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한 사발
다섯 살 내기 손녀가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효자손을 건네면서 제 엄마를 때리란다. 이유인즉 며느리가 친구들과 어울려서 호프집에서 맥주를 먹은 것이 손녀의 눈에는 곱게 보이질 안했는지 며칠 전 일을 할아버지께 고자질해 며느리를 황당하게 했다.
아버지께서 술을 전혀 잡수시질 안았고 남편 또한 술을 못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별로 술자리를 자주하는 편이 아니라 손녀 또한 제 아버지의 술 취한 모습을 별로 보지를 않아서 그런지 처음 보는 제 엄마 술 마시는 시늉을 흉내 내면서 마뜩잖은 표현을 해 한바탕 웃었다.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젊은 새댁이 술집에 드나드는 일은 6~70년대는 있을 수 없었다. 요즈음은 여자들도 으레 소주 한 잔을 주문하는 모임도 있다.
옛 날 이야기다. 70년대 초 둘째를 임신 했을 때 불볕더위가 곤혹스럽기만 한 토요일 퇴근길, 집 근처 골목에 접어들자 평소 예사로이 지나쳤던 어설프게 쓴 막걸리 간판이 눈에 띄니 느닷없이 시원한 막걸리가 먹고 싶었다. 함께 한 친구도 예정일이 비슷했다. 입덧이 막 지난 시기라 음식이 당기긴 했으나 평소 먹지도 않던 막걸리 생각이 간절하다고 친구를 쳐다보고 말하니 친구도 그렇다고 했다. 빨리 집에가 할 일도 많지만 출출한 뱃속에 유혹은 술집을 향해 눈이 머무니 발걸음은 더욱 터덜거렸다.
어떻게 하면 저 시원한 막걸리를 한 사발 마실 수 있을까? 가던 길을 도로 걸어왔다. 병이 날 정도로 먹고 싶었다고나 할까. 막걸리 집이라야 요즈음처럼 분위기 있는 까페나 호프집이 아니다. 골목 길가 집에 대나무 발을 드리워져 방안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려 몇 명의 남정네가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주모는 툇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아주머니께 무어라고 하면서 술을 달라고 할까? 물 좀 달라고 하자하고는 서로 먼저 말하라고 실랑이를 하다가 먼저 말을 꺼낸 내가 다가가 모깃소리만큼 가는 목소리로
“물 좀 주이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물 없는데.”
“그라마, 저 술이라도 한 사발 주이소.”라고 했다. 그 말을 기다렸던 것 같이 술을 한 사발 가득 퍼 주었다. 둘이서 선채로 허겁지겁 마시고는 값을 물으니 그냥 가라고 했다. 도둑질 하다 들킨 사람처럼 고맙다고 옳게 인사도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얼른 골목을 빠져 나와 골목 끝에서 둘이서 마주보고 앉아 한참동안 눈물이 나올 정도로 깔깔거리고 웃었다.
산전수전을 겪고 살아 온 그 분은 그 골목길로 항상 출퇴근하는 우리가 술이 먹고 싶은 임산부인 줄을 눈치를 채고 물을 주지 않고 인심을 가득담은 술을 한 사발씩 주었으리라 생각된다. 한 푼이 무서운 시절이었다. 상냥하지도 않는 눈빛과 무뚝뚝한 목소리로 “그냥가라카이” 그 투박한 정겨움은 임신 때 먹고 싶은 걸 못 먹으면 뱃속애기가 눈이 작아진다는 속설을 믿어서 우리에게 적선을 해 주신건지? 아니면 해산 경험이 있어 우리처럼 간절히 먹고 싶었던 음식을 못 잡수셔서 당신의 과거 속에 우리가 비춰져 인심을 쓰신 건가?
어떻던 우리는 그 날 그 어떠한 곳에서의 술맛보다 시원하고 달콤함을 가슴으로 넘겼다. 그 친구와는 아직도 모임을 가진다. 모임에서 만나면 동갑내기인 아이들 안부를 물으면서 임신 중 엄마들이 술 한 사발을 가득 먹었으니 아이들도 잘 먹는지 중년이 된 아들 근황을 서로 묻고는 웃는다.
꼬불꼬불 골목길이 유난히도 많았던 동네, 한 대문 안에 보통 너 댓 가구가 살았던 시절, 그 속에서 젊음의 꿈을 키웠던 동네였다. 사글세에서 전세, 전세에서 내 집 마련하기 까지는 내 젊음이 이글거리던 때다.
차를 타고 그 동네를 지나다보면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그 동네도 빌딩숲으로 매워져있어 어디쯤이 내가 살던 곳이고 술집인지 구분이 잘 못할 정도로 변해져 있었다. 그 동네도 어느 쯤엔가 고급 까페나 호프집이 있으리라 믿는다. 나도 이제 그런 까페에 갈 여유로움도 있다. 추억을 상기시키기 위해 그 동네에 가서 그 친구와 맥주나 와인을 마신들 그 옛날 그 막걸리 맛이 날까?
엄마가 술을 먹었다고 할아버지께 고자질을 하는 손녀가 밉지가 않다. 좀 더 커면 할미도 엄마보다 더 젊었을 때 길가에서서 막걸리를 마신 후 너 아버지를 낳았다는 얘기해 줄 날을 글로서 미리 써 본다. 훗날 할머니를 상상하는 손녀가 엄마도 먹고 싶은 맥주를 마시고 저 같은 예쁜 딸을 낳았다고 이해할 날이 오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