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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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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을 먹다


BY 카라 2010-05-10

아침밥 먹고 애들 챙겨서 부랴부랴 나가다 보면 시간이 항상 촉박하다.

주말 농장에 갈때마다 밖에서 김밥을 가게에서 샀는데 이게 너무 맛이 없다.

기껏 우엉,햄,당근,맛살이 전부인 성의없는 김밥을 아이들과 남편이 꾸역꾸역 먹고 있다.

이 한심한 김밥도 그나마 파는데가 안보여 동네를 몇바퀴를 돌다가 샀건만...

그래서 결심했다. 멋진 도시락을 싸기로...

마트에 가서 월남쌈 재료와 유부초밥 재료를 샀다.

생각해보니 울 신랑이 며칠전부터 기운이 없다.

본인 말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밤잠이 많아지고 이제 새벽잠이 없다고 한다.

나보다 나이도 적으면서 벌써 노화가 진행되는 건가?

잡채니 불고기니 웬만한 한식은 다 한다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아직 백숙이나 삼계탕을 끓여본 적이 없네. 용기를 내어 닭고기 코너까지 들렀다.

닭을 뭘 사야 할지 몰라서 제일 비싼걸로 골랐다. 황토닭이래나 뭐래나...

마늘을 포함하여 삼계탕 재료를 사고 나니 2만원이다.

헉! 차라리 식당에서 사먹는게 낫지 않을까?

아니야, 그래도 끓이는 정성이 있는데...잘한거야 잘했어.


아침에 도시락 준비는 만만한 줄 알았다.

월남쌈이 너무 얇아서 자꾸 찢어진다. 새우,닭안심살 데치고 오이채썰고 깻잎썰고 무순씻고 맛살 찢고 하다 보니 벌써 1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애들 주먹밥 만들고 유부초밥도 만들어야 되는데...아! 과일도 잘라야지..커피물도 끓여야 하는데...딸래미 약도 타야 하고 바쁘다 바빠..


결국 머리도 못감고 야구모자 눌러쓰고 농장으로 향했다.

가다 보니 이미 오후가 훌쩍 넘어버려 배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자기야, 아무래도 안되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먹고 하자”

우린 도착하자마자 돗자리를 깔았다.

도시락 뚜껑을 열고 사진촬영 멋지게 한번 해주고 막 먹으려는데 어디선가 풍기는 고소한 냄새~

바로 옆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있는 것이다.

그 냄새가 얼마나 고소한지 내가 싸 온 도시락은 그냥 밋밋한 밥이 되어버렸다.

하필이면 바로 옆에서 고기를 구워먹을 건 뭐람

우리도 언젠가는 우리가 키운 상추와 깻잎으로 고기를 구워먹을 계획은 있었다.

하지만, 모종심고 씨뿌린지 얼마됐다고...적어도 이달 하순은 되어야 하는데...

그래도 참으면서 먹고 있는데 옆집 사람들 갈수록 가관이다.

이젠 고기 구워먹은 후라이팬에 밥을 볶아 먹더니 마침내 냄비에다 라면까지 끓여 드신다.

음...애들 아빠는 내색않고 먹지만 솔직히 고기가 너무 먹고 싶다~

 

우리 밭에 가보니 지난번에 심은 상추와 쑷갓이 무척 무성하다.

감자는 5개 심었는데 가운데 2개가 소식이 없다. 아무래도 썩은 모양이다.

열무와 얼갈이도 많이 올라왔다. 깻잎이 지난주만 해도 없었는데 오늘 보니 싹이 조금씩 보인다.

오늘은 토마토와 고추,고구마를 심었다.

부디 올 여름 장마가 다 휩쓸어 가지 않기를 기도하며...

또한, 이 야채들이 무사히 자라 고기와 함께 우리의 입속으로 들어가기를 학수고대하며...

그때는 친정부모님 모시고 함께 와야겠다.

애들은 흙만져보는 것이 마냥 신기한 듯 잘도 논다.

아들 녀석은 갈퀴로 땅을 긁고 딸아이는 삽을 든다.

가끔 남의 밭을 무단횡단할땐 잡으러 다니기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땅을 밟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주말농장 분양받길 잘했다 싶다.


그리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삼계탕 도전!

30분이면 될줄 알았다. 닭속을 찹쌀,마늘,삼이랑 기타 한양재 넣고 물붓고 끓였는데 닭이 반만 잠겨있길래 뒤집었는데 잘 안된다.

다 익은 것 같아서 자 먹자!하고 닭다리를 뜯었는데 피가 고여있다.

이럴수가!! 다시 올려놓고 보니 1시간이 흘러버렸다.

기다리던 아이들은 짠 김치와 동치미만 먹어댄다.

이마에서 땀이 흐른다. 심지어 찹쌀은 익지도 않았다. 결국 남편이 닭 다 뜯어서 발라냈다.

닭 속의 찹쌀을 풀어서 다시 끓였더니 걸쭉하게 잘 퍼졌다.

무려 1시간 20분을 끓인 닭죽.

국물이 졸을대로 졸아서 진국이 되어버려 별다른 간을 안해도 정말 맛있었다.

“처음치곤 잘 했지? 자기야 많이 먹어”

“그래, 고마워. 정말 닭이 맛있네..오래 걸려서 그렇지. 잘했네”

“그럼..닭이 얼마짜린데. 최고로 비싼걸로 샀다니깐”


처음할 때는 오래 걸렸지만 자주 하다보면 시간은 곧 단축되겠지.

힘들긴 해도 마음만은 뿌듯한 하루다.

나의 정성으로 분명 가족들 몸에 원기가 돌 것이라 굳게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