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때쯤 서울 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시골 국민학교 동창의 대학생 아들이 군대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밴쿠버로 가게 되어 내 전화번호를 주었다는 것.
언니의 동창이라 해도 본 적이 없고
그 아들이라면 오천만 대한민국 국민 중 한 사람일 뿐이지만
나를 찾아 오는 한국 손님은 언제나 괜한 설렘으로 기다려진다.
며칠 후, 아버지의 옛 직장동료 되시는 분 집에 짐을 풀었다며 찾아 온 녀석은
외아들 티가 나지 않는 서민풍(?) 외모에 큰 키...
아직은 군기가 덜 빠진 평범한 보통의 대학생이었다.
지방 한 점 없는 마른 몸집은 가냘픈 느낌마저 드는데
밴쿠버 도착 사흘 째부터 이삿짐 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단다.
언니의 부탁도 있으니 무언가 도움을 줘야 할 것 같아
시차적응도 안된 상태에서의 고된 노동은 자칫 몸살 날 수 있다며
현지 적응도 할 겸, 먼저 어학공부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찾으라고 권했다.
녀석은 처음 만난 내게 거리낌 없이 앞으로 1년 동안의 계획을 들려주며
나의 조언을 받아들일 수 없음에 대해 설득에 가까운 부연을 했다.
앞으로 복학하면 두 번 다시 이런 기회를 갖기 어려울 것이므로
몸이 힘들어도 시간당 임금이 높은 일을 해서 목표한 돈이 모아지면
한국으로 떠나기 전 주머니를 톡톡 털어 콜라 한 잔 마실 돈만 남기고
캐나다와 미국을 여행 한 후 돌아가 열심히 공부 해서 대기업에 취업할 예정이란다.
외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말랑하게 생각했던 내 예상을 깬 녀석은
IMF 때 명예퇴직 하신 아버지와 어머니께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헤쳐나갈 각오로 부모님께 비행기 표와 한 달 생활비만 받아서 왔다는 것.
어, 싸가지 있는 놈.
그러나 내가 예측한대로 몸살이 났다.
마른 몸이 더 말라 피골이 상접한 몰골에
설상가상 싼 방을 구하느라 소독도 제대로 되지 않은 집에 입주,
‘베드 버그’(침대에 기생하는 벌레)로 피부도 말이 아니었다.
반 강제로 이삿짐 일은 일단 그만두게 하고, 어학원에 등록시킨 다음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 캐나다 북쪽 사스케추완 지역의 어느 모텔에서
하우스 키퍼 아르바이트 구인광고를 보고 지원하려고 의논을 해왔다.
그 일은 특별한 자격조건과 스킬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므로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업종인 만큼, 먼저 영어 공부부터 해야 하는 이유를
조목 조목 설명했지만, 그것도 경험이기에 가고 싶다는 말에 보냈다.
모텔에서 근무가 끝나면 커뮤니티센터에서 무료 어학 공부를 병행하며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한 달 한화로 약 250만원 받는 월급과 과외 근무 수당을 합쳐
여행자금을 저축하는 중이라고 전해왔다.
어느 날은 한국에서 여자친구가 온다며
효과적인 공부 방법을 상담해 달라는 전화를 걸어왔다.
- 이놈아! 어차피 헤어질 여자한테 공 들이지 마라. 첫사랑은 헤어져야 아름다운 법이다...
경험을 빙자한 약간의 질투를 드러내며 헤어질 것을 은근 압박하면서
바쁜 시간의 짬을 내어 누나(이놈은 꼭 직함을 불렀지만 나의 강요로)로서
나름 애정을 담아 조언해 주었다.
일을 하며 캐나다를 횡단하고 있던 녀석으로부터
4개월 후 다시 캘거리로 옮겨 어느 농장에서 일을 한다는 연락이 왔다 .
필요에 의해서든, 인사치레든 자기 근황을 수시로 알리고
결정하기 전 반드시 상의를 해오는 기특한 여우스러움이 있었다.
내 조언은 조언자로서만 영향을 미칠 뿐,
결정은 이미 스스로 해 놓은 의논이란 걸 알지만
\'엄마\' 입장에서 생각하고, 누나 입장에서 야단치고,
친구처럼 이야기를 들어주며 대화를 이어왔다.
싸가지 있는 놈..
연말과 크리스마스 새해 구정 ..
특별한 날은 잊지 않고 전화를 걸어
자신을 상기시키는 통에 나도 모르게 정이 솔솔 들고 있었다.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농장 맞은편 허허 벌판에
텐트를 치고 지내던 사진 속에는
밤 사이 텐트 주변을 맴돌다 간 산짐승의 발자국이 선명해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젊을 때 겪는 고생은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과 달리
내 아들이라면 과연 저렇게 둘 수 있을까 하는 반문을 해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녀석이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결정해서 겪는 일이었기에
칭찬과 격려를 보내며 언제라도 밴쿠버로 돌아오고 싶을 때
너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음으로 위안 삼기를 바랬다.
북쪽을 돌아 돌아 지난 해 녀석이 캐나다를 왔던 그 1년을 한 달 앞 둔 지난 6월,
드디어 목적한 돈이 채워졌다며, 오카나간의 체리 농장 일을 끝으로
밴쿠버로 출발한다는 연락이 왔다.
체리를 따느라 긁혀 생채기투성이가 된 팔이 마음을 짠하게 했지만
직접 딴 체리를 들고 찾아 온 녀석의 얼굴은 생각보다 건강해 보여 다행이었다.
밴쿠버 근교여행을 하며 우리 집에서 지내고 싶다는 말에
흔쾌히 허락했고 한 달간의 동거에 들어갔다.
수 십년 남편과 둘만 살던 집안에 타인이 있다는 건 불편함도 있었지만 기쁨도 컸다.
나는 날마다 무얼 해 먹일까 궁리하며 이것 저것 만들어
아침부터 셋이 식탁에 앉아 젓가락 전쟁으로 밥 먹는 것도 재미있고
무얼 만들어도 냉장고에 쌓일 새 없이 먹어 주는 것도 신이 났다.
점심은 내가 일하는 사이 녀석이 알아서 찾아 먹고
버스를 이용해 자기 스케줄대로 밴쿠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가
내가 학교에서 돌아 올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헤어지면
그 시간에 보쌈, 수육, 닭도리탕, 생선전… 날마다 거한 저녁만찬이 이어졌다.
한 입이 무섭긴 무서웠다.
주말만 보던 시장을 두 세 번은 기본으로 다녀오기 바빴다.
녀석만 많이 먹는 게 아니라, 그간 다녀 온 캐나다 구석구석 사진을
함께 보면서 수다에 빠진 우리도 평소의 몇 배로 먹어대고 있었다.
그간 다이어트니 어쩌니 굶던 저녁 시간들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지난 주, 생선초밥을 먹고 싶었지만 사 오기도 귀찮아서 참고 있던 중
녀석이 가게 들어오는 게 보였다.
비닐 쇼핑백을 주섬주섬 펼쳐 꺼낸 두 개의 도시락에는
내가 좋아하는 참치와 연어, 새우살, 홍합 생선 초밥이 가득 들어 있다.
스티로폼 도시락이 아닌, 낯익은 락앤락 우리집 그릇인 걸로 보아 직접 만든 듯 하다.
-어, 내가 초밥 먹고 싶은데 귀찮아서 이러구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생선초밥은 어떻게 만들었니?
기특하고 고마워서 질문을 퍼부었다. 인터넷을 뒤져 레서피를 찾아 만들었단다.
어떤 날은 토스트에 계란과 소시지, 오이 피클로 만든 샌드위치를 담은 도시락을
들고 불쑥 가게로 나타나는가 하면
시키지 않아도 설거지나 청소는 자기 몫이란 생각을 하는 듯
시내 관광을 다니면서도 반드시 집안을 정리를 해 놓고 쓰레기도 말끔히 버려 놓았다.
받는 것에 익숙해 고마움을 모르는 요즘 아이들에 비하면
반찬을 만들면 양파라도 까면서 어떤 식으로든 자기가 받는 혜택을 갚으려는
참 보기 드물게 괜찮은 놈이었다.
그리고 오늘 25일 ….
드디어 미국 여행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떠나는 녀석은
밤차를 타고 이동해서, 도착하는 아침부터 어느 호수를 여행하고
다시 밤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한 달간 캐나다 동부와 미국 동부를 거쳐
하와이에서 한국으로 입국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침에 끓인 약재를 넣은 삼계탕이 남았지만 이별이 몹시 섭섭하고 허전해서
녀석이 좋아하는 삼겹살 고추장 두루치기를 하는 곁에서
손을 거들던 녀석이 뜬금없이 물었다.
“몇 사이즈 입으세요?”
“브래지어? 팬티? 아님 티셔츠?”
“네. 아무 거나요”
“어! 너 혹시 지난번 헤어 진 여자친구 옷 감춰놨어?”
내 농담에 숨 넘어 갈 듯 웃는 녀석과 부지런히 요리를 끝내고
섭섭한 마음을 감추며 더 웃고 떠들며 식탁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하던 중
녀석이 문득 생각 난 듯, 비닐 쇼핑백 하나를 남편에게 내민다.
가방 속에는 \'노스페이스\' 스포츠 커플 티 셔츠가 나란히 들어 있다.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비싼 건 왜 샀냐…… 여행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엄마들처럼 식상한 소리만 너절하게 늘어 놓고 있었다.
남은 삼겹살 두루치기를 담고, 밥을 볶아서 김밥으로 말아 지퍼락에 담는데
이별의 서운함이 훅 지나간다. 그 사이 정도 많이 들었던가 보다
계란 다섯 개를 냄비에 담아 가스 불에 얹어 두고 편지를 썼다.
“넌 참 괜찮은 놈이야…… 여자친구 생기면 즉각 보고해라……. 뭘 먹고 어디서 자든 네 나이에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며, 캐나다에서 스물 다섯 살을 살았던 이번 여행과 경험은 너의 삶에 지대한 자산으로 축적되어 살아갈 용기와 에너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곤한 잠을 청하고 있을 녀석의 환한 미래가
나의 행복했던 20대 시절과 오버 랩 되며 기분 좋게 그려 진다.
꼭 잘 살거라는 믿음과 함께.
싸가지 있는 놈….
아, 내 예언대로 여자친구랑 헤어졌다며 풀 죽어 있던 날
앞으로 수 십번 그 아픔을 겪은 후 결혼하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