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짝사랑해 보신 적이 있나요? 과거거나 아니면 지금.
짝사랑을 해보신 분은 잘 아시겠지만 짝사랑은 참 이상합니다. 그 대상이 내게 어떤 것을 바랬던 것도, 해준 것도 없고, 특별히 별다른 응대나 반응을 보인 것도 아니고, 어쩌면 나라는 존재 조차도 모를 수도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특별한 감정이 생기니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얘길 해도 내겐 아주 특별해 보이고, 전엔 분명히 잘 알지도 못했지만 왠지 가깝게 느껴지고, 어떨 땐 이미 나의 일부인 듯 느껴지니 인생 윤회(輪廻)의 틀 속에서 인식이 되기까지 합니다.
그의 평범한 표정 하나가 나를 위한 것 같고, 일상적인 태도도 나에게 날려보내는 특별한 사인같고, 툭 던지듯 내 뱉는 말 한마디도 날 들어라고 하는 말 같고, 내가 그에게 쏟아붓는 생각의 시간보다 훨씬 많이 그가 나를 생각할 것 같고, 밤이 외로움을 찾아들때면 왠지 그도 나에게 전화를 걸려다 말 것 같고, 이미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에겐 내가 자신의 애인이 되버린 냥 얘길할 것 같고, 하루를 마감하는 잠자리에서 내 생각으로 하루에게 종언(終言)을 할 것 같고, 맛있는 음식을 보아도, 멋진 카페를 지나가도, 화창한 날씨를 봐도, 비가 부슬부슬 내려도, 찬바람이 불어도 그가 생각나고, 의미없이 들리던 음악도 그와의 관계를 꼭 집어 표현한 얘기인 것 같고, 이전엔 별관심 없었던 영화가, 연극이, 공연이, 전시회가 달라 보이고, 그 달라 보이는 곳에는 항상 그가 서있는 듯하고, 흘려 지나치는 사람들 중에 그와 닮은 사람은 왜 이리도 많은지..
어쩌다 그와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짐짓 아무런 느낌이 없는 듯 태연한 표정을 짓고 행동 하지만 속으로 느끼는 흥분과 희열에, 때론 안타까움에 내 모든 것은 함몰되어 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게 되면 그 순간을 음미하며 내 용기없음을 책망하고 안타까움을 곱씹어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을 그도 나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있을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가 내게 이런 생각을 하도록 요구하거나 강요하거나 심지어 넌지시 주는 암시조차 없었습니다. 나 혼자서 만들어 낸 나만의 믿음이자 희망이자 기대라고 할 수 있죠. 물론 실제 내가 생각하고 믿고 있는 이런 것들을 그가 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알고 싶기는 합니다만 그가 현재 그렇지 않다해도 크게 실망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언젠가 그러한 믿음이 확신이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에 비중을 두기 떄문에...
짝사랑이라 명명되어 갖게된 그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나에겐 어떤 알지 못할 설레임과 흥분을 가져다 주는 것 같습니다. 일방적이지만 몰입할 수 있는 나 혼자의 생각이 있고 그 생각이 내 생활에 활력을 불어 넣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흥분과 활력은 단지 그가 존재한다는 것에 연유된 것이니 그는 이미 내게 삶의 의미 같은 것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짝사랑은 완전함과 포만감을 주는 완결이 아니라 안타까움과 희망이 상존하는 아름다운 과정인 것 같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이 이 과정을 괴로움이라 칭하기도 합니다만 그 괴로움 마저도 아름다운 모습인 것 같습니다. 짝사랑은 감정에 진솔한 자연스런 현상이고 아무나 쉽게 인간적인 감정에 진솔해지지 못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