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중환자실에 뉘여 놓고 자식인 나는 아침마다 눈이 떠지고 때마다 배고픔이 생기며 밤엔 잠이 쏟아진다. 엄마를 중환자실에 뉘여 놓고 자식인 나는 뜨거운 국물에 저 입술 데일까 후후 불며 밥 먹고 라면 먹고 커피를 마신다. 오장육부를 도려낸 아픔을 견디는 엄마를 두고.. 중환자실에 엄마를 뉘여 놓고 자식인 나는 아침마다 만나는 이웃들에게 반가운 미소로 그들의 안부를 물으며 직원들과 송별회하며 즐거운 듯 웃고 떠든다. 중환자실에 엄마를 뉘여 놓고 자식인 나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라던 엄마의 한 가지 가르침조차 지키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 벌컥 벌컥 화를 내고 만다. 중환자실에 엄마를 뉘여 놓고 자식인 나는 퇴근길에 남편이 좋아하는 참치를 사고 김치가 시었네 맛있네 밥 위에 얹어주며 한 숟갈도 남기지 않고 먹어준 남편이 이뻐서 곱살스럽게 바라본다. 중환자실에 엄마를 뉘여 놓고 자식인 나는 엄마 어떠시냐고 전화 한 지인들에게 자궁떼고 난소떼고 직장 자르고 나팔관 긁어 냈노라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태연히 말한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태연히.. 중환자실에 엄마를 뉘여 놓고 자식인 나는 몸에 좋은 비타민 C 피부에 좋은 콜라겐 챙겨 먹으며 눈가에 생긴 한 줄 주름살이 거슬려 엄지 검지로 당겨본다. 엄마 죽으면 따라 죽으려던 어린날 맹세는 헛것이 되고.. 중환자실에 엄마를 뉘여 놓고 자식인 나는 약속된 결혼식 초대 취소하지 못해 신부의 드레스 입혀주고 잔치 음식 만들어 신랑 신부를 위해 축복기도를 한다. 중환자실에 엄마를 뉘여 놓고 자식인 나는 쇼 윈도우에 걸린 예쁜 옷에 눈길이 머물고 가구점 안락 쇼파 50% 할인 광고에 흥분하며 신형 CD플레이어, LCD TV의 할인에 마음이 흔들린다. 엄마를 중환자실에 뉘여 놓은 자식은 자식을 중환자실에 뉘여 놓고 먹지도 잠을 잘 수도 없는 엄마처럼 큰 소리 내어 웃어도 안될 것만 같은데
아무 일 없는 듯
세상 모든 것을 향한 욕망이 살아 꿈틀댄다. 엄마를 중환자실에 뉘여 놓고도 세상이 돌아가고 내가 변함없이 살아지는 게 신기하고 슬프다. 부모님 땅에 묻고 돌아온 상복 입은 여인네들이 음식점에 둘러 앉아 웃으며 제 입에, 새끼 입에 밥 떠 넣는 걸 신기하게 보던 날처럼 나도 그렇게 살아진다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작은 위로 한 마디라도 건냈을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