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강력범죄와 아동 성범죄자들의 처벌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711

45세에 영어공부하러 캐나다에 가다. - 2


BY Late Bloomer 2011-01-17

2. 영어 필요성 절감 -2

 

영어공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은 무엇인가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는 조급증을 낳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영어학원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영어공부를 해야 한다는 심적인 불안감 해소 차원 혹은 스스로 다짐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라 할 수 있었다.

 

회사 근처의 영어학원을 찾았다. 레벨테스트라는 것을 받았다. 생각보다 낮은 레벨에 실망하여 근처의 다른 학원을 찾아갔다. 레벨테스트를 다시 받았다. 대동소이였다. 내가 가진 실력을 체감하고 회사 근처 학원에 1개월 수강을 등록하였다. 3회 저녁 회화반이었다. 처음에는 보통 12명에서 15명 정도의 수강생이 출석하였다. 외국인 선생님은 자료를 나누어주고 몇 마디 얘기하더니 나머지 시간 동안은 수강생들끼리 짝을 지어 서로 질문하고 서로 대답하도록시켰다. 외국인 영어선생님과의 직접대화를 기대했던 나는 실망을 하였다. 한국 수강생끼리 대화한다고 영어실력이 느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국사람끼리 영어로 대화한다면 왜 비싼 수강료를 지불해야 하나 불만이 생겼다. 이렇게 재미가 없던 차에 가끔씩 찾아오는 야근과 회식으로 학원 출석률이 낮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한 달이 끝날 무렵이면 12명에서 15명 정도의 인원으로 시작했던 수업이 단지 3~5명 정도만 남게 되었고 나도 마지막까지 남아 있지 못하는 수강생이 되어버렸다.

 

영어공부에 대한 강박을 벗어나는 유일한 희망인 학원 수강이 이렇게 효과없이 반복되니 불안하였다. 그래서 새벽반을 등록하였다. 새벽 6시 반 혹은 7 시작하는 것이었다. 부족한 잠을 몰아가며 참석한 새벽반은 저녁반보다 수강생이 일단 많지 않았다. 학생이 적으니 외국인 영어선생님과의 대화 기회가 더 많았다. 잠을 줄여가면서 새벽에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자신을 스스로 대견해 하였다. 사실과 관계없이 얼마 있지 않으면 영어를 마스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간밤의 늦은 귀가, 극복하기 힘든 늦잠이 새벽 기상을 방해하고, 거기에 남편과 아이들의 출근 뒷바라지가 새벽반의 정시 출석을 방해하였다. 그리고 수업 역시 외국인 선생님과 대화를 한다고 하지만 늘 간단한 질문을 주고 받는 식이었다. 수강한 학생 모두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약 한 시간의 수업에서 내가 대화할 있는 기회는 기껏해야 서너번, 그것도 짧은 시간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화 역시 선생님의 간단한 질문에 대한 간단한 대답이 전부여서 실력이 생각만큼 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위안을 삼고 있었다. 그것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일상을 깨치는, 영어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느끼게 된 계기가 발생하였다. 그것은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친구들이 나보다 높은 직급으로 입사를 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직장인의 꿈이라고 하는 임원직을 기대하고 있을 즈음에 나이가 어린 친구들이 외부에서 영입되어 그 자리들을 꿰차기 시작하였다. 먼저 세살이나 어린 친구가 나보다 두 단계나 높은 임원직으로 입사하였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나보다 일곱살이나 어린 친구가 역시 중요한 다른 임원직으로 영입되었다. 직속 상사는 아니어서 견딜만 했지만 업무에 관한 지식, 경험만으로 외국계 회사에서 임원이 될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어가 꼭 필요하다는 절실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었다. 그 첫번째 친구는 미국에서 대학과 MBA를 졸업하였고, 두번째 친구는 미국에서 4년 반을 근무하여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 외국계 회사의 임원으로 영입된 중요한 자격 요건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들에 비해 부족한 것은 단 하나, 영어실력때문이다고 생각했다. 내가 맡고 있는 업무를 나보다 많이 아는 사람은 대한민국 통 털어서도 몇 명안된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그 놈의 영어가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결심했다. 일년 정도 영어에 올인하자. 일년 정도면 영어를 마스터할 수 있을 것이다. 영어만 제대로 배워오면 나를 채용하겠다는 회사들은 줄을 서있을 것이다. 영어만 해결하면 그 다음부터는 승승장구의 서광이 비추는 것 같았다. 이러한 생각이 드니 다른 것을 찬찬히 돌아볼 필요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그 일년 정도의 기간 동안 영어에 올인할 수가 있을까만이 관심사의 전부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국내에서도 꾸준함과 열정을 무기로 영어를 마스터하였다는 얘기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까지의 내 경험으로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영어권 국가에 연수를 가기로 결심을 하였다.

 

그런데 그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가장 큰 장애는 역시 남편과 두 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