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이벤트 기간에 별생각없이 들었던 적금을 해약하려고
퇴근한 남편을 꼬드겨서 은행으로 달려갔습니다.
1년을 부었는데 세금떼고 이자는 빈대 뒷다리 만한 금액을 달랑 줍디다.
내 돈 되돌려 받았을 뿐인데
이럴 때 완존 \'꽁 똔\' 생긴 기분 아시죠?
얼굴에 화색이 도는 남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저를 살살 꾑니다.
\"돈 받았으니까 인제...... 우리 어디 가?\"
\"어디 가긴...집에 가야지~\"
\"에잉~ 공짜 돈도 생겼는데 지난번 그 잠바 사러 안 가?\"
으휴~ 애가 없으니 어른이 애 노릇 하며
한 번 찍은 물건이 있으면 꼭 사야 합니다.
물론 자주는 아니지만 사줄 때까지 조르고 조르고
땅바닥에 딩굴지 않을 뿐 완존 땡깡 입니다.
엄마들 그러죠? 장난감 가게 지나 갈 일 있으면
아이가 못 보게 일부러 저쪽 길을 돌아가는 거~
저도 그럽니다.
그가 환장하는 스포츠 용품점을 지나가야 할 때는
이리 저리 빙~빙~ 둘러 둘러 갑니다.
그런 필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점퍼 하나가 또 그의 레이더에 걸렸습니다.
비슷한 물건이나 옷이 집에 있는데 또 사려고 하면
엄마들 처럼 나도 구슬리다가 그것도 안되면
얼렁뚱땅 넘어가보려고 온갖 술수를 동원하지만
무조건 자식사랑에 지고 마는 엄마들 처럼
결국 제가 지는 싸움입니다.
작정하고 졸라대도 마누라가 꿈쩍도 하지 않으니 조건을 제시합니다.
\"꺼플로 사자~ \"
\"한 개 살 돈도 없는데 두 벌씩이나? 돈 없어~\"
딱 잘라 거절.
잠시 침묵하던 그.
\"그럼…....니 꺼는 내가 사주께~ 내 껀 니가 사줘~\"
핫~ 그 말로만 듣던 비자금???
야호~ 소리가 터져나올 뻔 했습니다.
곧
유도심문을 시작했습니다.
\"어디 바~! 현금 보여 조~ 보여 주믄 사러 갈께~\"
\"지금은... 꺼낼 수가 없어~\"
\"왜?\"
\"응.. 묻어 뒀어~\"
흠...
있긴 있다는 말.
\"어느 은행에?\"
\"은행 아니구....\"
\"그럼..?\"
\"응... 그게.... 응.....\"
\"왜 말을 더듬어?..\"
\"응... 그게....... 지금 꺼내믄 뱀이야~\"
\"머?????\"
지금 꺼내믄 뱀이믄....
언제 꺼내믄 돈일까.
\"응~ 그게 지금 꺼내믄 뱀이구.... 좀 더 숙성이 돼야 돈이 돼\"
돈이 와인이야?
나는 말 수를 줄이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도대체 그 돈은 얼마나 될까….. 언제쯤 뺏을 수 있을까…..
그도 저녁 내내 전전긍긍하는 듯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저 여우 같은 마누라한테 몽땅 뺏기지 않을까…..
그리고 줄기차게 제 주변을 얼쩡대며 세뇌를 시도 합디다.
\"지금 꺼내믄 뱀이야... 뱀...... 뱀...... 더 이상 생각해서도 안돼...... 알았지?... 배앰…...\"
나는 세상에서 뱀을 젤 싫어하고, 세상의 모든 돈을 많이 사랑하는데
젤 싫어하는 것이 젤 좋아하는 것으로 바뀐다. 언제?
하! 몰라 몰라 어쨌든 분명한 건...
그에게 비자금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확인 된 바는 없지만 꼭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나는 못이기는 척, 오늘 디럽게 비싼 점퍼를 비자 카드로 긁고
지금 조용히... 조용히... 인내하는 중입니다.
내가 속으로 하염없이 웃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의 뱀은 돈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믿기에...
또 그것은 곧 내 통장으로 자동이체 될 것임을 굳게 굳게 믿기에……
추신: 근데 어떻게 뱀이 돈으로 변하는 지 저도 그게 궁금하네요.
돈으로 변하는 뱀의 정체가 밝혀지는 즉시 알려드릴 것을 약속하며...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