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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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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렁 더울렁 함께 사는 세상...


BY *콜라* 2011-01-25

동서, 엄마 때문에 못 오지?

아뇨. 갈 거에요.

  

죽고 사는 일 외 인간사가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일단 저질러 놓고 수습하는 게 내 방식이다. 

 

캐나다에 있을 땐 멀어서 못 왔고, 1시간 거리에 있는 지금은

엄마를 맡길 사람이 없어 못 가게 된다고 생각하니

엄니 생신에 더더더 간절히 가고 싶어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엄마! 엄니가 엄마 모시고 오라는데 후딱 갔다 오까?

 

제 몸하나 가누지 못하는 병신의 몸으로 사돈 생일 망친다며

펄쩍 뛰시는 엄마......

안사돈간 손잡고 서울 구경 다니던 시절을 떠올리며

스스로의 모습을 인정할 수 없는 엄마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거다.

 

코가 쑥 빠져 있는 나를 본 영양사들이 이유를 물었다.

평소 주방 허드렛일에 나물 다듬는 일 등을  도와주며 친해진 그들이

서로 엄마를 봐주겠노라며 다녀오라고 하자, 옆방 입소 아줌마들까지 걱정말라고 나섰다.

 

그러게 세상엔 공짜가 없는 법..

내가 좀 힘들어도 어울렁 더울렁 어울리며 살아 온 덕에

나는 이런 귀한 시간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시댁에 못 가서 인 며느리 처음 봤다며

빈정거림을 빙자한 격려와 부러움으로 

요양중인 아줌마들이 내 일처럼 나서주었다.

 

행여 내가 없는 사이 엄마가 불편하거나 우울하지 않도록

아침 일찍 엄마를 깨끗하게 목욕시켜 예쁜 옷으로 입히고

필요한 약, 시간대별 할 일을 정리해서 테이블 위에 진열해 둔 다음 

하얀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한 연인산을 등지고 11에 춘천을 향했다. 

 

엄니!!!! ~~~!!

 

살그머니 방문을 열고 ~ 하는 내 얼굴을 보신 엄니

화들짝 놀라며  

당신 누운 자리를 들춰 까치집을 만들어 무작정 누우란다.

 

엄니의 체온과 전기장판 열기가 더해져

따끈따끈한 해진 이불 속이 온 몸의 피곤함을 스르르 풀어헤쳤다.

 

교회가신 형님들 기다리며

나란히 누워 그간 못다한 수다보따리를 풀었다.

 

지난주에 세째네 신발이랑 갈치랑 사와서 용돈도 주고 다녀갔잖냐.

넌 돈 보냈음 됐지 힘든데 뭐하러 왔냐

소희에미는 하루 종일 있어도 일체 말이 읍다.

요샌 서울에 취직해서 새벽에 갔다가 9에 돌아오니 얼마나 힘이 들겄냐.

소희는 대핵교 떨어졌단다. 에혀, 대학 못 가믄 어뗘. 어찌나 착한지 몰라…”

  

이틀동안 싱크대 닦고 몸살나신 이야기며

단골 병원 간호사 누가 친절하고

앞집 누구네 엄마가 금반지를 팔았고, 뒷집 복숭아밭 큰 아들이 빵가게를 내서 망한 이야기....

한번 만난 적도 없는 이웃들의 이름과 나이까지 훤히 외울만큼 이젠 익숙해진 그들 소식을

엄니는 하나도 빼 놓지 않고, 마치 예전부터 살았던 딸에게 하듯 들려주신다.

 

생신 모임을 횟집으로 정한 건

아마도 미친 듯(?) 회를 좋아하는 막내 메눌을 생각해 엄니가 정하신 게 틀림없었다.

 

엄니를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아들들과 손주들, 오른쪽으로는 며느리들과 손녀...

푸짐한 생선회가 놓여지고 빙어튀김과 생선튀김,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졌다.

한창 먹을 나이의 손주들이 앉은 상은 먹는 게 아니라 ‘해치우는 수준으로

무서운 속도로 회접시가 바닥나고 말았다.

 

보다 못한 엄니가 우리 테이블의 회를 손주, 아들 테이블로 옮기셨고

회를 무지 좋아하는 나는 순간적으로 엄니의 팔을 잡았다.  

 

엄니!!!! ~~ 우리도 많이 먹을껴! 아들만 좋아하는 엄마 땜에

나 얼마나 스트레스 왕창 받구 있는데

엄니마저 그러믄 싫어~~~~ ~~

 

킥킥대며 웃음 참으시는 아주버님들과 형님, 아이들은 까르르 넘어간다.

 

남편과 떨어져 엄마 간호하는 나를 걱정하며 

사랑으로 나를 보살펴 주시는 아주버님, 형님들, 시누님...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먹고 웃는 것이 꿈만 같았다.

 

추가 주문하러 가는 척 계산을 마치고 들어오는데

둘째 형님이 슬그머니 나가시고, 넷째 형님이 뒤따라나가시더니

문 앞에서 두 분이 목소리 죽여가며 옥신각신하는 게 보였다.

 아마도 계산을 서로 하겠노라고 그러시는 듯 했다.

ㅋㅋ

 

벌써 계산 하셨는데요…”

횟집 주인이 던진 한 마디에 두 형님이 동시에 방안을 들여다 보셨다.

 

형님 아닌데요..

 

늘 형님들에게 기회를 빼앗기다가 처음으로 기선제압(?)하고

시침 뚝 떼고 앉은 내게

형님들은 사흘 후인 내 생일 선물이라며  

속옷과 양말넷째 형님은 

커다란 비닐 봉지 하나를 차에 실어 주셨다.

두어 시간 거뜬히 견딜 물과 공기를 넣어 고무풍선처럼 만든 비닐 어항 속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추어탕 재료 미꾸라지들이 힘차게 헤엄치고 있었다.

 

사랑도 행복도 미움조차 어울렁 더울렁 함께 어울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는 푸근한 삶이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