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혼 소송을 하고 있는 중 배우자의 동의 없이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임신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980

세상의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


BY *콜라* 2010-01-24

 

삶의 무게가 무겁다고 느껴질 때, 외로움의 넓이가 휑하다고 느껴질 때

살아 온 날들에 대한 기억의 부스러기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간절히 그리워지는 날이 있다.  이런 저런 속내를 툴툴 털어내며 투정을 부려도 좋을 어린 시절 같이 보낸 친구도 좋겠고, 기억 속의 아련한 그리움을 거미줄 처럼 술술 풀어내게 하는 따스한 가슴을 가진 사람도 좋겠다. 또 누군가에게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주고픈 사람도 있다.

그녀가 그랬다. 그녀 나이 마흔여섯......
고단한 삶을 살아 온 세월의 흔적이 거뭇거뭇한 기미로 덧입혀져, 청순했던 혈색은 간데 없고   비어버린 자궁으로 상실된 여자의 허전함을 낱글로 추스리며 살아가는 그녀는 
언제나 웃는다. 
가슴으로 운다.

지은 죄도 없이 20여년 살 맞대며 새끼낳아 길러 준 여자를 수 억대 재산 감춰두고 빈 손으로 거리로 내몰던 남자와 인연을 자르던 날도, 해방된 것에 감사하며 까르르 소녀같은 웃음으로 전화를 걸었었다. 마치,오랜 출장에서 돌아 온 남편과 개운한 섹스를 나눈 다음날 아침처럼
달뜬 목소리가  \'솔\'톤으로 들려왔다.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나는 아팠다. 
남편과 살아온 20년,그 고통이 얼마나 컸기에 이별이 저토록 행복할까......

김치 냉장고와 자기가 쓴 책 몇 권 달랑 건져와서, 배고픈 맹수우리에서 벗어난 것에 더 큰 축복의 의미를 부여하며 홀로서기 할 미래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의 얼굴이 햇살보다 환해보였다. 한 남자에게  망가지던 그 세월동안 먼 이국 땅에서 또 한 남자는 그녀를 그리워하며 청춘을 보내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는 얼굴에 살짝 아픔이 스치고 지나가는 게 보였다. 

끝도 없었을 그리움을 가슴에 담고 30년을 살아 온 한 남자. 절망 끝에 찾아 온 작은 희망 앞에 함께 기뻐하며 축하를 해 주고픈 마음과 달리, 오버랩되는 또 하나의 생각때문에 민둥머리 같은 표정일 수 밖에 없어 미안했다. 

그 남자가 오랫동안 그녀를 그리워할 때 그녀 닮고 우리 닯은 그 남자 곁의 또 한 여자는 지독한 외로움에 침잠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인연이란 사람의 생각으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만나야 할 사람은 이렇게도 만나지는 게 인생이었다. 

30년만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한 여자에겐 빛이되고, 그 남자 곁에서 아내란 이름을 지켰던 또 한 여자에겐 아득한 절벽이 되었을 터. 그녀도 그걸 가슴 아파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첫사랑 남자 부부의 인연도 이미 3년 별거로 막바지를 예고하고 있다고 했지만, 허무하면서도 질기고 질긴 게 또 부부의 인연. 이혼 한 건 아니었기에 머리와 가슴이 각각의 잣대를 들이대며 치열한 다툼을 벌이며 입을 막아 할 말을 잃었다.

내 맘을 아는 그녀, 다행히 수천리를 찾아온 그에게 포옹도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버려진 본처\' 또 한명의 자신같은 아내를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녀의 첫사랑은 다행스럽게(?)도 버림받은 쪽이었다. 나는 \'다행\'이라 표현했고, 그녀는 안타까워 했다. 다른 여자와의 삶이 행복에 겨워 차라리 자신을 잊어주길 바랬다는 고백을 하는 그녀의 눈빛에서 환한 행복감이 스며나왔다.

감정대로 움직여라.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빠지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나를 맡겨라. 첫사랑이 지금 그녀의 아픔과 사랑을 쏟을 마지막 빈 터임을 알기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덕담은 이말이 전부였다. 
30년의 세월에도 그들의 사랑은 처음 만난 그날의 소녀와 오빠로 여전히 첫사랑에 멈춰 있었다. 입 안에 물고 조금씩..  조금씩 녹여 먹던 박하사탕처럼 가슴 한 켠에 묻어두고 살금 살금 꺼내보았을 추억이 녹지도 줄어들지도 않고 처음 그대로였다.

그녀의 수필 \'바람결에 띄우는 그리움\' 에서 첫사랑과의 재회를 \'가슴에서 푸드득 새가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이라고 표현을 했다. 또 \'물결이 이는 것 같기도 하고, 어지럼증이 이는 것 같다\'고  했다.

진정한 사랑은 세월속에서도 바래지 않는다... 그럴까?
나는 세월속에서 잊혀지지 않을 사랑도 없고, 억지로 잊으려 한다고 잊혀지는 사랑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랑...... 그것은 언제나 첫사랑이다. 

세월속에서도 바래지 않은 기억에서 의미를 찾고 싶은 그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사랑은 나이 숫자에 맞춰 떨림, 강약 조절되는 물리적 기구가 아니다. 이미 시작한 사랑은 오토매틱이다. 하나님의 리모트콘트롤만 조종이 가능한....

그러나 그들에겐 시간이 없다. 두 번 다시 버리고 버려질 시간이 없다.
그들에겐 시간이 많다. 처음 만난 사랑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