닌 생신날 늦잠을 자서 시어머니가
밥을 앉히게 해요?말도 안되지\"
\"밥만 앉히셨다며?반찬은 올케들이 일어나서 다 하고?
노인들이 아침잠이 없으시니까 먼저 하셨겠지?
며느리 도리 운운하고 격식 차리는 것보다 진짜 마음에서 우러나서
잘 하려는게 중요한거야. 평소엔 올케들이 잘 한다며?\"
\"그런거야 며느리들이 기본적으로 다 하는거 아니에요?\"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다 하는거? 그럼 그러는 본인은?
또 생각한다.
우리 올케 같은 사람이었다면 어쩔 뻔 했을까?
우리 올케는 결혼한 지 10년쯤 되었는데 아직도 주방일이 서툴어서
일을 척척 해내진 못한다.
솔직히 그 손에 밥 얻어먹기는 어렵다.
뭔가 하려고 애는 쓰는데 여엉 진도가 안 나가고ㅋ 분주하기만 하다.
\"형님..저는 왜 이렇게 살림을 못 할까요?\"
\"노력하다 보면 잘 하게 돼. 첨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딨어?
나도 첨엔 진짜 못 했어.\"
\"어머 그래요? 그럼 희망이 있을까요?\"
난 그 노력이 가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올케가 예쁘다.
까칠한 4대독자 외아들 비위 맞추며 잘 살아줘서 고맙고
시부모님을 남같이 여기지 않고 딸처럼 진심으로 생각해드려서 고맙다.
그거면 됐지.
만일 살림은 척척 잘 해도 시집 식구를 멀리하고 남처럼 생각한다면
더 서운할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