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다.
특히 동계올림픽을 일주일 앞 둔 밴쿠버는 요즘
세계 각국의 인종이 모여들어 다운타운은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일본인들이 밀크를 \'미루꾸\'라고 하 듯, 영어라고 다 같은 영어가 아니라
필리핀이나 인도 등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나라 사람들도
각자 자기 나라마다 특유의 발음이 있어
본토 사람이라 해도 알아 듣기가 쉽지 않다.
직원들이 퇴근한 어제 저녁.....
한 남자가 들어섰다.
모처럼 한가한 가게 안엔 그와 단 둘....
주문을 마친 그 남자 계속 무어라고 쑹얼거렸다.
이 남자...
말이 많다.
한국이나 외국이나 말 많은 사람들의 특징은 대체로 핵심이 흐리고 주제가 모호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레스토랑 주인이냐...
응
얼마나 되었냐...
1년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한국
자기도 제주도에서 1년 동안 영어를 가르쳤다며
한국 말은 \'안녕. 감사합니다. 이거 주세요\' 세 마디 할 줄 안다고 자랑한다.
은근 부아가 치밀었다.
목돈 좀 만져 보겠다고 목숨걸고 자원해 전투하러 간 월남도 아니고, 경제대국 대한민국에 가서 영어 한다는 딱 한 가지 이유만으로 대접 받으며 돈 벌어 잘 살았을 인간이 1년 동안 배운 우리 말이 고작 세 마디?
\'에라이~ 너 돌대가리 아냐?\'
달싹거리는 입술을 꽉 깨물고 한국 가기 전 이 나라에서 하던 일, 즉 직업을 물었다.
질문의도는 \'너 , 교육 수준 높은 우리나라에서 영어 가르칠 능력 돼? 똑바로 제대로 가르쳤어?\' 였다.
마술사란다.
차마 어느 학교 다녔는지 묻진 못하고 우회전 좌회전 공회전을 하며 말을 빙빙 돌렸다.
그동안 연 몇 회 마술 공연을 했냐, 밴쿠버에 마술 전공학과가 있는 대학교가 어디냐, 마술 공연 극장은 어디 있느냐 꼬치고치 물어도 또박또박 대답도 잘하더니
갑자기 그간 내가 별로 접하지 못했던 어휘를 섞어 무언가 이야기를 했다.
예를 들어 신변이나 날씨나 가족이야기 등등 이런 게 아닌
뭔가 다른 느낌의 생소한 단어가 섞인 혼문......
혹시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파견 한 미스테리샤퍼(암행감사)가 아닌가 해서
얼른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 어떤 남자가 가지도 않고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뭐 좀 이상한 단어가 있는데 정확히 이해를 못하겠어. 무슨 일인지 자기가 한 번 확인 해 봐\'
그리고 그 남자에게 수화기를 건넸다.
그 남자, 화들짝 놀라며 누구냐고...
응.. 우리 보스야...(왜 남편이라 하지 않고 사장이라 했을까)
수화기를 받아 든 남자, 남편과 대화를 하더니 황급히 내게 전화기를 던져주고
도망치듯 나가는 뒷 모습을 보며 무슨 일인 지 몹시 궁금했다.
\'난데... 저 남자 왜 저래? 뭐래?\"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편이 꽥 소릴 지른다.
\"야~ 넌 일 안하고 꼬리 치고 있냐! 도대체 어떻게 생긴 놈이야!\"
자다가 홍두깨를 맞는다더니, 영문도 모르는 내게 꼬리 친 건 또 뭐람...
다시 물었다.
\'근데 그 남자가 뭐래?\'
\'야~~~~ ~~!! 그 남자가 너한테 작업을 하던 중이었는데 너가 말귀를 못 알아 듣고 나한테 전화를 했대 잖아\'
ㅋ
그러니까 그 남자가 제주도 어쩌고 하던 건 기초작업이었고, 본격적인 본론 진입을 시도했는데
내가 못 알아듣고 어리버리해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바꿔줬다는 이야기?
섹시하다... 쿨 하다... 예쁘다... 아름답다... 등의 형용사를
핫(Hot) 하다\'로 원래 의미와 전혀 다른 뜻을 담아 표현하는 작업용 은어는 직역에 익숙한 한국 아줌마에게 영어 회화의 극복 불가한 거대 벽이다.
아, 콜라의 외모와 연결짓는 오해는 금물...
동양 여자들의 나이를 도대체 가늠하지 못하는 백인들은
키 작고 얼굴 작으면 모두 하이틴인 줄 아는 통에 한국 아줌마들은 웃기는 일을 종종 겪는다.
예전 18년 연하 외국인과 결혼해서 태풍같은 화제를 뿌리며 방송 토크 쇼와 여성지를 점령하던 김모씨를 보며
책광고를 위한 마케팅 전략이란 점도 생각했지만, 나도 일면 그녀가 무척 예쁘거나, 대단히 능력있거나, 매우 매력적일 거라고 오해 한 적이 있다.
퇴근한 남편
머리를 풀지 말고 핀으로 아줌마처럼 올리라는 둥
레깅스에 부츠 신지 말고 트레이닝복 입고 일하라는 둥....
엄한 사람 잡는다.
히히
그래도 기분 좋다 .
여자 나이 마흔은 두 번째 스물이라 했던가.
아직은 상품가치가 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