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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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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 2


BY 섬 2010-08-11

2. 부부싸움--承

신혼 시절에는 시위성 토라짐이 거의 전부였다.
그저 내가 이렇게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껀수를 내걸고
말도 안하고, 밥도 안먹고, 울고, 온갖 슬픈 생각 엮어낸 끝의 청승을 연출하면서
남편이 안절부절 못하거나, 신경이 꼿꼿이 서는 걸 넘어
토라진 마누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유치찬란한 원맨쇼라도 해서
그래도 아직은 너에게 내가 그토록 중요하구나 하는 득의만만한 감동이라도 받아마셔야
배운대로 살아지지 않는 이 얼토당토않은 현실에 조금은 앙갚음을 한 느낌이었다.

한 해 한 해를 넘기면서
이제 더 이상 남편은 안절부절하지 않는다.
밤늦도록 집으로 건 전화통에서 내둥 디리릭디리릭 빈소리만 들려도
집에 달려와 가족의 안전을 확인하는 조바심 따위는 애저녁에 옛날얘기가 되어버렸다.

몇 시간 씩 차를 몰고 장거리 나들이를 갔다 오더라도
운전 조심하라는, 잘 다녀왔냐는 걱정어린 전화 인사 한마디 없고
심지어는 며칠씩 여행을 다녀오더라도 무덤덤하니 궁금한 게 없는 남의 남자이다.
나만 심통이 나서 괜스레 뻔질나게 마누라 찾는 전화로 바쁜 친구나 언니에게만 퉁을 준다.

애초에 남편 집안의 내력이 멋대가리 없기로는 소문난 남자들이니
별스레 곰살맞은 전화나 달콤한 립써비스는 기대하지 말아야지 단념을 하다가도
연애시절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어느 숨겨놓은 애첩에게만은 갖은 요사를 다 떨고
나만 이 지경을 당하는 게 아닌가하는 의심이 전혀 안 드는 것도 아니다.

밥을 떠도 맨 마지막에 헐한 밥을 내 것으로 하고
가운데 토막 생선 다 발라 식구들 앞에 놓아주고 가시만 발라먹을 때도 나는
옛날 우리 어머니들처럼 여자는 그래야한다는 식의 가치관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접대하는 입장이니까,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자연스런 예의의 표현이었지
결코 그들보다 내가 아랫자리라는 걸 인정해서는 아니었던 것이다.
당연 내 남편이 밥을 푸게 될 때는 그도 자기 밥을 맨 나중에 푸리라는 전제 하에
나는 내가 결정하는 모든 자리매김의 맨 마지막에 기꺼이 나를 끼워넣었던 것이다.

그런 믿음이 어느 순간엔가 연처럼 허망하게 날아가버리고 나면
팽팽하게 당겨져 몸부림치던 연줄은 아무 의미없이 땅 위로 스러져버린다.
그리곤 허탈한 마음으로 저 하늘 높이 날아오른 연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내가 꿈꿔왔던 일상이 네가 생각하는 일상과 그렇게나 달랐던 것을
아주 조금씩조금씩 알게 된다. 이제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