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내겐 꿈이 있었다.
나는 국문학을 전공했고 현대소설이 나의 전공분야였다.
그 꿈을 접고 한 남자의 아내로서 한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안주하게 되었던 이유는 한가지뿐이었다.
사랑받고 싶었기때문이다.
남편은 내가 글 쓰는 일을 반대했고 나는 그가 원하지 않는 일은 포기했다.
나는 나를 포기할만큼 사랑에 눈이 어두웠다.
남편의 사랑을 받기위해서 나는 열심히 시집살이를 했고 시집의 대소사를 책임지는 일을 기꺼이 했다.
여자가 시집살이를 하는 이유는 남편에게 인정 받기위해서임은 어느 여자나 마찬가지일것이다.
여자는 남편의 사랑을 갈구한다.
시어머님이 일찍 돌아가신후 집안 살림을 맡고 제사를 모시며 시할머님도 모셨고 홀시아버지를
삼십년을 모시기도 했고 연년생인 시동생 시누이를 한해에 결혼을 시키는 일도 감행했다.
그 해에 내 남편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 있다는것을 전혀 모르는체 나는 나대로의 자부심에
사로잡혀 있는 어리석은 시간을 보냈다.
그 사랑이 이십오년동안 지속되는 동안에 나는 알지 못했다.
내 가슴이 크게 무너진것은 나 아닌 다른 여자에게도 여보 당신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이었다.
나만이 그의 여보가 아니었던 것이다.
잘난 남자는 여자가 여럿이라고 그가 말했다.
내가 바랬던것은 잘난 남자가 아님을 그는 알지 못했다.
결혼 삼십삼년에 이십오년 된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나면서 나의 그동안의 자부심은 물거품이 되었다.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때에서야 나는 비로소 나의 잃어버린 꿈을 기억해내었다.
나도 나를 찾아야만 했다.
나를 찾기위해서는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곳에 내가 있었다.
신문고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아픔을 토해낸 글이 에세이집 \'시앗\'이었다.
\'시앗\'의 출판은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시점이었음에 실명을 피해서 김서영이라는 필명을 사용했지만
나의 그동안의 시집에 대한 공로는 무효라고 그가 말했다.
두권의 에세이집 \'시앗\'은 많은 파문을 몰고 왔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바뀌는 순간이 되고 말았다.
출판으로 인해서 시집식구들과 그는 내가 가해자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가해자라는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누가 가해자이든 정리를 해야만 했다.
긴 결혼생활에대한 회한이 왜 없겠는가.
허나 앞으로 살아갈 날들도 같은 날들이 되지 않기위해서 나는 훌훌 벗어던졌다.
나는 나의 미래를 소중하게 여기고 싶었다.
육십사세의 나이에 늦은 첫소설 \'한남자 두집\'을 내어 놓는다.
나는 나의 이름을 찾았다.
잊고 있었는데 정희경이 나였다.
그리고 잃어버린 꿈을 찾아 나는 살아갈것이고 이 땅에 기만당하고 사는 많은 여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
홀로서기란 그리 외로운것만은 아님을 보여줄것이다.
행복이 그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