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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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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김치


BY vera 2009-09-13

20090911 엄마와 김치

 

속상한 일이 생겨 눈물 찔끔거리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란에 뜬 ‘엄마’란 글자만 봤는데도 맺혔던 눈물이 뚝 떨어졌다.

목소리 가다듬고 평소처럼 전화를 받았다.

 

“먹을 김치 있냐”는 엄마의 물음에 김치가 얼마나 있는지 남았는지 아무 생각없이

“네” 대답하고 바쁘니까 다시 전화하겠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들킬것만 같아서 맘 상해있는 딸 때문에 영문도 모른채 속상해 하실것만

같아서 얼른 전화를 끊었는데 마음에선 나도 모르게 엄마를 부르고 있었다.

 

‘엄마! 힘들고 속상해요. 삶을 똑바로 잘 살아내는 일이 오늘은 너무 어렵고 잘 안풀리는

숙제처럼 느껴져서 어찌해야 할 지 답을 모르겠어요‘

 

이 세상에서 온전히 내편인 나의 엄마!

 

바쁜 딸 보고싶으면 시도때도 없이‘먹을 김치 있냐’고 물으시며

당신 맘 감추시는 사려깊으신 내 엄마.

 

장손집 맏며느리로 시집오셔서 꼭 낳아야 한다던 아들은 못 낳고

 딸만 일곱을 낳고서 먹은 미역국보다 흘린 눈물이 더 많았다던 내 엄마.

생각만 해도 애잔하고 가엾은 내 엄마.

 

내 나이 스무살 때 철없이 엄마를 향해 말했었다.

뭐하려고 그렇게 미련하게 자식을 일곱이나 낳아서 이런 고생을 하시냐고

셋째인 나까지만 낳았으면 엄마도 안힘들고 자식들 뒷바라지도 덜 힘들었을거

아니냐며...

 

정말로 지금생각해도 너무 말도 아닌 말로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했었다.

그날 엄마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더니 엄마는 한참을 소리없이 우셨다.

 

2년 터울인 우리 자매을 일곱만 낳은것이 아니고 낳는 중간중간 또 할 수 없이

일곱을 떼었다고...

아들을 낳을수만 있다면 죽을때까지라도 뱃속에 아이가 들어있어도 상관이 없었다고...

금방 배아프게 아이를 낳아서 몸도 추스르지 못했는데도 아들만 들어있다면 아무리

배가 뒤틀려도 또 낳고 낳고 할 수 있었다고....

 

기가 막혔다.

시집안간 스무실 딸인 내 생각엔 여자로서의 엄마의 몸은 사람의 몸이라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저런 여린 몸으로 그 힘든 세월을 견뎌왔을까

아들이 뭐길래.... 자신의 몸까지 갈갈이 상처내면서까지....

 

그런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우는 엄마를 등지고 나도 엉엉 울었다.

그날 이후 난 한번도 엄마를 향해 어떤 아픔도 슬픔도 표현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왔다.

 

그런 나의 소중한 엄마의 하루는 새벽 4시에 예배당을 향해 발길을 옮기면서 시작된다.

요즘에도 가끔씩 속을 썩이는 팔십다되신 아버지과 딸 일곱에 사위들 손자 손녀들

이웃들을 위한 엄마의 기도는 동이 훤하게 틀때까지 이어진다.

 

아이를 지우는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도 모른 채 저질렀던 40여년전의 일들이 가슴에

맺혀서, 딸자식들 마음껏 뒷바라지 못해준것이 마음에 걸려서,

그럼에도 똑바르게 당당하게 사회에서 제 역할 잘 감당하고 결혼해서

별 탈없이 잘 살아주는 딸들이 너무 고마워서 그런 딸들을 위한 엄마의 기도는

매일 매일 하나님께 해야 할 말이 너무 많다고 하신다.

 

여느 엄마들이 다 그렇듯이 우리 딸들을 위해서 안 해본 일 없이

다해 보셨다는 내 엄마.

힘들었던 지난날은 내색도 안하시고 여전히 곱고 고운 마음으로

딸들과 주변을 두루두루 살피시는 천사같은 마음을 간직하신 천상 여자인 내 엄마.

 

일흔이 다 되셨는데도 꽃과 나무를 너무 사랑하고 봄바람에도 향기를 맡으시며

 멀리 보이는 아지랑이를 보면서 시 한편을 지으셨다 가끔씩 우리에게 읊어주시는

소녀 같은 내 엄마.

 

서점에 나가 책 사오신 날엔 읽어보고 밑줄 그어 놓았다가 딸들이 오면

돋보기 꺼내들고 감동스럽게 읽어 주시는 멋쟁이 우리 엄마.

성경통독을 10번을 하셔서 목사님 말씀을 재해석 해주시는 지혜가 넘치는 내 엄마.

 

그런 엄마의 기도와 헌신이 있어서 일곱 딸들이 반듯하게 제 역할을

잘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살면서 닥치는 어려움이 반드시 있기 마련인지라 그럴 땐

제일 먼저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의 목소리가 듣고 싶고 엄마의 주름진 얼굴을 만져보고 싶다.

 

우울하고 속이 상해서 눈물 찔끔대는 오늘 같은 날.

엄마는 어찌 알고 전화를 하셨을까! “별일 없냐” 물으셨다면

와락 속상한 이야기를 꺼냈을지도 모르는데...

엄마는 여전히 “먹을 김치 있냐” 라고만 하신다.

 

가까이 살면서도 바쁜딸 보고 싶고 오라고 하고 싶으실 땐 오늘처럼 전화를 하신다.

“엄마다. 아직 김치 남았냐? 너 좋아하는 열무 김치 담았다” 라고.......

 

조금 남은 김치를 작은 그릇에 옮겨놓고 엄마네 김치통을 탈탈 씻어서

물기를 닦았다.

 

김치통을 들고 엄마를 보러가야지.....엄마가 담가준 맛있는 열무김치에 참기름

넣고 싹싹 비벼서 밥 한그룻 먹고 나면 시금치 먹고 난 뽀빠이처럼 힘이 날 것 같다.

 

지금 내가 아무리 속상한 일을 당해도 지난날 엄마가 겪어낸 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거란 생각이 든다.

 

엄마와 김치를 떠올리며 다시금 불끈 힘을 내어본다.