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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엄마의 정원...


BY *콜라* 2010-06-02

 

 

배고프고 가난했던 지난 시절 ...

엄마에게 봄은 그저 언 땅이 녹으면 그 땅에 씨앗을 뿌려

가족들이 배고픔과 가난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의 계절이었으며

 

뿌린 씨앗이 싹이 나고 꽃이 피어 달디 단 열매와 채소로 영글어

일곱 시동생과 시누이, 4남매 새끼들을 먹일 수 있는 희망의 계절

그 이상의 의미가 없었습니다.

 

봄이면 잎이 나온 나무와 만발하는 꽃은 

제각각의 향기가 있고, 스치는 꽃향에 

소스라치는 기쁨을 누리는 사람도 있다는 걸 이해하기엔

너무 야박한 세월을 살아야 했던 엄마.....

그런 엄마에게도  

기쁨이 되는 꽃은 많이 있었습니다.

 

호박꽃, 박 꽃, 밤 꽃,감 꽃, 석류꽃, ...

가지마다 팝콘처럼 매달리던 앵두꽃...

밭에 나가면 토마토 꽃, 참외 꽃, 수박 꽃, 감자 꽃.....

 

돌이켜 보면 엄마의 꽃에는 향기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던 듯 합니다.

그 열매가 내 가족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주는 기쁨 만큼...

딱 그만큼 아름다웠을 테지요.

 

얼기설기 엮어 만든 나이론 줄을 타고 작고 뾰족한 고깔 꽃을 피웠다가

솜털 가시 잔뜩 머금은 작은 결과물을 남기고 떨어지는 오이꽃도

엄마가 좋아하는 꽃 중 하나였습니다.

 

한여름, 우물 물 한 바가지 풍덩 끌어올려 

쏭쏭 채 썬 연오이 냉국 한 대접이면

홍역앓던 아이의 눈도 뜨게 하던 그 향그롭던 오이냉국때문이지요.

 

올해 일흔 여덟이 된 엄마의 마음이

꽃 향기를 느끼게 된 건 한 15년쯤 되었나 봅니다.

 

농사를 지으며 쥬단학 화장품 외판사원을 하고

군단위 부녀회장에 환갑나이까지 보험회사를 다니며

가족을 위해 여자로서의 감각들을 스스로 닫고 살았던 댓가로

일곱 시동생 시누들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고

4남매 우리는 대학을 다녔으니  

엄마의 그 고생은 질기고 험했습니다. 

 

지금쯤 넝쿨장미와 온갖 꽃들이 집을 에워싸고 있을 5월이 되면서

나는 거실 벽난로 위에서 빛바랜 사진 속 엄마의 정원을 추억합니다. 

 

언덕 위에 지어진 하얀집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펼쳐진 엄마의 정원.

아픈 허리와 다리에 침을 맞으며 가꾼 꽃들과 나무들이 숲을 이룬 그곳에는

엄마가 말리고 있을 곡식이며 콩, 나물 사이로

인근 야산에서 주워 온 도토리를 훔쳐가는 다람쥐들이 분주히 오가고 

오늘도 엄마는 꽃을 가꾸고 아버지는 잔듸밭의 풀을 뽑으며

돌을 깔자고 투덜대고 계시겠지요.  

 

대문 자리엔 철 대문 대신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버티고 있는 곁으로

형형색색의 향기와 자태를 뽐내는 이름 모를 꽃들이 가득하고

여행길에  너무 아름다워 천만원을 주고 오빠가 사왔다는 청단풍나무가

밤이면 달빛 아래 석등과 어울려 뾰족뾰족한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을 ....

 

오빠는 또 과실이 매달리지 않는 꽃들을 의미없어 하던 옛날 엄마 마음을 헤아려

몇 해전 배, 사과, 앵두, 모과, 대추 나무를 심어 

봄엔 하얀 꽃들에 취하고 가을엔 풍요로움이 넘치고 있다는 소식을들을 때마다

나는 덩달아 행복해 집니다.

 

엄마는 아직도 가난했던 그날의 배고픔을 잊지 않은 듯 

열매들을 따서 배고픈 자식들을 먹여야 하던 그때처럼

겨울이면 두터운 옷 입히고, 봄이면 막걸리를 부어주며 

지극 정성으로 과실 나무들을 돌봅니다.

 

관절염에 당뇨, 역류성 식도염까지 앓으면서도

거름주고 풀 뽑는 엄마를 우리는 말리지 않습니다.

 

그것이 엄마의 마음이고 기쁨이라면...

우릴 위한 젊은날의 엄마의 고생을 잊지 않으며

여름이면 종종 그 정원 가운데 저녁을 차려 드릴 뿐입니다.

 

개구리 울음소리와 멸종위기라는 맹꽁이들의 수다 속에서

풀향기 나는 풋나물 성찬을 마주하면   

세상 모든 게 감사해집니다.

 

부모님을 이렇게 건강하게 지켜주시는 하나님

동생들에게 모질 게 굴어도

세상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오빠의 효심.

 

내 남편을 낳아 심성곱게 길러주신 춘천의 엄니...

지인들, 후배들, 언니들......

테라스의 콩이며 도토리를 훔쳐가는 다람쥐와 청솔모까지

세상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감사해서 어쩔 줄 모르게 합니다.

 

정원너머 텃밭에 싱싱하게 자란 상추와 쑥갓에 수돗가에 키운 미나리를 뜯어

장독애에서 뭉근히 익은 엄마가 담근 된장과 호박고추장을 한 사발 퍼다가

아귀 아귀 쌈사먹던 그 맛이 퍽이나 그리운 오늘 입니다.

 

언젠가...

넝쿨 장미가 뒤덮은 담장 안으로

담쟁이 넝쿨이 병풍처럼 기어오른 데크 위에서 

장미향기와 이름모를 꽃들이 유혹하는
우리 엄마의 정원에서의 저녁~

초대하면 오실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