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진다....
이른 봄의 저녁하늘은 순식간에 빛을 삼키고....
시커먼 먹물을 토해내듯 사위를 어둠 속으로 끌고 간다.
안톤 슈낙을 슬프게 했던 사무실에서 때 묻은 서류를 뒤적이는 처녀의 가느다란 손이 아닌...
중년 여인의 굵은 손마디가 자판 위에서 찍기를 하고 있는 3월의 쌀쌀한 초저녁.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이유를.....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까닭을....
숨김없이...남김없이 털어내 버리고 싶다.
그러다간 금방 마음을 바꾼다...털어낸 나는 조금은 시원해지겠지만 ...
듣는 이에게 있어선 또 하나의 짐을 지게 되는 일일텐데..하며.
항상 이런 식이다.
친구를 집으로 초대를 해서....뜰에까진 들여놓구...더 이상은 안돼...라며.....
들어서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늘상 그런 식의 교제인 것같다.....
마지막 그 한꺼풀을 벗지 못하는....그런 관계....
뜨겁지도....차지도 않은..... 미지근한....관계....
세상이 그런 관계를 요구하는 것일까....
내가 세상을 그런 식으로 사는 것일까...
암튼....항상 가슴 속에 묵직한 돌멩이 하나를 안고 살아가는 인생..그게 나인가 보다...
자정 무렵...집앞 도로에서 일어난 자동차 사고....
한 인생이 전락하는 순간을 본 것 같은 느낌.
우연히 사고가 난 순간을 목격하게 되었었고....처음엔 단순사고인 줄 알았었다...
전혀 사고가 일어날 건덕지가 없는 장소에서 일어난 어이없는 사고....
새하얀 재규어를 탄 30대 정도의 남자....
루트 1호선의 가드레일을 무너뜨리고...보도까지 진격한 재규어는 범퍼와 본넷....
엔진마저 상해버렸는지...아스팔트 위로 번지는 개솔린의 자욱과 역한 냄새....
경찰들의 조사과정 중에...갑자기 남자를 몇 명의 경찰이 덮치며 수갑을 채우고...몸수색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포켓 속...양말과 구두 속까지...
음주운전이 아니라.....운전자는...마약상용자였나 보다...
재규어를 모는 30대 남성...그의 사회적인 위치를 이것으로 평할 순 없겠지만....
사고 직전의 그와...직후의 그의 환경은....천국과 지옥일까....
인생....그거 별 거 아니야.....라며 살아왔었던 걸까...그 남자도....
그렇다면..그 남자는 큰 코 다치게 생겼구나...
인생은 별 것 아닌 게 아니야.....인생은.....특별하게 취급하여야 하는......단 한번의 승부극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