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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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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떡해~~치매 할머니와 겨루기 중.


BY 그대향기 2010-04-07

 

 

난 요즘 웃어도 안되고 짜증내도 안되고.

웃으면 비웃는다고 그러시고 조금이라도 짜증을 내면 자기를 왕따 시킨다고 서운하다시고.

똑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 하시니 귀담아 안 들어 드리면 귓등으로 듣는다고 서운하다시고.

그래서 빙긋이 웃기만 하는데 그러면 또 제발저려서 웃는다고 그러시니 참.......

왕할머니 한분이 요즘 아주 신경이 극도로 예민하셔서 날 들들들...볶아대신다.

 

올해 96세 왕할머니.

그저께 현풍에 가서 생신상 거~하게 받으시고

기분이 한껏 좋아지셔서 왔는데 크크크크.....

날더러 자기 의치연고며 보청기 밧데리, 분첩을 가져갔다며

날만 새면  조용히 찾아오셔서 내 놓으시란다.

 

너 알고 나만 알고 있을테니 그만 돌려 달라고.

눈 뜬 시간에는 늘 보따리를 싸고 계시고

하루에도 수십번 자기 방 문을 잠궈놓고 열쇠 없어졌다고 난리 치시고

치약이며 얼굴 크림을 내가 손가락으로 찍어 간다고 그러시는데

그 때 마다 웃다가 그냥 지나쳐 오거나 저 그런거 아직은 안 필요한대요~~

아무리 타 일러 드려도 막무가내시다.

 

오늘 밤에도 김밥 한줄을 다 드셔 놓고도

배 고프시다고 그러시고 언제 누가 자기 방에 들어와서 커피 다 퍼 갔다니 참.

남을 믿지 못하셔서 방에는 보따리가 여러개 동글동글 싸 매져 있고

그 보따리도 수시로 이동을 시키신다.

현금은 팬티 속에 안 주머니를 캥거루 주머니처럼 만들어서 넣고 주무시고도

하루에도 수십번 세고 세고 또 세 보신다.

돈 귀퉁이가 다 닳도록....

 

4~5년 전에 94세로 돌아가신 할머니도 치매가 있으셔서

없던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영화처럼 혼자서 찍어대시더니

이 할머니는 한 술 더 떠서 아주 사람을 따라다니시며 달라고만 하신다.

보청기 밧데리며 의치에 바르는 연고가 내게 뭔 소용이 있을꺼나?

보따리에 넣고 싸 두시고는 눈에 안보이면 없어졌다고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으시고

누구든지 자기 방 앞을 스치기만 해도 혹시나?????

의심하는 마음이 눈덩이가 되고 확신이 되고 나중에는 범인이 되어야만 한다.

 

치매는 중풍과 함께 죽을 때까지 가장 오지 말아야 할 고약한 병이다.

가족도 몰라보고 품위도 다 잃어버리고 철없는 어린애보다 더 힘들게 한다.

십년이 넘도록 하루세끼 밥 해 드리고 목욕가면 등 밀어 드린 사람인데

어느 날 부턴가 할머니는 이방 저방 할머니들을 의심하다가 이젠 나까지..ㅎㅎㅎㅎ

기도시간이나 다른 시간들을 잘 기억하시다가 이젠 주일도 몰라서 우두망찰....

소화기능은 아주 좋으셔서 뭘 드셔도 거뜬하시다.

특히 쇠고기불고기는 너무너무 잘 드시고 많이 드신다.

나물반찬은 질기다고 하시다가 쇠고기는 군말 없이 잘 드신다.

 

그렇다고 매일 괴기반찬을 해 드릴순 없어서 이것 저것 섞어서 해 드리면

좋아하는 반찬과 싫어하는 반찬이 확연하셔서 안면근육이 움직임을 달리하신다.

그래도 작은 공기 하나정도는 가뿐하게 비우시니 백수는 족히 하실 것 같은데

이 상태가 장기전으로 들어간다면 그 땐  나 어떡해~~~

벌써 여러 할머니들의 치매현상을 봐 왔지만 이 할머니처럼 심하진 않으셨는데

내장기관이 튼튼하시니 아직 더 오래오래 사실 것 같고 머릿속 단백질은 자꾸 빠져나가서

치매는 가속패달을 밟으실거고 할머니의  기억을 되돌려 줄 비책은 없을까?

아직은 시설에 보내드릴만큼 심각하지는 않으시는데 좀 더 지켜보다가

큰 문제를 더 만드신다면 어떤 방법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할머니는 피붙이가 따로 없으시다.

수양딸이 한분 계시긴 해도 건강할 때도 아니고 이 형편에 할머니를 모셔 가기도 그렇다.

우리집에서 더 모시다가 다른 발전이 없으시면 끝까지 우리가 모셨으면 한다.

참 많은 세월을  함께 하신 할머닌데 낯선 사람들과 마지막을 보내게 해 드리고 싶진 않다.

막무가내로 떼를 쓰시든 보따리를 수백더미 싸시든 혼자서 하시는 일이니 어쩌겠는가?

머리가 아픈 몸이시라 여기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데.

개인위생상태는 아주 양호하시고 깔끔하셔서 목욕가시면 나보다 두서너배는 더 오래 씻으신다.

뽄쟁이시라 옷도 많으시고 어딜 가려고 나서면 거울 앞에서 단독으로 패션쇼를 하시다가 끝에 나오신다.

얼굴에 분도 뽀~~얗게 바르시고 입술연지도 빨갛게 바르신 모습이 어찌나 귀여우신지..ㅎ.ㅎㅎㅎ

오늘도 몇번이나 내게 찾아 오셔서 내 놓으라고 애원하시는 할머니의 눈에는

천진난만..순진무구한 빛이 가득했으니 어쩌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