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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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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니! 싸랑해요! ]-남자를 납치 하다-


BY *콜라* 2010-03-15

엄니~ 막내 메누리! 히히~

아이고~ 별일 읍냐? 장사는 잘 되고? 욕 본다 우리 메누리~

맨날 띵가띵가 하믄서 노는데 뭘~ 장사 무지 잼 나요.

그래, 그래 고생 일텐데 우리 막내 메누리 사랑한다…”

나두 나두 엄니 보고 시포~ ~

 

백내장 진단을 받은 엄니 수술 날짜가 잡혔는지 궁금해 전화를 걸었더니

일을 하시다가 얼마나 급히 달려왔으면

숨이 턱까지 차 오른 목소리로 사랑한다고 고백하신다.

 

나는 엄니께 전화 할 땐 거의 반말을 한다.

그게 내 식의 어리광이고 애정표현이고보니

엄니가 보고 싶으면 반말은 또 잘라져서 \'쪽 말\'로 이어진다.

 

\"엄니, 나 엄니 꼬추 먹고 싶으~ 잉\"

\"그래 안그래도 내가 마니 마니 쪄 놨다. 막내 메누리 튀겨 줄라구\"

\"하!! 증말 꼬추 튀김은 세상에서 울 엄니 꼬추튀김이 젤 맛잇는 거 같으~\"

 

며느리 좋아하는 꼬추튀김 해주시려고, 관절염으로 아픈 무릎 참으며

온의동 고갯길을 두어시간 걸어서 다녀오셨을 생각에 통화하면서 목이 메인다.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엄니는 며느리를 꼭 메누리라 발음하셔서

이젠 그 어감이 며느리보다 더 정겨워진지 햇수로 15년 째다.

 

아버님 연세 쉰 다섯, 어머님 마흔 중반되어 늦둥이 아들 낳아

남세 스러 대 놓고 젖 먹이기도 부끄러워

안방에서 가만히 젖 물리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장가만 보내고 죽었으면 .. 하셨다는 어머니.

 

칠칠맞은 여편네가 나이들어 애 낳아

지저분하게 키운다는 소리 들을까봐 흰 옷만 입혀 키우고

대학생이 될 때까지 사고날까 걱정돼 멀리 여행 한 번 보내지 못하시며

애지중지 키운 그 아들을 내게 주신 엄니께

나는 며느리고 막내 딸이고 때론 친구이기도 하다.

 

우리가 순리대로 자식 낳았으면 머지 않아 증손주 보셨을텐데

초등학생부터 막내 아들과 비슷한 나이대의 손자 손녀가 도합 열 넷.

아이 낳아야 하는 부담감 없이 공부하네 어쩌네 차일피일 미루다가

슬그머니 을 쳐버린 아들 내외에게 서운함이 있을 법 하지만

엄니는 그에 관해 단 한번 라고 물으신 적이 없다.

 

매사 며느리를 배려하고 사랑으로 대하는 그런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을 메누리가 있을까.

 

내 주변에 얼쩡대던 남자 여자 후배, 친구들을

미팅, 소개팅 주선해 눈 맞아 결혼한 후배들이 다섯 쌍. 

후배들 사이에서 인기 \'뚜\'였던 내가 어느날 똑똑하고 샤프한 인간들 ‘질렸다

강원도 산골 선생질이 천직이라는 남자와 결혼선언하자

선배, 친구, 후배, 심지어 친 언니조차 우리가 결혼해서 짧으면 1, 길면 3년...

아니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고 장담했었다.

그들 중 열댓명이 손가락에 장 지짐 하기 싫어 도망갔대나 어쨌대나.  

 

엉겁결에 첫 인사를 가게 된 시댁에서 예의상 밥 먹고 가라는 말에

\'사 먹는 밥 질렸다바로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는 아들의 여자가

당돌하고 얄미웠을 수도 있었지만

엄니가 더 수줍어 하시며 크게 말도 붙이지 못하셨다.

 

대문 앞에서 각자 차를 타고 서울로 3.8선방향으로 차머리 돌리는 걸 보신 엄니

골목 지나 바로 둘이 합류한 걸 모르시고 아들에게 전화하셔서 숨가쁘게 물으셨다. 

 

! 어떻게 갸를 만났냐

왜요 엄마! 맘에 안 들었어?

그게 아니라 보통 애가 아니더라…”

“ 강해보여도 착해팔뚝도 굵잖아.

 

성격도 아니고, 인상도 아닌 팔뚝 굵은 게 가산점이 되는 줄 미처 몰랐다.  ㅋㅋ

이유인즉, 자그마한 체구에도 떡 쌀 몇 말도 번쩍이고 방앗간을 다니며, 집안 대소사 척척 해내는 황해도 출신 엄니 눈엔, 압력 밥솥 하나도 들기 힘겨워 하는 갸냘픈 코스모스형 맏며느리 체력이 약간의 상처가 되셨던지 막내 며느리는 팔뚝 굵은 튼튼한 여자 구해오라는 사전 지시가 있었다는 이야기. 그러나 진정한 히트는 그 다음 대목이다.

 

핸드폰 받는 아들 귀 옆에 또 하나의 여우 귀가 머리 맞댄 채 엿듣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르시던 엄니

 

“야아! 갸가 너 납치 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  

 

납치는 납치다.

평생 누군가와 의견 충돌, 눈길 한 번 흘긴 적 없는 남자가  

결혼 해서 감당할 자신 없다며 사랑하지만 결혼은 할 수 없다고 

나를 거부하던 상황이었다.

 

용기 있는 자 만이 사랑을 쟁취하는 법.

체면은 순간이고 행복은 영원한 것, 후회는 놓친 사람이 하는 바보 짓이다.

나는 연극 배우가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착한 여자 인 척

세상에서 가장 남자를 잘 이해해 줄 여자 인 척

세상에서 가장 인내심 많고 포용력이 드넓은 여자 인 척

세상에서 가장 남편 말에 고분고분 할 여자 인 척

지성적인 여자보다 지혜로운 여자 인 척

 

그렇게 꼬드기고 달래고 협박해 결혼 승낙(?)을 받았으니 

물리적인 납치는 아니지만 납치라 할 만 했다. 

 

1부 끝

 

지금 여긴 일요일 새벽 2시네요. 서머타임이 시작되어 한 시간 손해이기도 하고

내일을 위해 자자고 통 사정을 하는 룸메이트가 있어서

내일 이어서 할게요~

 

굿 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