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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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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기러기 아빠의 행복


BY 그대향기 2011-01-07

 

 

낮에 남편의 친구가 잠깐 다녀갔다.

수련회 중이라 집안 풍경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꼭두새벽에 주방에 내려가면

늦은 밤이라야 들어오는 집안이니 새벽에 몸만 빠져 나간 침실은

뱀이 허물을 벗은 꼴로 이부자리가 꾸불꾸불 침대 위에 널부러져 있었다.

거실엔  차탁 위에 커피잔이며 택배 용지가 어지럽다.

쇼파 위에는 아홉개의 쿠션이 자유형으로 너무나 편안(?)하다.

 

손님이 온다는 전갈도 없이 내가 집에 뭘 가지러 잠깐 올라 간 그 시간에

갑자기 온 경우라 순간 당황했다.

우리집 사정이야 어찌되었던간에 주부가 있는 집안풍경이

전혀 정리정돈이 안된 경우다보니 은근히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하게된 나의 넝구렁이액션~

말라비틀어져서 구석에 쳐박혀 있던 물걸레를 손님이 눈치채지 못하게 적신 다음

안하는 척 슬금슬금 거실 바닥이며 거실장 위 먼지를 훔치기.

동작이 멈춰져 있던 실내용 물레방앗간에 머그컵으로 두어번 물 채워서 스위치 넣기.

대형스크린에 잔뜩 달라붙어있는 먼지를 화면 앞을 지나가면서 등 뒤로 슬그머니 닦기.

손님다과 준비하는 척하면서 급하게 씽크대 안 물컵 여남은개 급씻기.

(누가 씽크대 검사 들어온다고 지레 쫄려서...ㅋㅋㅋ)

그러는 중에서도 목소리만은 최대한 밝고 반갑게 톤을 높여서

\"어머나~어서오세요.

 오신다고 미리 얘기해 줬더라면 집을 깨끗하게 치워둘건데...

 너무 어질러져있지요?

 평소엔 이 정도는 아닌데 수련회중이라 그만....ㅎㅎㅎ\"

 

나의 호들갑스런 인삿말에 남편의 친구는 오히려 인간적이라

편하다며 정감이 더 간다는 위로를 하는데...ㅎㅎㅎ

먼지 알갱이 하나 없이 깨끗하게는 아니더라도

대충 거실만은 정리해 두고는 살걸....

남편이 차를 대접하고 내가 다과를 준비하면서 듣게 된 남편친구의 일상.

공기업에 근무하는 그 친구는 올해 결혼 20년이 된 쉰의 나이.

대도시에 근무하다가 1년 전에 이곳 창녕으로 발령이 났다고 했다.

아이들 공부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은 대도시에 그냥 두고 혼자만 왔단다.

 

처음에는 시골이라 출세길이 막히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없진 않았지만 이젠 아주 편하다고 했다.

대도시에 근무할 때는 퇴근 후 거의 날마다 직원들끼리의 술자리때문에

건강이 많이 나빠졌었는데

시골에 온 다음부터는 밤문화가 줄어 들었고

술자리는 식사 후 반주 한두잔 정도로 줄어 들었다고 했다.

일주일 중에서 주 중에 아내가 한번 와서 빨래와 밑반찬을 봐 주고 가고

금요일에는 그 친구가 아이들이 있는 대도시에 마련해 둔  본가로 합류하는데

결혼 한지 20년이 된 싯점에서 권태기가 올 무렵에 주말부부가 되고보니

새록새록 새정이 생겨나는 것 같다고 했다.

 

혼자 회사에서 내준 사택에 살면서 퇴근 후 하루도 그르지 않고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고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가뿐하게 화왕산에 등반을 하고 출근을 하며

사택근처 군립도서관에서 매주 몇권씩 책을 대출받아서 현실감각을 게을리하지 않고

주말에는 축구동호인 모임에서 한두게임씩 축구를 하다고 했다.

큰 욕심없이 예순에 있을 정년퇴직 때까지 건강하게 근무하고

그때까지 딱 십년동안 영어를   더 열심히 공부해서

가이더없이 혼자 힘으로 전 세계를 여행해 본다는 큰 계획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친절한 한글자막이 없는 영어 방송을 매일매일 듣고 보고

영자신문을 받아보면서 영어실력을 쌓는다고 했다. 

회사로 찾아오는 외국손님을 서툰 영어실력이지만 직접 만나고 있다고 했다.

자신감을 갖기위해서 한 일이었는데 이젠 큰 어려움없이 술술 대화가 된다고 했다.

 

아~

그 친구의 그 꿈이 너무나 아름다워보였다.

거창하고 원대하게 꿈만 꾸는게 아니라

주말부부라 불편하고 구질구질한게 아니라 서로가 그리운 마음이 더 있어서 행복하고

혼자인 시간에 공부할 조용한 시간이 더 많아서 행복하다는 그 친구.

시골생활의 여유로움을 자신의 재발견과 은퇴 후 꼭 해 보고싶은 꿈을 키우던 그 친구.

아내와 함께 떠날   세계여행이어도 좋고

사업하는 친구를 따라 해외 바이어들을 만나서 자신이 통역을 해 주고 싶다던 그 친구.

그 꿈을 위해 알차게 준비를 하면서 직장에서도 성실히 근무하고

큰 욕심부리지 않겠다며 편안하게 이야기하던 그 친구.

 

기러기 아버지들의 슬픔은 그 친구에게는 없었다.

현직장에 근무하는 동안 학비를 지원받아 아이들 대학공부를 마치고

정년을 맞을 것이고 정년 후에는 연금생활을 하면서

세계여행을 떠날 가슴 벅찬 계획을 착실히 준비한다는 그 친구의 꿈이

수십억대의 사업을 하는 사장님이 아닌 일반 직장인이 가지는

값진 노년의 꿈이기에 꼭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얼마나 멋진 일인지....

로또복권을 사서 일확천금을  바라는 것도 아니라 더 멋지다.

어쩌다가 주식투자를 잘해서 얻어진 일회성 대박이 아니라서 더 멋지다.

회삿돈을 뚱쳐서 떠나는 비겁한 여행이 아니라서 더더욱 빛이나고 멋진 일이질 않는가 말이다.

 

그 친구가 조근조근 향후 계획을 이야기하는데 참 부럽기도했고 장하다 싶었다.

주어진 환경에서 행복할 조건을 스스로 찾았고 그 조건들에 맞도록

자신을 개발하고 노년을 착실히 준비하는 그 친구처럼

남자 쉰의 나이에 큰 욕심부리지 않고 행복해질 조건을 찾는 것 부터가 중요하겠다.

빌딩임대료가 한달에 수백 수천만원씩 들어오는 부자가 아니어도

자신 앞으로 된 작은 주택이 있어 행복하다던 그 친구.

그럼 우리 남편의 행복조건은 어디에 있을까? 

그 친구처럼  거창하고 원대하게 세계일주는 아니더라도

요쪽 가까운 동남아시아쪽이라도 계획이 있나 살짝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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