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적 일이다.
지인의 병문안차 병원입원실에 갔다.
4인실,,
간호사가 칠십넘어보이는 할머니한테 계속 채근을 한다.
\"보호자 없어요? 보호자! 지금 검사실 가야하는데.. 네? 연락해서 빨리 오라고 하세요!!\"
병실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 할머니에게 시선을 꽂는다.
간호사는 나가고, 할머니는 \'될대로 돼라\' 하는 표정으로 침대에 눞는다.
저 구석에 누워있는 또 다른 할머니는 딸로 보이는 40대 아줌마가 간호를 하고 있었다
\"무슨 복에 딸이 있우?\"
보호자없는 할머니의 외침이었다. 이 할머니는 아들만 둘이 있는데, 하나는 미국가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고, 큰 아들은 서울에 사는데 이틀에 한번 와서는 얼굴만 비치고
간다고 했다.
\"며느리는요?\" 딸가진 할머니의 물음이었다.
아들가진할머니가 몸을 일으키며 서랍에서 뭘 꺼냈다.
검정 비닐봉투에 들어있는 꿀떡한접시..스치로폴접시.
\"이거 어제 아들이 갖고 왔읍디다, 며느리가 가져가라고...\"
아들가진 할머니 머리맡엔 \"금식\"이라고 붙어있었다.
\"무슨 복에 딸이 있우?\" \"무슨 복에 딸이 있우?\" ..................
난 이 메아리같은 문장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다. 눈에 넣어도 안아플 아이..
6살때 까지 동생을 안봤었다. 하나만 잘 키워야지..하면서.
어느날 행길로 난 창문너머로 백발의 할머니와 50이넘은 아줌마가 팔짱을
나란히 끼고 다정히 걸어가는걸 봤다.
그들의 사이가 모녀지간일지, 고부지간일지, 난 지금도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 순간 내 머리속에 떠오른 이 말은..
\"아..난,. 내가 저렇게 백발이 되어 늙었을때 팔짱끼고 같이 걸어갈 딸이 없구나..\"
딸을 낳아야지......
아이를 가졌다. 큰애는 울면서 발버둥쳤다. \"왜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데..엉엉...나나
열심히 키우라고...엉엉...\"
십자수를 열심히 놓고, 피아노도 치고. 책도 읽고, 예쁜 그림을 보고...
그러나 임신 8개월에 의사가 말했다.
\"큰애 입히던거 그냥 입히세요...\"
아들만 둘이 된거다....... \"무슨 복에 딸이 있우?\"
왜 자꾸만 20년전 그 병실에 누워있던 낯선 할머니와 내가 오버랩이 되는거지?
고등학생인 큰아들한테 세뇌를 시킨다.
\"딸같은 며느리가 들어온대...\"라며.
그러면서 나한테도 역시 세뇌를 시키는거다.
\"딸같은 며느리가 둘이나 된다...\" 라고.
그러면 난 내가 백발의 할머니가 되었을때
양옆에 50이 넘은, 그리고 50이 안된 아줌마 둘과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걸어가기만 하면 되겠네.....
생각만 해도 행복해진다..
근데 자꾸만 자꾸만 낯선병실의 낯선 할머니가 떠오르는건 어떻게 하지?
\"무슨 복에 딸이 있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