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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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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노석에서.


BY lala47 2010-10-24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참 친절한 나라다.

만 육십오세가 넘으면 지하철도 공짜로 탈수 있고 영화관이나 목욕탕이 할인이 되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또 있겠는가.

경노사상이 투철한 반면에 나이 든 것을 벼슬쯤으로 아는 노인들이 가끔 있기는 하지만 나이 든 사람이 살아가는데 편리함을 제공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다.

경노석에 앉으면 나는 영계다.

만 육십오세가 넘어야 경노석에 앉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나는 만 육십세 환갑이 지난 후부터 당당하게 경노석을 차지하는 실수를 범했다.

노인들은 친절하고 남의 일에 관심이 많다.

누군가 길을 물으면 앞 다투어 가르쳐준다.

내게 묻지 않았는데도 나도 가끔 가르쳐주고 싶어 입이 달싹 거리는 것은 경노석에 앉을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닐까.

우아하게 늙고 싶다는 나의 또 하나의 소망은 나를 침묵하게 만든다.

잘 난체 하는 것보다 우아한 것이 한결 낫지 않을까.

나서지 말자. 잘 난체 말자.

나는 내게 주의를 주곤 한다.

나란히 앉은 노인들의 대화를 듣는다.

“어디 사슈?”“아..거기 내가 예전에 살던 동네예요.”이런 투의 이야기는 자식 자랑으로 이어진다.

자식 자랑은 누구에게나 살 맛 나게 하는 대목이다.

자식은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이라는 사실에 나는 공감한다.

땅콩을 들고 탄 할머니가 땅콩을 나누어 주면서 내게 묻는다.

“몇이우?”

나이가 몇 살이냐는 말이다.

“환갑 넘었어요.”그렇게만 말했다.

“영감은 살아계슈?”궁금한 것이 많은 할머니였다.

“네.”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 분명하니까 그렇게 말했다.

잘 살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혼의 의미는 소식두절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가끔 그런 생각이 지나 가는 것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아무런 미련도 남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사십년 가깝게 쌓아온 그놈의 정이란 것이 문제인 것 같다.

어느 장소 어느 상황에서도 복병처럼 휘익 내게 다가오는 존재를 어찌하면 좋을까.

진심으로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쩌면 그도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들은 다 출가 시켰수?”“네.”땅콩을 괜히 받았다는 후회가 들었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물씬 가슴을 파고 들었다.

큰아들을 본지가 언제였던가.

미국으로 떠난 큰아들은 칠년째 아무 소식이 없다.

부모에 대한 원망을 언제쯤 접을 것인가.

그리움이 기다림으로 기다림이 포기로 되기까지 많은 아픔이 있었지만 네 마음에 아픔이 없기를 엄마로서 바라면서 칠년이 흘렀다.

땅콩을 나누어주었던 할머니는 지난 해에 남편이 죽고 혼자 사는데 심심해서 가끔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를 했다.

“자식들이 같이 살자고 하지만 혼자 살겠다고 했어요.”

“아..네에..”

생각은 아들 찾아 멀리 미국으로 가고 있으면서 헛대답을 하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유?”“건대앞인데요.”“아이구.. 나 내려요.”할머니가 허겁 지겁 내린 후에 나는 눈을 감고 기대어 앉았다.

손에 한웅큼 쥐어져 있는 땅콩은 어찌 할까.

다시 양쪽에 칠십대 할머니가 앉았다.

왼쪽 할머니는 내게 묻는다.

“남양주에 가려면 어디서 갈아타야 해요?”나는 내가 갈아탈 곳만 입력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알려줄 수가 없다.

“글쎄요.”

이 대답밖에 할 수가 없었다.

머뭇거리고 있는 동안에 오른쪽 할머니가 대신 대답을 해주었다.

“왕십리에서 갈아타면 되요.”왼쪽 할머니는 오른쪽 할머니가 나서는 것이 마음이 안 드는 눈치다.

“누가 자기한테 물어봤나. 젊은 사람에게 물어봤구먼.”젊은 사람이라니...

누구 내 옆에 젊은 사람이 있는가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내가 남양주 살아서 내가 잘 알아요.”오른쪽 할머니는 ‘내가’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발끈한다.

왼쪽 할머니는 들은 체를 하지 않고 내게 다시 묻는다.

지하철 노선표를 내게 보여주며 자세히 보고 알려달란다.

나만큼 믿음직한 사람이 없었나보다.

젊은 나는 아직 돋보기를 쓰지 않아도 작은 글씨를 볼 수 있지만 그렇게까지 성의를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귀찮다.

종이에 적은 아들네 주소를 보여주었다.

“내가 가는 곳이 이 곳이라우.”아파트 이름이 길기도 하다.

시어머니 찾아오지 말라고 아파트 이름을 길게 지었다는 말이 정말일까.

씁쓸한 이야기가 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는지...

시어머니 입장인 나는 그 말이 슬프다.

작은 아들네는 잘 지내고 있을까..

손녀는 많이 컸겠지..

또 다른 생각이 찾아든다.

소외된 오른쪽 할머니가 가만있지를 않는다.

나는 그 할머니가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내가 늙어 보이는 모양인데 내가 당신보다 더 젊어요. 나만 따라오면 된다구요.”

또 ‘내가’라는 말을 반복한다.

양쪽을 비교해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오른쪽 할머니가 조금 더 젊어 보인다.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요?”왼쪽 할머니는 내 웃음이 기분이 나쁜 모양이다.

실수다.

웃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아주머니. 전 잘 모르니까 저 아주머니를 따라가시면 될 것 같은데요.”할머니를 아주머니라고 불러주는 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예의는 지킨 셈이라고 생각했다.

“나만 따라 오라니깐.”오른쪽 할머니는 응원군을 만난 것처럼 의기양양해졌다.

왕십리에 도착했다.

오른쪽 할머니는 왼쪽 할머니를 재촉했지만 왼쪽 할머니는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나는 왼쪽 할머니의 등을 떠밀어 오른쪽 할머니 꽁무니에 붙여 보냈다.

창밖을 보니 나를 힐끔 돌아다 보는 왼쪽 할머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원망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이제부터는 경노석을 피해야 겠다.

젊은 나는 젊은 사람들 틈으로 돌아가야겠다.

나는 그곳에서 젊은이들에게 길도 물어보고 노인행세를 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