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은 고기도 미끼를 줘야 한다.
연애할땐 갖은 정성 다 들이던 남자들이 결혼과 동시에 지킬박사와 하이드 처럼 이면을 보인다.
물론 안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지금의 4-50대 남자들 대부분은 \' 잡은 고기에 밑밥 주는거 봤냐\'는 식 일게다.
이번에 손위 동서 사건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한다.
우리 형님 결혼해서 26년 중간에 몇년을 빼고 시부모 모시고 살았다. 결혼하고 바로 첫아이 생겨서 낳고 이년후 둘째 출산하고 얼마 안있어 심장병으로 아이를 잃었다. 그 다음에 다시 임신을 해서 막내를 낳았다. 내가 결혼한 그 해 추석 무렵이 둘째 잃었던 그 즈음인지 어느날 국화를 한다발 사갖고 오더니 산으로 올라갔다.
시어머니 말씀이 \' 아버지가 묻었는데 쟈는 묻은 자리가 어딘지도 모르고 간다. 마음 아프다고 일부러 안가르쳐 줬다\'
하셨다.
술 주정 심한 시아버지 땜에 자다가 남의 집에 피해가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 암튼 조금은 힘든 시집살이 였으나 다정한 시어머니 덕분에 버텨 냈을 것이다.
오늘 낮에 시누이랑 통화 하면서 \' 큰 올케가 친정에 통화 하면서 ㅇㅇ 아빠랑 살기 싫은데 시어머니 땜에 산다\' 라고 말했었단다. 시아주버님 주변에 칭찬이 자자한 사람이다. 남들한테 호인이다. 이건 우리 시집 식구들 내력이다. 시아버지 부터 우리 아들에게도 그런 싹수가 보인다. 한마디로 가족들한텐 점수 못따는 그런 사람들이다.
아들로, 가장으로, 아버지로서는 점수를 줄수 있겠지만 남편으로서의 점수는 바닥인 셈이다. 그렇다고 결정적 결함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잡은 물고기는 그저 수족관안에 있으면 알아서 사는 줄 아는 존재로 생각한 것이다.
그 소리를 듣고 시누이 에게 그랬다. \' 솔직히 너거집 식구들 남한테는 호인이지 식구들 희생 시키고 남들 한테 잘하는 사람들 아니냐?\' 고 했더니 그렇긴 하다고 시인을 한다.
아주버님 어른들 눈치 보느라 부부만의 여행은 신혼여행 이후 가본적이 없고 두사람 다정히 외출하는 건 아마 열손가락 안에 들것이다. 아내가 먹고 싶은것보다 부모님 드시고 싶은것, 아내가 원하는것 보다 어른들 기쁘게 해주는것, 그런 역할만 강요 당했을 것이다.
분가 해서 사는 시누이나 나는 가족 끼리 혹은 부부끼리 여행을 다녀와도 미안해서 갔다 왔다는 말도 못하고 살았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 배려 해 줘야 하는 부분에 너무나 소홀했던것 같다. 부부 사이는 누구도 알수 없지만 언제 부터인가 동위 동서가 식구들 한테 마음을 닫은 모습이 보였었다.
아주버님이나 남편이나 처가집은 아예 없는 취급 하는 사람들이다. 시댁은 부산 친정은 서울인 관계로 또 맏며느리인 관계로 제일 중요한건 어른들이 명절에 친정 가는 걸 탐탁하게 여기질 않으셨다. 눈치 보는 며느리 \'어서 다녀와라\' 하고 등 떠밀어 보내셔야 하는데 그런법 없으셨다. 제일 애매한 말씀 \' 너거 알아서 해라\' 였다. 시누이 시집가고 명절에 안오면 전화 바리 바리, 늦으면 뭐하러 며느리 붙잡아 놓냐고 빨리 보내주지 하시면서....
며칠전 남편에게 \' 당신집 남자들 여자 무시하고 우습게 알다가 큰코 다치는거야, 이거 다 자업자득이야\' 했더니
무언의 시인을 한다.
시어머니 친정에 가시면 이틀을 못넘기고 집으로 가신다. 형제들이 그렇게 붙잡아도 소용이 없다. 처음에 왜 그러시나 했더니 가게 하는 며느리 대신 살림을 사신지 여러해 자신의 자리를 지키러 가시는 것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건 며느리의 자리였다. 물론 힘든 며느리 위해 살림 살아 주시는 좋은 일이나 손위 동서는 자신의 자리를 잃었다.
아이들도 엄마보다 할머니를, 남편도 아내보다 엄마를, 자신의 존재가 집안에서는 그 가치가 자신의 자리가 없어졌던 것이다. 시어머니 탓도 절반 동서 탓도 절반이다. 어느날 부터인가 자신은 집밖에 있어야 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번 사건 손위 동서가 잘했다는건 아니지만 일이 이렇게 되기 까지 가족들의 책임도 일부분 있다는 생각이 남은 우리들의 생각이다.
남자들이란 꼭꼭 집어주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존재라는게 답답할 뿐이다.
잡은고기를 위해 가끔 환경도 바꿔주고 물도 갈아주고 아는 척도 해줘야 한다는게 나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