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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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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


BY 그대향기 2010-03-01

 

 

봄비가 아니라 이른 장마비 같다.

간 밤부터 내리던 비는 오늘도 온 종일 올 기세다.

새벽녘에 설핏 들리는 낙숫물소리에 아..오늘도 비 오는 날이네~

아차차차...

어제 오후에 세탁기를 돌려 쇼파 천이며 베갯닢을 옥상에 널어 뒀던 걸

걷지 않은게 생각나 아깝지만 세탁을 다시하게 생겼다.

저녁무렵엔 걷어야지  했는데 깜박하고 나중 걷지 하다가 그만 놓치고 말았다.

창밖으로  내다보니 비를 흠뻑 맞고 후줄근하게 늘어져있다.

거실에 널어두자니 지저분해서 옥상에 내다 널었더니....

단독주택이라 아파트처럼 앞뒤 베란다가 없으니 궂은 날에는 거실에다 널게된다.

마르기도 빨리 마르고 나중에 깜박 잊고 안 걷는 일도 없어서 거실에 자주 널어 두는데

문제는 오늘 아침에 낮은 목소리로 남편이 타이르는 거다.

 

\"빨래며 다른 물건들이 제자리에 안 있으니 혼란스럽지 않아?

 청소며 정리가 잘 된집을 100 점으로 볼 때 우리집은 몇점으로 보여?\"

순간 뜨금한 마음으로 뜸을 좀 들이다가

\"응......한 60~70 점 정도?\"

내가 말한 점수가 너무 높다고 생각하는지 피식 웃던 남편이

\"그...으...래...? 상당히 후하네??? 그 정도로는 부족해.

 만점 100 점은 안되더라도 근접하게는 나오게 정리 좀 하고 살자구.

 뭐 내가 하도 어지럽게 사니까 특별히 뭐라하지는 않겠는데

 조금만 더 정리하고 살았으면 참 좋겠어서..ㅎㅎㅎㅎ\"

 

뭐야?

그러니까 자기가 어지럽혀 두는데 정리는 내가 하라고?

거실 차탁 위에 있는 서류 뭉치며 볼펜 몇자루 쇼파 위에 벗어둔 옷 두벌하며

주방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 앞의 양말짝이며 모자에 후레쉬 공구까지....

다 자기가 함부로 놔 둔 물건들이구만 나더러 치우고 정리하라고라?

시간만 나면 양말 찾아 삼만리는 누가 하는데?

샤워하고 벗은 속옷을 그냥 세탁기에 넣어 두면 좀 좋아?

맨날 팬티는 요쪽 런닝셔츠는 조쪽 타월은 또.....

약을 먹고 난 빈 봉투는 냉온수기 옆에 나뒹굴고 컵은 컵대로 여기 하나 저~~어~~기 하나.

그냥 약 먹고 빈 봉투를 바로 옆 쓰레기통에 넣어두면 일부러 안 치우겠구만

일일이 주워서 버려야하고 컵도 하루에 한번씩은 모아야 할 판이다.

자릿끼로 하나 컴퓨터 옆에 하나 서재 책상에 두어개....

 

뭐 그렇다고 내가 엄청 깔끔한 아내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집이 좀 넓은 것도 있지만 사무실 일을 집에서 같이 보다보니 이런저런 서류들이 꽤 많다.

사무실이 2개나 건물마다 있어도 굳이 집에서 사무를 보려는 남편.

그런데 그 서류들이 어디에 소용되는지 잘 모르는 나는 버려야 할지? 놔ㅡ 둬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으니 한쪽에 수북하게 쌓아두는데 어쩌다가 뭘 찾다가 없으면

나더러 다 찾아 오라고 난리 아닌 난리고 자기한테 필요한 서류조차 방방 뛰면서 찾는다.

수시로 냉장고 문 열어서 간식거리 찾고 없으면 집에 뭘 먹을게 없대고...

떡이며 과일 종류는 잘 먹지도 않으면서 떡을 냉동고에 넣어두고 쉬는날 밥 대신 먹는 내게

궁상떨지 말고 그냥 같이 밥 먹자니 참....그럼  언제 떡을 먹냐고~~

밥은 하루 세끼 꼬박꼬박 먹지요 간식을 따로 안하려니 쉬는날 먹자고 넣어 둘 밖에.

냉동고에 뭘 저렇게 뒀냐고 은근히 낮으면서 위압적으로 한마디 하는데

우~~같이 소리 지르면 안될 것 같기에 알아서 치울께..나중에.....끙.....

 

그러고 말았는데 가만히 있자니 화가 좀 난다.

나는 자기가 어절러 놓고 함부로 놔 둔 모든 물건들을 씻고 닦고 치워 두는데

맨날 날더러 안 치운다고 협박이나 주고  제자리에 두는 역사가 없는 사람이 말이야.

그렇다고 내가 엄청 부지런하고 잘 치우는 여자는 아니다.

뭘 버리는 걸 못하는 성격이라 여기저기 콕콕 처 박아두는 걸 좋아한다.

언제 그 물건이 쓰일지 몰라서 못 버리고 껴 안고 살다보니 뭐가뭐가 너무 많긴하다.

포장지 한장 선물 받은 박스 하나 못버리고 안고 살려니 그 집이 엄청나긴 하다.

막상 버리려고 내 놓다가도 또 도로 집어 넣고 쌓아두는 성격.

내가 없을 때 누가 좀 와서 다 버려 줬으면....

내가 있고는 절대로 못 버릴거 같다.

어쩌다가 남편이 나 없을 때 버린다고 큰 쓰레기 봉투를 가져다가 담아나가면

그 봉투에 거꾸로 쳐 박혀서 이건 안돼..저것도..그리고 이 걸 왜 버려? 아깝게....

하나둘씩 원 위치 시키는 날 보고 그런거 다 껴 안고 어쩔래?...포기하는 남편.

 

신혼 때 부터 써 오던 작은 냄비며 낡은 옷이며 오래 된 액자까지

꽤 넓은 우리집엔 구석구석 참 많이도 잔존한다.

어젯밤에도 나름 나 혼자서 고심고심하면서 두 봉투나 버렸는데도 또 더 버리라니~~`

소각장에 넣는 순간에도 도로 뺄까? 어디 창고에 짱박아 둘까? 나중에 꼭 쓰일 것 같은데.....

난 큰 욕심은 없는데 일단 내 손에 들어 온 물건은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이 지독한 소유욕 때문에

낡고 찌그러지고 귀퉁이 떨어진 나무 상자까지 각양 각색 동서고금의 물건들이 엄청나게 많..............다.

개중에는 진짜 골동품도 몇 점 있긴 한데 이 물건들을 다 갖고 있자니 공간이 너무 부족하다.

음식을 빨리 빨리 먹고 치워야 하는데 하루 세끼만 집중적으로 잘 먹는 내가

간식은 아들과 남편 몫으로만 준비하는데 두 부자지간에 빨리 안 먹으면 그것도 문제가 된다.

우유나 요구르트는 날짜가  하루 정도 살짝 지나면 아무도 안 먹으니 내 차지고

미처 빨리 안 먹고 놔 두면 공연히 사서 버리게 된다고 나한테만 눈총이니...

아예 안 사두면 먹을게 없다고 그러고 넣어두면 빨리 안 먹어서 처리는 내 차지니.

마트가 가까운 곳에 있는게 아니라서 더 그렇다.

배달은 시골이라 일주일에 서너번씩 격일제로 들어 온다.

다 비워 뒀더니 뭘 먹을거 하나도 없냐고 계속 빈 냉장고문만 열었다 닫았다......

출근이 없이 재택근무다 보니 이런게 불편하다.

언제든지 수시로 아내의 살림살이를 간섭 할 수 있는 거..거 별로 안좋네.ㅋㅋㅋㅋ

완벽한 살림꾼이면 또 모를까 나처럼 헐렁하고 빈틈이 많은 여자는 딱 질색이다.

쩝....

오늘 밤에라도 빈 봉투 들고 눈 딱 감고 속 시원하게 좀 버려야겠다.

잘 될라는지....

버리는 일에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