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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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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울고 오늘은 웃고...


BY 그대향기 2010-03-18

 

 

이것이 인생인가보다.

슬퍼도 살아야하고 기뻐도 슬픔은 있으니...

 

장례를 치른다고 병원으로 진동 장지로 동분서주 하던 어제와

400 명 손님 치른다고 주방을 미친년 널 뛰듯이 뛰어다니는 오늘.

어제는 우울모드였고 오늘은 매우 맑음모드로 지내야했다.

 

할머니의 사망소식을 모르는 손님들이 한달 전에 예약해 뒀던 모임을 오늘 낮 시간에 왔다.

어제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 온 시간이 늦은 오후.

큰 시장인 마산에 갈 시간이 없었기에 전화로 부식을 예약하고

오늘 아침 일찍 갖다 줄 것을 신신당부하기까지.

 

몸은 사흘을 쫒아다니느라 피곤했지만 그래도 한달 전 예약손님이라   취소도 어렵고

아침을 일찍 먹고 하나마나한 분단장으로 조금 생기를 불어 넣었다.

5분 화장비법...모든 화장품을 한꺼번에 믹서해서 쳐 바르기.ㅋㅋㅋㅋ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안된다고 놀려대는 남편이지만

그래도 호박에 그은 줄이라도 좀 나아보인다며 피식~~웃는다.

 

남아계시는 할머니들 아침을 드리고 곧장 넓은 주방으로 이동.

배달된 숙주 두시루에 미나리 열단 그리고 산나물 10 kg, 배추속 20kg,

노지 햇부추 5단,봄동 한상자, 무 두 상자, 대파 5단, 돼지고기 15kg, 묵은지 엄청....

 

씻고 다듬고 썰고 펄펄 끓는 물에 나물 데치기

데친 나물 헹궈서 소쿠리에 물 빼고 잘게 썰어서 무치기.

400 인분 솥에 새우 넣은 무국 끓이기 위한 멸치와 다시마 육수 내기.

 

둔한 머릿속으로 빨리 되는 일부터 잽싸게 해 치우는 중간중간에 일손 거들어 주시는

할머니들 실수 안 하시게 잔소리해대기~`ㅎㅎㅎ

1박을 하는 손님이면 도우미들을 무급 봉사자들로 충당하는데

오늘은 당일치기 점심 한끼라 나하고 여직원(그래도 60 세나 된 할머니)한명하고  할머니 세분이서 했다.

 

그러자니 자연히 내 말은 빨라지고 언성은 높아만 간다.

\"숙주는 시루를 거꾸로 엎어서  툴툴툴...털어 주시고

 양파(20kg)는 반 자루만 다듬고요~~배추는 어슷썰기하고 식판은 400 개 조금 더 내시고.

 아니아니....대파는  어슷썰기 반..동동동으로 반만 썰어 주세요.

 깨소금은 너무 보드랍게 빻지 마시고 알갱이가 대충 보이게 빻아주세요~~\"

\"식탁은 면행주 여러장 들고 가셔서 교체해 가면서 닦아 주세요~`

 같은 걸로 닦아 두면 나중에 마르고 나면 허~~옇게 줄 생깁니다~~\"

\"아이고~~할매요~~무거운 거는 그냥 놔 두세요.

 제가 다 안아 갈테니 앉아서 하시는 일만 해 주세요.

 그러다 허리라도 다치시면 우짤라꼬...

 힘~~!! 하면 여기있잖아요~`ㅎㅎㅎㅎㅎ\"

\"난로에 불 피워 뒀으니까 손 시리면 불쬐고 하시고요...\"

\"날씨가 아직 추우니까 등 시려우면 방에 조끼 있으니 걸치고 하세요.\"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칭찬과 독려.............

 

 

작은 눈으로 넓은 주방에 흩어져서 일들 하시는 할머니들과 여직원을 두리번거리며 간섭을 해야만 했다.

까딱 시간을 놓치면 전혀 엉뚱하게 다듬어 놓으시니 펄~펄~끓는 물에 나물을 데치면서도

내 눈과 입은 쉴새가 없었다.

쌀 60kg 을 씻어 밥을 하고 국이며 묵은지 찜을 앉혀 놓고는 주방을 빙빙 돌면서 식재료를 안아다가

나물을 무치고 겉절이 할 배추 다듬고 양념 버무리고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상모까지 돌릴 판이다.ㅎㅎ

가스 불 앞에서 나물을 데치다가.. 식기세척기에 전원 켜고..밥 솥에 가스 넣고..된장통에서 된장 퍼 오고

수돗물 틀어 놓은 거 넘치길레 물 잠그고.. 나물 데친 물 바닥에 쏟아 버리고.. 헹굼물 받고...

후아~후아~

바깥날씨는 꽃샘 추위로 쌀쌀하기만 한데 주방 안 내 몸은 홑바진데도 칭~칭~감기고

콧등에는 땀이 송글송글...

 

봉사자들 없이 할머니들과 하는 점심 한끼는 거의 전쟁이다.

손은 느리지요...말귀는 어두우시지요...제 시간에 안 보면 언제 식자재를 망쳐 놓으실지...

상추를 씻어 달라고 하면 너무 깔끔하게 씻으신다는게 아예 곤죽을 만들어 주시고

쇠고기 국거리로 무를 썰어 달라고 하면 깍두기거리로 만들어 주기도 하신다.

아내가 워낙에 동동거리고 있으니 남편도 지나가다가 칼잡이로 자리 잡았다.

다듬어 놓은 배추속을 겉절이하기 좋도록 어섯썰기를 하는데 어찌나 칼질이 어설픈지....

그 바쁜 중에도 얼마 전에 끝난 파스타라는 드라마에서 여 주인공이 하던 주방장에 대한 호칭을 장난삼아 외친다.

 \"예~쉪~~!!\"

 \"예~쉪~~!!\"

을 외치면서 칼놀이를 하듯이 도마 위에서 현란하나 걱정스런  칼질을 한다.

쉪은 무슨...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우리 할머니들은 그 연세에 다른 할머니들보다 일을 잘 하신다.

워낙에 큰 살림들을 많이 해 보신 탓도 있지만 우리집에 오셔서 하도 잔치를 자주 해대니

이젠 전문 일꾼들이 다 되신게지.ㅎㅎㅎ

몸 성한 할머니들은 어떻게든 주방 일손을 거들어 주시려고 일거리를 달라고 주방에 오신다.

오늘같이 봉사자들이 없는 날에는 더더욱 큰 일꾼들이시지만

봉사자들이 오는 날에도 멸치가르기며 파 다듬기 상추 씻기 같은 작은 일은 하시려 한다.

 

치매도 예방할 겸 소일거리는 심심하지도 않고 보람도 있는 일이기에 일부러 일을 만들 필요는 없지만

하실만 한 일은 같이 모여 앉아서 옛날 이야기도 하시면서 공동작업을 하기도 하신다.

새알심 비비기..만두빚기..잔파 다듬기..빨래 정리하시기 등.

할머니들께서 큰 힘 안 들이고 앉아서 하실만 한 일은 교제의 시간도 가지실 겸 거실 바닥에 둘러 앉아 하신다.

싱거운 소리는 항상 내 차지고 재미있어 하면서 웃으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일부러 암기했다가 해 드린다.

야시런 이야기도 곧잘 해 드리는데 그러면 들으시고 대 놓고 웃진 못하시고 킥킥..소리 죽여 웃으신다.

그래도 하지 말란 말씀은 안하신다. 그저 웃으시지......ㅎㅎㅎ

다 아시고 이해하시니까 웃으시겠지?ㅋㅋㅋㅋ

순진한 할머니들 인터넷에 떠도는 야한 이야기로 귀 다 버려 놓은 장본인이 바로 나다.ㅋㅋㅋㅋ

 

 

어제는 가신 할머니가 그리워서 울었고 오늘은 그 사실을 모르는 손님들 앞이라 밝게 웃고.

바쁘고 사람들이 많아야 신이나고 즐거운 내가 어제까지는 기분이 좀 그랬지만

오늘은 많은 손님들로 북적북적하니 몸은 어제의 피곤함으로 무거워도 얼굴엔 웃음 가득~

주방장 얼굴 한번 보고 가겠다고 일부러 주방까지 와서 물 뭍은 손이라도 개의치 않으시고 잡아 주시는

사랑으로 나를 기억 해 주시는 분들이 있는 한 난 이곳이 너무 행복하다.

 

막상 초상이 나면 멀리 있는 상주보다 더 바쁜 사람이 남편이다.

병원에 해야하는 연락이며 입원 그리고 장례식 전반에 걸쳐 순서지며 광고와 안내

매장지에 작업지시를 내리는 일에서 마지막 안장까지...남편이 뛰어다니면서 해야한다.

상주는 장례식장에 와서 이것저것 의논만 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분들은 가족이지만 오래 떨어져 살았고 우리가 보호자로 있기도 하지만 남편은 담당 복지사이기도 하다.

급한 일이 발생하면 언제나 바람개비처럼 팔랑팔랑 잘도 돌아가고 움직인다.

순식간에 병원과 우리 집 그리고 관공서를  오가며 일을 보느라 때로는 끼니 때도 놓치기 일쑤다. 

 

이번에도 그랬지만 가족들이 멀리 있으면 더 그렇다.

당장 급하게 처리해야하는 일들이 많다보니 남편은 밤 잠까지 설치면서 할머니들의 마지막을 담당한다.

그러니 할머니들은 남편하고 대동해서 면사무소나 농협에 볼일을 보러 나가시면 아예 아들이라고 하신다.

차로 모시고 나가야 하고 손 잡아드리고 일일이 창구마다 다녀야 하니 아들이냐고 그러면 예~~~

대답도 쉽고 망설임도 없다.

평소에는 다소 급한 성격이 나올 때도 있지만 할머니들과 대동하는 일에는 언제나 신중하고 느림이 몸에 뱄다.

걸음이 온전치 못하시고 귀까지 잡수신 할머니들이라 늘 큰소리로 일러 드려야하고 두세번 반복은 기본이다.

 

우리집 할머니들한테 남편은 아들이고  난 며느리요 딸이다.

할머니들의 작은 바램에 실망스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우리 부부는 건강해야만 한다.

너그럽지 못한 마음을 늘 다독여야만 한다.

사랑이 식지 않도록 언제나 사랑을 충전해야만 한다.

언제 어느 날 있을지 모를 위급상황에 긴장으로 무장하고 있어야만 한다.

겉으로는 언제나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수면 아래에 있을지도 모를 눈물의 쓰나미를 이겨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