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남편이 태어난 지 넉 달 된 새끼 강아지 시츄를 한 마리 데려왔다.
마당이 아닌 아파트안에서 강아지를 키워야 한다는 사실에 난 기가 막히고
너무 싫어서 둘이 따로 분가하라고 펄펄 뛰었다.ㅎ
차라리 사람을 키우지 동물은 절대 못 키우겠다고...
남편이 동물을 아주 좋아해서 공장 마당에 온갖 종류의 강아지들과
닭, 오리까지-여기가 농장인지 공장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키울 때도
나는 그냥 그의 취미생활이려니 하고 그들을 소 닭 보듯 하며 살았다.
나는 털 달린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왠지 만지면 당장 거기서 무슨 병원균이 옮아올 것같기도 하고
자꾸만 불결한 생각이 들어서....
그런데 이젠 아예 집에서 함께 생활을 해야한다니 기가 막혔다.
키우던 집에서 할머니가 너무 싫어하시는 바람에 내보내야 하는데
보낼 곳이 없다길래 동생네 주려고 데려왔으니 열흘만 데리고 있자며 나를
설득했다. 자기가 씻기고 X도 다 치우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래서 일단 열흘만 꾹 참기로 했다.
이 눔의 강아지가 눈치 코치도 없이 나한테 마구 달려들고 닥치는대로
혀로 핥는데 첨엔 미칠 것같았다.
나는 이리 저리 도망다니기에 바빴다.
게다가 남편이 없는 사이에 X이라도 싸놓으면 비위가 상해서
-내가 애들 가져서 입덧이 워낙 심했기 때문에 그 이후로 비위가 약해졌다-
밖에서 손님 만나고 있는 남편한테 전화해서는
\"빨리 들어와서 X 안 치우고 뭐 하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ㅎ
그렇게 열흘이 지나기만 학수고대 하고 있는 내게
남편은 자꾸만 강아지를 안고 내 코앞에 디밀며 \"이쁘지?\" \"이쁘지?\" 했다
\"악..저리 치웟\" 하며 질색을 하면
\"으이구...인정머리가 없어 아주...\" 이러구 눈을 흘기고
나는 내 입장은 조금도 생각해주지 않는 남편 때문에 너무 울화가 치밀었다.
남편이 예방주사를 맞히러 병원에 다녀오더니 사람들이 다들
\"시츄 치고는 아주 잘 생겼다\"고 했단다.
\"칫! 강아지가 다 거기서 거기지 잘 생기긴...\"
\"아냐 진짜야~ 여기 정수리랑 목덜미랑 등 세군데에 흰털 무늬가 있는 시츄는 드물대.
진짜 잘 생긴거래\"
\"나참..털이야 어쩌다 보니 갈색이랑 흰색이 섞였겠지 그깟 털모양으로 인물 정하나?\"
다른 사람들이 \"정들면 아마 못 보낼걸?\"그런 말을 할 때도
난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다\"라고 못을 박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일주일이 가고 열흘이 가까와지니까
이 강아지가 얼굴이 좀 예쁜 것같기도 하고 귀여운 것같기도 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현관 앞에서 두 발로 펄쩍 펄쩍 뛰며 반겨주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같았다.
집에 아무도 없던 날 할 수 없이 X을 한 번 치워보니까
사료만 먹여서 그런지 냄새도 없고 별로 더럽게 느껴지지도 않고 치울 만 했다.
어느날은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 얼굴을 보니 좀 꼬질꼬질한 것같아서
목욕을 시키고 드라이기로 말려주고 보니 깔끔해서 만져봐도 느낌이 별로
싫지가 않았다. 내가 직접 씻겼으니 더 깨끗하다는 생각도 들고...
남편은 나더러 아주 잘 했다며 칭찬세례를 마구 퍼부었다.
-아무래도 이게 작전이었을거다. 나를 잘 구슬려서 강아지와 함께 살려고-
그렇게 해서 우리 매리는 결국 열흘 후에도 시동생 집으로 보내지지 않고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
울타리안에 가둬 기를거고 절대 사람과 한 침대에서는 못 재운다는 말이
내맘에도 좀 걸렸기 때문이다. 아이도 없는 신혼부부니 그럴 수밖에...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 재우려고 하니 아직 새끼라서 밤새 낑낑거리길래
이왕 키우는거 그냥 스트레스 받지않게 풀어놔서 키우자고 한 것이
이제는 우리식구와 같이 자고 같이 일어나고 온집안을 휘젓고 다니게 되었다.
처음엔 내가 자꾸만 조립형 펜스를 부숴 놓으니까
강아지 꼴보기 싫어서 그런 줄 알고 남편은 도로 조립을 해놓고 나가고
나는 또 다시 부수고....그런 일이 반복되었는데,
내가 강아지를 안 좋아하긴 해도 그 좁은 우리 안에 가두어 놓으면
아무래도 갑자기 엄마 떨어져 낯설기도 한데다 갑갑해서 스트레스 받을 것같다고 하니까
그제야 남편도 \'아주 기특한 생각\'이라며 반겼다.
온 식구가 나서서 서로 챙기다 보니 내손이 그다지 많이 가지도 않고
별로 말썽도 부리지 않는다.
우리가 집안을 왔다 갔다 하면 쫄레쫄레 따라다니지만
자리를 잡고 앉거나 멈춰서서 무슨 일을 하면 주변에서 가만히 앉아 얌전히 기다리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덜 힘든 것같다.
우리가 밥을 먹고 있으면 식탁 밑에 와서 얌전히 엎드려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내가 상을 펴놓고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내 무릎에 와 앉아서
턱을 괴고 자기도 함께 본다.
우리 매리는 이제 온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지만
거의 매일 운동을 시켜주고 아침 저녁 식사를 챙겨주는 남편 옆에서만 잔다.
아침이 되면 제일 먼저 일어나 남편 얼굴을 핥으며 낑낑거린다. 밥 달라고.
대소변도 처음에만 좀 실수를 했지 이젠 아주 정확히 잘 가린다.
털이 많이 빠질 줄 알았더니 전혀 그렇지가 않다.(시츄는 털이 잘 안 빠진다는 설도 있다)
겨울이라 따뜻하라고 얼굴이외엔 털을 깎아주지 않았는데도..
첨에 우리집에 올 땐 키우던 할머니가 지어준 이름이 \'메리\'였는데
사람들이 \'아니 무슨 70년대 이름을 붙여주었냐?\'고 다들 놀려서
얼마전에 유행하던 드라마 주인공 매리의 이름을 따서 \'매리\'로 개명을 했다.
-배우 문근영에게는 좀 미안하지만ㅋ-
좀 더 낫고 근사한 이름을 지어줄래도 얘가 태어나면서부터 메리라는 이름에
익숙해져서 다른 이름을 부르면 알아듣지 못 하기 때문에 결국
듣기에 비슷하면서도 약간 더 세련된 \'매리\'가 된 것이다.(완전 내생각ㅎ)
이제는 나도 매리가 너무 예뻐서 안고 어르고 별짓을 다 한다.
한 번은 안고 \'둥기둥기~\'하고 있으려니까 남편이 깔깔 웃었다.
\"아니 이 사람이 무슨 손주 봐주냐?ㅎㅎ\"
이제는 뽀뽀까지는 아니어도 얼굴을 부비고 쓰다듬고 안아주고
너무 귀여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털이 복슬복슬한 얼굴이 마치 솜사탕 뭉치 같아서 얼마나 귀여운지...
귀가 옆얼굴을 푹 덮으니까 마치 단발머리 소녀 같기도 하다.
밖에서 일하다 보면 \'우리 매리 심심하겠네\'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오래 혼자 두면 우울증 걸린다던데 얼른 들어가야겠네\'이런 생각이 들고
보고 싶어진다.
매리를 데리고 밖에 나가면
마치 또래의 애기엄마들끼리 만나면 금방 친해지듯이
\'이 강아지는 몇 개월이에요? 무슨 종이에요?이름은요?\'이러면서 금방 친해지게 된다.
우리 매리는 순해서 다른 큰 개들이 막 공격을 해오면
가만히 서서 물끄러미 보다가 얼른 되돌아서 온다.
사납지 않고 착하다.
잠잘 때는 큰 대자로 누워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를 하고
마치 애기처럼 새액색~ 숨소리를 내기도 하고 웅얼웅얼 잠꼬대도 한다.
아파트에서는 예의를 지켜야하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듯이
생전 짖지도 않는다.
식구들이 저만 두고 모두 다 외출을 할 때 잠깐 동안
\'아~앙,아~앙\'우는 것 외엔.(짖는 게 아니라 애처롭게 운다ㅠ)
이제 난 \'애완동물 절대 반입금지\' 이런 팻말을 보면 괜히 서운하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 안 들여보내주는 게 이해가 가긴 하지만
\'물건도 아닌데 반입금지는 또 뭐야?\'이러면서...
이제는 어디가 아프면 어쩌나 걱정이고 오래 못 살까봐 걱정이 된다.
요즘 의술이 좋아져서 25년까지도 산다니 다행이다.
다른 사람 다 변해도 내가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니가 인정이 있는데 정이 안 들고 배겨?ㅎㅎ\'하는 이도 있다.
다들 이래서 반려동물을 키우고 사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